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의 투자자 추적 연구가 드러낸 불편한 수렴
불과 몇 년 전까지 자산운용사들은 ESG 펀드를 앞다투어 출시했고, 언론은 '가치 투자 혁명'을 이야기했습니다. ESG는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방향 전환이라는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ESG펀드가 빠지고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습니다. 그때 모습은 어디에 있을까요?
스탠퍼드대학의 데이비드 라커, 브라이언 테이언, 아미트 세루 교수는 2022년부터 매년 동일한 방법론으로 미국 투자자들을 추적 조사해왔습니다. 개인 투자자와 기관 투자자를 동시에 관찰한 4년간의 종단 연구입니다.
결과는 명확합니다. ESG에 대한 열정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수렴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수렴의 방향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듯합니다. 이 글은 이 연구가 드러내는 네 가지 구조적 변화를 살펴보고, 기업과 투자자에게 어떤 시사점을 던지는지 다루어 보겠습니다.
#1: 개인투자자간의 '세대 격차'는 좁혀졌다 - 가장 강력한 ESG 지지층의 '붕괴'
2022년 첫 조사에서 젊은 투자자(MZ세대)의 약 70%가 기후 위험에 깊은 우려를 표했습니다. 고령 투자자는 35%. 두 배에 달하는 격차였습니다. ESG를 위해 포트폴리오 가치의 6~10%를 기꺼이 포기하겠다는 답변도 젊은 층에서 두드러졌습니다.
3년 후인 2025년,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은 달라졌습니다. 환경·사회 문제에 우려를 표하는 젊은 투자자는 45%로 떨어졌고, 고령 투자자는 38%로 올랐습니다. 격차는 7%포인트.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라 보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수익 희생 의사는 더 극적입니다. 젊은 투자자의 중간값이 약 4%, 고령 투자자가 3%. 사실상 같은 숫자입니다.
한마디로, ESG의 가장 열렬한 지지층이 '보통 투자자'로 돌아온 것입니다.
#2: ESG는 '사치재'처럼 작동한다.
왜 이런 반전이 일어났을까요? 정치적 양극화, 그린워싱 피로감. 다 일리 있는 해석이지만, 연구 데이터는 더 단순하고 더 불편한 방향을 가리킵니다.
많은 개인 투자자에게 ESG는 사치재처럼 작동합니다. 경기가 좋고 기대 수익률이 높을 때, 혜택이 불확실하고 장기적인 이니셔티브에도 기꺼이 지갑을 엽니다. 인플레이션이 치솟고 시장이 흔들리면, 가장 먼저 줄이는 것이 바로 그 여유의 지출입니다. 바람이 좋을 때는 높이 떠오르지만, 기압이 바뀌면 가장 먼저 내려오는 풍선. ESG에 대한 투자자의 지지가 그런 모습이었던 듯합니다.
불편한 지점은 여기입니다. 투자자들이 가치를 '버린'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그 가치에 대한 지불 의사가 경제 상황에 연동되어 있었을 뿐입니다. '말뿐인 선호'와 '실제 지불 의사' 사이에 생각보다 훨씬 넓은 간극이 있었고, 4년간의 경제적 충격이 그 간극을 가감 없이 드러낸 셈입니다.
#3. E, S, G는 같은 속도로 식지 않았다.
이 연구의 데이터는 흥미로운 패턴이 있습니다. 사회 영역(다양성, 소득 불평등 등)에 대한 지지가 2023년부터 가장 먼저 빠졌습니다. 환경, 특히 기후 관련 우려는 비교적 오래 버텼습니다. 환경 지지도가 유의미하게 꺾인 것은 2025년에 이르러서였습니다.
이 순서는 시사하는 바가 큰 듯합니다. 투자자들은 ESG를 하나의 덩어리로 본 적이 없었던 듯합니다. 위험이 구체적이고 타임라인이 보이는 영역(기후 리스크)과, 중요하지만 추상적인 영역(사회적 이슈)를 처음부터 다르게 저울질하고 있었습니다. 전체 열의가 식는 와중에도 그 구분은 유지되었습니다.
ESG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동일한 무게로 추진하던 시절의 전략이 왜 작동하지 않게 되었는지, 이 순서가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4. 기관 투자자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개인 투자자의 변화가 극적이었던 반면, 기관 투자자들의 답변은 4년 내내 거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대형 자산 소유자와 운용사의 약 75%가 투자 결정 시 ESG를 고려한다고 답했습니다. 건재해 보이지만 이유를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기관에게 ESG는 처음부터 '이상'이 아니라 '위험 관리 프레임워크'였습니다. 지배구조는 이미 가격에 반영된 기본 조건. 환경은 기후 리스크에 초점을 맞춘 중기적 변수. 사회는 데이터 보안 등 일부를 제외하면 제한적 역할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기관들은 ESG를 비대칭적으로 활용해왔습니다. ESG가 나쁘면 재무가 좋아도 빠질 수 있지만, ESG가 좋다고 약한 재무를 보상해 주지는 않습니다. ESG는 수익의 엔진이 아니라 리스크의 필터인 것입니다. 이는 지난 포스팅 "ESG는 돈이 되는가"에서도 언급한 맥킨지의 조사와도 일치합니다.
2025년, 개인 투자자들의 태도가 바로 이 기관적 관점으로 수렴하고 있습니다. '이상주의 ESG'에서 '실용주의 ESG'로의 전환이 시장 전체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셈입니다. 기관 투자자들은 개인 투자자들의 '미래'를 먼저 살고 있었던 듯합니다. 이상주의라는 우회로를 거치지 않았을 뿐, 목적지는 처음부터 같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기업은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연구가 기업 경영진과 이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우리의 ESG 전략은 무엇 위에 서 있는가."
첫째, 투자자의 이타심에 기대는 ESG 전략은 쉽게 무너집니다.
"MZ세대가 원하니까", "소비자가 가치를 중시하니까"라는 논리로 구축된 ESG 프로그램은 경기 하강기에 가장 먼저 정당성을 잃습니다. 투자자 지지의 기반이 이타심이 아니라 경제 상황에 연동되어 있었다는 것이 4년간의 데이터로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ESG를 위험 관리의 언어로 재구성해야 합니다.
"우리는 좋은 기업입니다"가 아니라, "우리는 이러한 위험을 이렇게 관리하고 있습니다"로 커뮤니케이션의 프레임을 바꿔야 합니다. 기관 투자자들이 이미 이 프레임으로 ESG를 평가하고 있고, 개인 투자자들도 그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셋째, 모든 ESG 문제를 동일한 무게로 다루지 말아야 합니다.
기후 리스크처럼 위험이 구체적이고 타임라인이 명확한 영역은 투자자 지지가 유지됩니다. 반면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사회적 의제는 경제적 압박기에 가장 먼저 지지를 잃습니다. 제한된 자원을 어디에 집중할 것인지에 대한 전략적 우선순위가 필요합니다.
넷째, 기회비용을 투명하게 소통해야 합니다.
투자자들은 ESG가 공짜가 아님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숨기는 대신, ESG 투자의 비용과 기대 효과를 솔직하게 제시하는 기업이 오히려 신뢰를 얻을 것입니다.
THOUGHT LEADERSHIP:
이 연구를 읽고 나면 묘한 감각이 남습니다. 열정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ESG의 장기적 생존 가능성을 높여줄 수 있다는 느낌입니다. 이상주의 위에 세운 움직임은 환멸이 오면 무너지기 쉽습니다. 위험 관리와 실용성 위에 세운 프레임워크는 경기 사이클을 넘어 지속될 수 있습니다.
투자자들이 ESG에 등을 돌린 것이 아닌 듯합니다. ESG를 다른 모든 투자 고려 사항과 동일하게, 제약 조건, 기회비용, 변화하는 경제 현실에 종속된 변수로 취급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ESG가 진정으로 주류가 되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일지도 모릅니다.
특별 대우를 잃은 ESG가 비로소 주류가 된 것 같습니다.
본 글은 David Larcker, Brian Tayan, Amit Seru, "Research Reveals a Fundamental Shift in How Investors View ESG," Harvard Business Review, February 18, 2026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