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도 처음이라 설레는 경험들
첫. 처음. 어떤 단어 든 첫이라는 글자를 붙이면 두근거림을 느낀다. ‘첫’은 아주 오래전 과거일 수도 있고, 또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일 수도 있다. 그래서 그리움일 수도 있고, 기다림일 수도 있다. 사람마다 ‘첫’은 다른 경험과 기억을 불러오겠지만 그 느낌은 닮아있다. 첫. 무언가 가슴에 떨어져 파동을 만들고 물끄러미 그 장면을 지켜보는 것이 아닐까.
나의 첫은 기억에서 소실된 것도 있지만 아기의 첫은 감탄과 반가움 속에서 하나하나 기억 속에 남아있다. 누구나 자신의 첫보다도 자식의 첫을 더 많이 알 수 밖에 없다. 아이가 처음 했던 뒤집기나 아이가 처음 먹어본 야채나 과일, 고기와 과자 등등이 육아일기에 적혀있기 때문이다. 걸음이 늦은 편이었던 아이가 처음 걷던 날의 발냄새는 고소했다. 처음으로 한 말은 ‘안아’, 즉 안아달라는 요구였다. 아기의 첫은 무엇이든 뿌듯한 자랑이 된다.
한편 마흔의 첫은 어떨까. 마흔의 첫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두가지 반응으로 나뉠 듯하다. 하나는 ‘마흔 될 때까지 안 해봤어?’라며 나의 늦은 첫 경험에 의외의 시선을 보낼 수 있다. 예를 들어 마흔이 되어 처음으로 해외 여행을 가봤달지, 처음으로 주식 투자를 해봤달지. 반대로 마흔에 이르게 첫경험을 겪은 경우다. ‘마흔인데 벌써?’라는 반응으로 주로 노화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듣는다. 마흔에 겪는 노안이나 오십견 같은 증상에 해당될 것이다.
마흔의 첫경험은 어색하다. 그래서인지 처음이 아닌 척, 익숙한 척 연기를 한다. ‘남들은 다 해본 것일 텐데. 혹은 남들은 아직 하려면 멀었는데.’ 속마음을 숨기고 의연하게 나의 첫을 경험한다. 축하와 위로는 스스로 하면서 첫을 맞이한다.
나에게는 어떤 마흔의 첫이 있었을까. 사소한 것부터 생각해본다.
치장과 미용에 무심했기에 첫 메이크업, 첫 피부관리, 첫 명품을 모두 마흔에 경험했다. 사진 찍을 일이 있어서 고민 끝에 한 번씩 메이크업과 피부관리를 받아봤다. 만족하면서도 어딘가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스럽지 못했고 막연히 다음을 약속하면서 나와는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품가방도 마흔이 되어 처음으로 사봤다. 받는다면 거절할 생각은 없었는데 한 번도 선물받은 적은 없었다. 나는 명품 안 좋아할거야, 라는 인상이 굳어진 것인지, 아니면 하고 다니는 스타일에 어울리지 않다고 판단한 것인지 주변의 누구도 명품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대부분이 몇 개의 명품가방을 갖고 있었다. 고민 끝에 나도 명품가방을 샀다. 버버리 백팩으로 늘 짐이 많았기에 실용성이 좋았다. 로고말고는 다른 장식도 디자인도 없어서 이걸 왜? 굳이? 버버리에서? 라고 물어볼 수 있겠다. 하지만 나는 확실히 만족했다. 그 기간이 길지 않았지만.
마흔에도찾으면 첫이 많다. 첫 국가건강검진.... 하지만 마흔에는 첫을 있는 그대로 순수하게 처음으로만 반기지 못한다. '처음이야.'의 설렘을 중년이라는 시간이 압도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첫들은 아예 놓치고 만다. 처음이라는 것. 처음이니까 실수해도 괜찮다고 이해해줄 수 있는 마음이어야 한다.
찾아보면 마흔에도 수많은 첫들을 만난다. 첫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첫을 발견할 수도 있다. 사소한 상황에서도 ‘처음이네!’ 신기해하고 반가워하는 것이 어떨까. ‘남들은 수없이 한 걸 이제야 첫이라니’ 비교하며 위축되거나 ‘마흔 넘어서 처음이면 안하는 게 낫지 않을까?’ 포기해버리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첫에는 실패에도 ‘처음이니까’라는 이해와 ‘다음에는 잘 할 수 있다’는 격려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니까 마흔의 첫을 만나면 반갑게 맞아주어야할 것이다.
김혜순 시인의 <당신의 첫>이라는 시가 떠오른다. 첫, 첫, 첫, 첫. 시어로 반복되는 첫을 만나면서 첫의 주문을 상상해본다. 내일 만날 마흔의 첫들이 찾아오기를 바라며.
첫첫첫첫. 김혜순 시인의 시에 나오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