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별의 탄식, 재회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님의 침묵」은 이별을 통해 만남을 이루는 소멸과 생성의 변증법적 원리에 바탕을 둔 것이며, 또한 세속적 사랑의 종교적 승화에 대한 이념적 동경을 노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님의 침묵」에서 이별이라는 소멸의 변증법 설정은 존재의 무화적 충격을 통해 재생과 생성을 이룩하려는 의도적인 ‘무의 통과과정’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것은 타율적인 것이 아니라 자율적인 원리를 지니게 되어, 자율적인 소멸은 그것이 방법적인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자율적인 생성으로 회귀하게 된다는 이별의 변증법적 원리가 내포돼 있는 것이다. 결국 「님의 침묵」은 이별에서 시작되어 만남에 이르는 만남의 노래, 절망에서 희망을 발견하며 그를 향해 나아가려는 능동적인 부활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 권영민, '한국현대문학대사전' -
화자가 임과의 이별의 슬픔을 극복하고 그것을 새로운 만남의 희망으로 바꾸는 과정을 노래하는 작품입니다. 화자의 이런 전환은 단순히 마음을 새롭게 가짐으로써가 아니라, 만남과 이별이 서로 기대어 생기고 사라진다는 불교적 생각[연기(緣起)]에 바탕을 둔 굳은 믿음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기(1-4행), 승(5-6행), 전(7-8행), 결(9-10행)의 네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데, '상실→자각→전환→다짐’의 정서적 곡선이 기준이 됩니다.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어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기(起, 1-4행) - 임과의 이별(상실)
‘님은 갔습니다’라는 단도직입의 표현과 9행의 ‘아아 님은 갔지마는 ~’이 서로 닮은 꼴을 이루며, 반복과 영탄이 객관적 사실을 마음의 충격적 슬픔으로 옮겨 놓는 효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임은 ‘차마 떨치고’ 떠나고, 화자는 그 충격을 색과 공간의 이미지로 느낍니다. ‘푸른 산빛→단풍나무 숲→작은 길’은, '밝고 열린 자리 → 가을빛 마감의 기미가 느껴지는 숲 → 외진 오솔길'로 이어지는 마음의 이동입니다. ‘황금의 꽃 같은 맹서→차디찬 티끌’은 소중했던 약속이 무너짐을, ‘지침(指針)을 돌려 놓고 → 뒷걸음쳐서 사라졌다’는 사랑이 삶의 방향을 바꿔 놓았지만, 이제 그 기억이 점점 멀어짐을 뜻합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승(承, 5-6행) - 이별 후의 충격과 슬픔(자각)
그동안 님은 화자에게 다른 것은 안 보일 만큼 온통 마음을 붙잡게 만드는 절대적 존재였습니다. ‘말소리에 귀먹고/얼굴에 눈멀어’는 그 몰입의 정도를 보여 줍니다. 이렇게 절대화된 사랑일수록 이별의 충격은 커지므로, 화자는 예감했던 이별이지만 현실 앞에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새 슬픔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전(轉, 7-8행) - 재회의 믿음(전환)
화자는 슬픔을 버려 두지 않고 희망 쪽으로 옮겨 담습니다.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새 희망의 정수박이(정수리)’에 붓는다는 표현이 그것입니다. 만남이 이별을 품고 있듯, 이별도 다시 만남의 가능성을 품는다는 불교의 생각[연기(緣起)]이 이 전환의 힘이 됩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결(結, 9-10행) - 임에 대한 사랑의 다짐 (맺음)
‘갔지마는/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는 현실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부재를 견디게 하는 굳은 다짐이며 믿음입니다. 벅찬 사랑의 노래가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이고, 그 노래가 ‘침묵하는 님’의 주위를 휩싸고 돕니다. ‘갔지만 반드시 다시 만날 거라 믿는 님’이라면, 지금은 잠시 말을 멈춘 상태일 뿐이라고 화자는 생각합니다. 반드시 돌아올 사람이기에, 지금은 그저 ‘님이 침묵하는’ 동안입니다.
한용운은 시집 '님의 침묵' 서문에서 '기룬(찬양하는) 것은 다 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따라서 ‘님’은 연인·조국·불교적 절대자를 함께 떠올리게 하는 겹겹의 상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시인의 저항 이력과 당시 검열을 생각하면 ‘조국’으로 읽는 해석도 힘이 있습니다.
이 작품은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방식으로 읽혀 왔습니다. 해방 이후에는 ‘님=조국’이 널리 읽혔고, 1990년대 이후에는 개인·민족·불교의 뜻이 함께 작동한다고 보는 해석이 많습니다. 결국 해석은 독자의 권리이지만, 시 속의 말들(반복·영탄·행갈이·이미지)이 보여주는 근거를 바탕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만 설득력이 있을 것입니다.
**** 지금은 '2008년 한국현대시 100년 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시 100편(조선일보)'을 해설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작품 해설들, 기존에 내가 고른 작품 해설들을 다시 보고 싶은 분들, 검색을 통해 들어 왔지만 다른 글들도 보고자 하는 분들을 위해 네이버블로그를 만들어 다 모아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