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일기쓰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니었다.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쓰는 것이니 누구보다 잘 알 것이고, 또 누구에게 보여줄 일도 없으니 편안함 마음으로 솔직하게 쓰면 된다. 그런데 왜 나는 지금까지 일기를 쓰지 않고 이제야 몰아서 써야겠다는 생각을 뒤늦게 하게 된 것일까.
첫 번째 이유는 귀찮아서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만한 이유다. 일기를 쓰려면 하루 일과가 끝나야 하는데 자기 전에 책상 앞에 앉아 일기를 쓰는 습관이 없었다. 일기 쓸까? 그런데 귀찮다. 책상 앞보다 침대 위로 가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두 번째 이유는 좋게 말하면 ‘미래 지향’이다. 나는 현재보다는 미래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오늘의 나보다는 내일의 나를 기대한다. 문제는 현재에서부터 출발하는 미래지향이 아닌, 막연한 지점에서 기대만으로 일관하며 미래의 나를 세워두고 현실을 안일하게 넘기려는 것이다. 공허한 결심만이 메아리치는 일기장의 문장들. 다음날 보면 부끄러웠다. 왜 그렇게 장밋빛 미래만으로 가득 채웠을까. 다음 이유와 같은 맥락에서 설명된다.
세 번째 이유는 현재의 나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후회하고 반성한다면 그것을 기록하고 다음에는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면 된다. 하지만 나의 기록은 후회에서 반성으로 가지 않고 원망과 저주로 이어졌다. 오늘 내가 느낀 좌절의 감정들이 쌓이면서 마치 오늘을 리셋하고 내일부터 잘 해보겠다는 공허한 다짐들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이외의 이유로는 마음에 드는 일기장을 찾지 못해서가 있고 일기 쓰는 시간으로 밤이 좋을지, 낮이 좋을지 모르겠어서도 있다. 남들이 보기에는 핑계 같겠지만 나는 고민한 이유들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들이 얼마나 가볍고 사소한 것인지 이제 알겠다. 위기의 마흔이 되어 일기를 쓰겠다는 다짐을 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다. 나는 낭떠러지에서 쓰는 기분이다. 하지만 이런 비약은 현실과의 괴리를 만들고 또 이 일기는 흐지부지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가벼운 마음으로 지금을 기록할 것.
나는 나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 이게 나라고 체념하면서 그냥 경향성에 이끌린다. 칸트를 존경한다면 최소한 그의 이론을 염두하며 살아야하는 것이 아닐까. 자신에게 율법의 형태로 자율성의 개념을 내려야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존경하는 사람은 칸트다. 임마누엘 칸트. 독일의 철학자로 관념론을 주장한 그는 ..... 왜 그를 존경하는 거지? 그를 존경한다면 그가 제시한 몇가지 원칙을 지켜야하는 것 아닐까. 거짓말 하지 말라. 의무의식. 존경심. 뭐 그런 것들. 머리가 따라가 주지 못하면 최소한 시간약속이라도 잘 지키면 좋겠다.
졸음이 쏟아진다.
나는 쓰지 않으면 죽어있는 것 같다.
하루를 가장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이 일기 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