이수익 '유등제' 해설과 감상

- 설움의 강을 흐르는 불빛

by 한현수

유등제를 한번 보고 싶다.

해 저문 강가로 나아가

머나먼 행렬을 이루면서 밝은 연등 불빛 흘러가는

그 조용한 눈물의 제의를

보고 싶다.


나도 함께 따라갈 수 있다면

얼마나 더 좋으랴.

세상의 온갖 설움을 푼 몸이 두둥실

물 위에 떠서

한 줌씩 불빛 던지며 어둠을 헤치고 흘러가면

마침내 닿을 그곳이 불귀의 하늘이어도

나는 좋으리.


길가엔

깨끗이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

멀어져 가는 점점의 등불을 바라보며

차마 돌아서지 못하는 발걸음, 섰던 자리에 묶여

두 손 모아 간절히 비나니

부디 저 길이 극락에 이르소서.


유등제를 한번 보고 싶다.

해 저문 강가로 나아가

수천, 수만 개의 연꽃 등불 밤하늘 별빛인 양

물 위에 떠서

아득히 행렬을 이루면서 어둠 속으로 흘러가는

그 눈물 글썽이는 축복의 제의를

나는

보고 싶다.



삶의 무게

평생 남 앞에서 한 번도 울지 못했습니다. 힘들다는 말도, 외롭다는 말도 꺼내지 못한 채 그냥 살았습니다. 누가 알아주기를 바랐지만 아무도 묻지 않았고, 저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게 서러웠습니다. 떠나는 것이 두렵지는 않습니다. 다만 마지막으로 한 번쯤은, 누군가 떠나는 제 곁에서 차마 돌아서지 못하고 서 있어 주었으면 합니다.

세상에 이런 삶을 살았을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요? 이 시를 읽으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시는 해가 저문 강가에서 수많은 연등이 물 위를 흘러가는 의식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선을 담은 작품입니다. 유등제(流燈祭)는 망자의 넋을 극락으로 인도하기 위해 등불을 강에 흘려보내는 제의로, 살아 있는 자와 떠나간 자 사이의 마지막 교신 의식입니다. 그런데 이 시의 화자는 망자를 애도하는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시선은 끊임없이 자신의 삶 쪽으로 향합니다. '한번 보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 속에는 삶의 무게에 지쳐 저 등불의 흐름 속으로 녹아들고 싶은 사람의 내면이 조용히 배어 있습니다.

이 시를 이해하는 핵심 실마리는 떠나는 자의 해방과 남겨진 자의 애도가 하나의 의례 안에서 만나는 순간에 있습니다. 화자에게 죽음은 축복된 길이지만, 그 축복은 혼자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눈물로 배웅하고 극락을 빌어 주는 사람들이 있을 때 비로소 그 떠남은 고독한 소멸이 아닌 의미 있는 이행이 됩니다. 화자가 유등제를 보고 싶은 것은 그 떠나는 길이 아름답기 때문만이 아니라, 저렇게 배웅받으며 떠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유등제를 한번 보고 싶다.

해 저문 강가로 나아가

머나먼 행렬을 이루면서 밝은 연등 불빛 흘러가는

그 조용한 눈물의 제의를

보고 싶다.


보고 싶다 — 비애가 응축된 의례에 대한 동경

시는 '유등제를 한번 보고 싶다'는 문장으로 열립니다. '한번'이라는 부사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직 이루지 못한 소망이면서, 그 소망이 단순한 구경의 욕구가 아님을 은근히 드러냅니다. 화자가 보고 싶은 것은 화려한 볼거리가 아니라 '조용한 눈물의 제의'입니다.

유등제를 이렇게 부르는 순간, 이 의식은 죽은 이를 기리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살아 있는 자의 비애가 밖으로 드러나는 자리로 변모합니다. 등불의 행렬은 말없이 쌓인 설움이 물결처럼 이어지는 흐름이며, 화자는 그 장면 속에 자신의 비애도 함께 실어 보내고 싶어 합니다.



나도 함께 따라갈 수 있다면

얼마나 더 좋으랴.

세상의 온갖 설움을 푼 몸이 두둥실

물 위에 떠서

한 줌씩 불빛 던지며 어둠을 헤치고 흘러가면

마침내 닿을 그곳이 불귀의 하늘이어도

나는 좋으리.


따라가고 싶다 — 삶이 너무 무거운 자의 고백

둘째 연은 이 시에서 가장 솔직한 고백을 담고 있습니다. 화자는 바라보는 것을 넘어 '함께 따라갈 수 있다면'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온갖 설움을 푼 몸'이 되어 물 위에 두둥실 떠서 흘러가고 싶다는 것, 그 말 안에는 지금의 삶이 그만큼 무겁고 고되다는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마침내 닿을 그곳이 불귀의 하늘이어도 나는 좋으리'라는 구절은 섬뜩하리만큼 담담합니다. 돌아오지 못하는 하늘이라 해도 괜찮다는 말은, 저 떠나는 길이 삶의 비애를 마침내 씻기는 축복된 길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화자가 죽음을 동경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비애가 너무 깊어 저 빛의 행렬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길가엔

깨끗이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

멀어져 가는 점점의 등불을 바라보며

차마 돌아서지 못하는 발걸음, 섰던 자리에 묶여

두 손 모아 간절히 비나니

부디 저 길이 극락에 이르소서.


차마 돌아서지 못하는 발걸음 — 배웅을 하는 사람들의 애도

셋째 연에서 시선은 강물에서 강가로 옮겨옵니다. 깨끗이 옷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멀어져 가는 등불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서 있습니다. 정갈한 차림새는 떠나는 이를 마지막까지 정성껏 배웅하려는 마음, 그 사람에 대한 사랑이 몸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차마 돌아서지 못하는 발걸음, 섰던 자리에 묶여'라는 표현은 이별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두 손 모아 '부디 저 길이 극락에 이르소서' 하고 비는 기도는, 떠나는 자에게 열리는 그 길이 축복된 길이기를 바라는 간절함입니다.

화자는 바로 이 장면을 원합니다. 죽음 자체가 두렵지 않지만,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고 싶지는 않은 것입니다. 저렇게 눈물로 배웅받고, 저렇게 기도받으며 떠나고 싶은 것, 그것이 화자가 유등제를 보고 싶은 또 다른 이유입니다.



유등제를 한번 보고 싶다.

해 저문 강가로 나아가

수천, 수만 개의 연꽃 등불 밤하늘 별빛인 양

물 위에 떠서

아득히 행렬을 이루면서 어둠 속으로 흘러가는

그 눈물 글썽이는 축복의 제의를

나는

보고 싶다.


다시, 보고 싶다 — 떠나는 자와 남겨진 자가 만나는 자리

마지막 연은 첫 연의 구절을 반복하며 돌아옵니다. 그러나 같은 말이 다른 무게로 도착합니다. 처음에는 '조용한 눈물의 제의'였던 것이, 이제는 '눈물 글썽이는 축복의 제의'로 바뀝니다. 눈물은 보내는 자의 슬픔이고, 축복은 떠나는 자에게 열리는 길입니다. 이 둘이 하나의 장면 안에 겹쳐 있는 것, 그것이 이 표현이 품고 있는 역설입니다.

수많은 연꽃 등불이 밤하늘의 별빛처럼 물 위에 떠서 아득히 흘러가는 광경은, 떠나는 자의 해방과 남겨진 자의 애도가 마침내 하나로 만나는 장면입니다. 화자가 마지막에 '나는 / 보고 싶다'라고 '나는'을 따로 떼어 행을 바꾼 것은, 저 흘러가는 등불 앞에서 자신이 살아온 삶을 혼자 조용히 돌아보는 몸짓입니다. 남에게 꺼내지 못했던 삶의 무게를, 이 자리에서 말없이 확인하고 정리하는 것입니다.



눈물과 축복이 하나인 자리

이 시는 삶의 비애와 죽음의 축복이 하나의 장면 안에 겹쳐 있는 역설을 형상화한 작품입니다. 보내는 자에게는 차마 돌아서지 못하는 슬픔이고, 떠나는 자에게는 어둠을 헤치며 빛으로 나아가는 축복된 길입니다. 이 둘은 모순이 아니라, '눈물 글썽이는 축복의 제의'라는 한 문장 안에서 함께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가 더 깊이 마음에 닿는 것은 화자 자신의 내밀한 목소리 때문입니다. 화자는 유등제를 바라보면서 죽은 자를 애도하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저 흘러가는 등불 앞에서 자신이 살아온 삶을 조용히 돌아보고, 그 무게와 슬픔을 혼자 정리합니다.

그리고 저렇게 눈물로 배웅받으며 떠나고 싶다는 소망을 품습니다. 죽음을 축복으로 여기면서도 남겨진 자들의 애도를 원한다는 것, 그것은 아무리 삶이 고단해도 인간은 혼자 사라지고 싶지 않다는 가장 솔직한 고백입니다. '나는 / 보고 싶다'는 마지막 말은 그 정리의 끝에 놓인 말입니다.



[비평 노트]

1. 보내는 자의 눈물과 떠나는 자의 축복이 겹치는 역설

'눈물 글썽이는 축복의 제의'는 이 시의 핵심을 압축한 표현입니다. 보내는 자의 슬픔과 떠나는 자에게 열리는 축복이 모순이 아니라 하나의 장면 안에 겹쳐 있다는 것, 이것이 이 시의 가장 중요한 정서적 구조입니다.

2. 유등제를 바라보는 화자의 내밀한 시선

화자에게 유등제는 망자를 위한 의식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삶의 무게를 혼자 확인하고 말없이 정리하는 자리입니다. '나는 / 보고 싶다'의 행갈이는 그 내밀함을 형식으로 구현한 것입니다.

3. 수미상관 구조의 의미

'조용한 눈물의 제의'에서 '눈물 글썽이는 축복의 제의'로의 변화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시 전체를 경유하며 깊어진 화자의 인식이 도달한 자리입니다.

4. 떠나는 자의 해방과 남겨진 자의 애도가 만나는 자리

화자가 유등제를 보고 싶은 것은 떠나는 길이 아름답기 때문만이 아니라, 저렇게 눈물로 배웅받으며 떠나고 싶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축복은 남겨진 자들의 애도가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5. 살아서 받지 못한 위로를 죽음 앞에서 바라는 마음

살아 있는 동안 설움을 알아준 사람도, 위로해 준 사람도 없었던 화자에게, 저 강가 사람들의 기도와 배웅은 가장 간절한 소망입니다. 이것이 '한번 보고 싶다'는 말 속에 숨겨진 가장 깊은 이유일 것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브런치스토리 비회원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에 다 모아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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