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서정주 『질마재 신화』, 눈꽃 이영경
신화적인 ‘시’세계의 질마재 신화
미당 서정주 『질마재 신화』, 눈꽃 이영경
1. 들어가며
‘시’ 세계의 거인 미당 서정주 시인을 알게 된 시기는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국화 옆에서」라는 시를 보고 배우며 그 시의 반해 외웠던 기억이 난다. 오랫동안 국정교과서에 수록되었었고 지금도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실리고 있을 정도로 좋은 시의 본보기로 평가되고 있다. 바닷바람과 산바람을 통해 나온 시와 시인의 영원한 안식처인 고향 고창의 질마재길을 여행하고 돌아온 기분이 든다. 고창의 직접 가보진 못했지만 미디어(유튜브)의 풍부함을 이용해 그의 시의 원천인 고향을 둘러보며 시를 바라본 그의 시선을 되 내어본다. 차를 타고 ‘미당시문학관’으로 달리고 싶은 충동을 일으킬 정도의 고창의 경관은 아름다웠다.
질마재 신화는 산문시들로 제목의 그 ‘질마재’는 고향 마을의 이름이고, 이 마을의 동쪽에 ‘질마재’라는 산이 있어 마을에도 그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미당 서정주는 1915년 6월 30일 전북 고창 선운리에서 태어났다.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에서 공부했고,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벽」이 당선된 후 「시인부락」동인으로 활동했다. 1941년 「화사집」을 시작으로 「귀촉도」, 「서정주시선」, 「신라초」, 「동천」, 「질마재 신화」, 「떠돌이의 시」, 「서으로 가는 달처럼...」, 「학이 울고 간 날들의 시」, 「안 잊히는 일들」, 「노래」, 「팔할이 바람」, 「산시」, 「늙은 떠돌이의 시」, 「80소년 떠돌이의 시」등 모두 15권의 시집을 발표했다.
1954년 예술원 창립회원이 되었고 동국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2000년 12월 24일 향년 86세로 별세, 금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독자들은 그의 ‘시’를 좋아하며 미당 서정주 시인을 그리워하는 이들과 문인들의 발걸음은 ‘미당시문학관’을 향하고 있다.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
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돌쩌
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다리는 거
라고, 그렇게만 알곤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십 년인가 오십 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 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아직도 고
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
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
습니다. 초록 제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 「신부新婦」 전문
신부와의 첫날밤의 풍경인데 나이 많은 신부를 음탕하다 생각하여 화장실을 핑계로 신방을 나가버린다. 신랑은 세월이 지나 그 집을 지나가다가 첫날밤 그대로인 신부의 어깨를 어루만지자 재가 되어 사라졌다는 이야기 이다. 첫날밤 소박맞은 부인은 친정집으로도 갈 수도 없고 그 자리에서 묵묵히 신랑을 기다려야만 하는 시대적 상황과 초현실적인 세계를 시적으로 표현한 부분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 // 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재가 되어 폭삭 내려앉아 버렸// 습니다.//’라는 부분은 풍습적인 결혼문화의 대한 비판적인 내용일지도 지조를 지키는 여인의 모습을 그려낸 슬픈 사연일지도 모른다.
조선시대 한 일화로 조선 24대 임금 헌종이 자신의 후궁 경빈 김씨를 후궁으로 들이기 위해 할머니와 어머니가 간택하신 홍씨 가문의 여인과 첫날밤에 각방을 쓰고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핑계로 경빈 김씨를 후궁으로 들이게 된다. 사랑하지 않는 여인과 결혼해야 한다는 불만은 과거에도 현제에도 있는 문제현상이다. 현대사회는 풍습과 문화의 변화를 이룩하였으나, 결혼문화에서는 정략결혼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지식인들이 늘어나고 서양문화가 유입되면서 경제문제로 결혼을 기피하는 풍토까지 생기게 되어 사회문제로 까지 진행되는 상황이며 저 출산과 고령화의 급속한 진행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결혼풍습의 현실적 방향을 제시하고 싶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2. 가난의 결핍에서 공동체의 문제의식까지
환상적인 질마재 고향은 맑고 푸른 전기를 품에 가득 담고 어린 시절 그의 삶을 힘들게 했던 가난과 결핍은 시의 세계를 더욱 단단하고 견고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연꽃과 연잎이 바람에 한들한들 날리는 은은함과 아름다운 연꽃의 분홍빛은 매혹적이며 그 곳을 지나가는 자전거를 탄 행인의 모습은 은유적 발상을 일으키며 상상과 창조의 보물창고 같은 공간이였을 것이다. 물꿩을 만난 듯 산뜻하기도 하고 진흙웅덩이 속은 축축하기도 하다. 물 속으로 비추는 작은 희망의 빛은 싱그러움과 청결하고 고결함을 선사한다. 바닷가 마을의 바람과 산바람은 시인의 외로운 마음도 달래고 열정적인 사랑도 달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신화적 세계를 생생하게 그려내며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아름다운 타종 소리 같은 시들이 줄지어 나왔다. 그 중에서 ‘신선 재곤이’를 살펴 보기로 한다.
땅 우에 살 자격이 있다는 뜻으로 ‘재곤’이라는 이름을
가진 앉은뱅이 사내가 있었습니다. 성한 두 손으로 멍석도 절
고 광주리도 절었지마는, 그것만으론 제 입 하나도 먹이지를
못해, 질마재 마을 사람들은 할 수 없이 그에게 마을을 앉아
돌며 밥을 빌어먹고 살 권리 하나를 특별히 주었었습니다.
‘재곤이가 만일에 제 목숨대로 다 살지를 못하게 된다면 우
리 마을 인정은 바닥난 것이니, 하늘의 벌을 면치 못할 것이
다.‘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두루 이러하여서, 그의 세 끼니의
밥과 치위를 견딜 옷과 불을 늘 뒤대어 돌보아 주어 오고 있
었습니다.
··· (중략) ···
그래 “재곤이는 우리들이 미안해서 모가지에 연자맺돌을
단단히 매어달고 아마 어디 깊은 바다에 잠겨 나오지 않는 거
라“던 마을 사람들도 ”하여간 죽은 모양을 우리한테 보인 일
이 없으니 조 선달 영감님 말씀이 마음적으로야 불가불 옳기
사 옳다“고 하게는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두루 그들의
마음속에 살아서만 있는 그 재곤이의 거북이 모양 양쪽 겨드
랑에 두 개씩의 날개들을 안 달아 줄 수는 없었습니다.
-「신선 재곤이」 부분
재곤이라는 이름의 앉은뱅이 사내는 장애를 가진 아이였는데 한국신화에서 신성시 되어오던 ‘거북이’라는 표현으로 재곤이를 신화적인 존재로까지 표현하였다. 재곤이는 공동체적 풍토로 마을 사람들이 함께 돌봐주지만 한 순간 방치되면서 그 지역에서 사라지고 마는데 그로인해 권선징악적인 사상을 바탕으로 마을사람들에게 재앙이 다가올 거라는 두려움이 생기게 된다. 그러나 농사일도 잘 되고 재곤이는 그렇게 마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인물이 된다. 시골이라는 위치가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편한 삶을 줄 수 없었을 것이고 논으로 밭으로 일하러 나가야 되는 농촌의 현실은 아이들을 돌보는 일도 쉽지 않았는데 장애를 가진 사람의 대한 보살핌은 더 어려웠을 것이라 생각된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며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그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와 소소한 도움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현대인들은 마음의 장애를 갖고 살아갈 수 도 있기에 언제나 시와 음악과 미술을 함께하며 식어가는 ‘사랑’의 불씨를 되살려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길 바래본다.
이 시기의 미당 서정주시인은 왜 산문시 형식의 글의 매료 되었을까?를 생각해 보게 한다. 마치 한 편의 동화나 단편소설의 한 부분을 시로 표현한 것처럼 신화이야기가 들어가 있는 새로운 기법으로 시의 흐름을 만드신 것으로 보여진다.
3. 노령화되어가는 시골풍경과 믿음의 결핍
농사를 짓는 농촌의 풍경과 노인들이 아이들을 돌보는 일상이 그려지는데, 여전히 궁핍한 생활과 고된 노동은 삶의 희망을 주지 못하고 서로 믿지 못하는 풍토와 전쟁의 대한 두려움이 팽배해 있었을 것이다. 먹거리의 부족함은 종종 싸움을 일으켰고, 서민을 보호 할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지 못하고 일본의 침략적 단편을 드러내고 있다. 그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보고 글을 배우던 의지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 ‘말모이’에서도 한글과 토속어를 지키려고 노력했던 많은 사람들의 모습들은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 뭉클하게 만드는 부분 이였다.
연꽃의 아름다움의 시선을 빼앗길 정도로 그 고장의 풍경은 일품 이였고 ‘미륵보살 마애불’상은 하나의 희망적 매개체 역할을 했을거라 짐작 되어진다.
시 중에서 ‘오동지 할아버님’의 전문을 읽어보기로 한다.
“콩으로는 메주를 쑬 것이구요.
팥으로는 팥죽을 쑬 것입니다.“
아무리 일러 드려도 곧이 안 듣는
오동지 할아버님 고드름 수염.
빳빳이만 뻗어난 고드름 수염.
“눈 감으면 코 베 먹어, 코 베어 먹어!”
그래서 동지섣달 첫새벽부터
담뱃대로 재떨이만 또드락거리는
오동지 할아버님 안 감기는 눈.
감으려도 감으려도 안 감기는 눈.
- 「오동지 할아버님」 전문
고향에서 지내며 농촌사회에서의 미당 서정주 시인은 어린이와 노인의 모습들을 관찰하며 은유적 방법으로 사회상의 문제점을 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신화적인 발상은 불교적 고찰과 번뇌를 거듭하며 다듬어져 가고 “눈 감으면 코 베 먹어, 코 베어 먹어!”는 믿음의 결핍과 시대적 상황의 안타까움을 강조한 부분이다.
할아버지의 일상은 한국국민들의 일상 이였고 의식주의 결핍은 믿음의 결핍을 일으켰으며 약탈과 불안감은 팽배해 있었다. 지식인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며 시대적 어려움을 극복해 낸 거인의 모습이다. 그 속에서도 걸작과 명작이 나오고 미당 서정주 시인의 초현실적인 상상력은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시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4. 나가며
고등학교 시절 감상적인 소녀에서 바라보던 미당 서정주 시인의 작품들은 몇 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신선한 감성을 느끼게 하며 시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초현실주의적인 상상력은 영화나 드라마의 은근히 많이 나오는 부분이며 부족함이 없는 문장력과 탄탄한 문법적 부분과 리듬과 운율은 시의 지속성을 지니게 했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심적으로 어려운 시대상을 극복하고 교육의 매진하여 ‘시’세계의 개척자로 다수의 작품을 남기시고 후대의 시인들의 마음을 울리는 걸작으로 보존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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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문헌>
「질마재 신화」 서정주 시집, 은행나무,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