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살쯤이었을까, 한자로 내 이름을 쓰는 법을 처음 배우던 날, 엄마는 이름에 얽힌 사연도 이야기해 주셨다. 이름 두 자의 뜻은 각각 [은혜 은], [클 석]이다. 외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인데 은혜가 큰 아이라는 뜻이다. 은혜라는 것은 신으로부터 받은 은총이라는 뜻이니 풀이해 보면 신께 감사한 마음이 크다는 것인데, 갓 태어난 아기의 이름이 감사의 상징이 된 것은 내가 엄마를 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외할아버지는 ‘네 덕분에 우리 딸이 살아있고 그래서 고맙다’고 말씀 하시며 내게 은석이라는 이름을 주셨다. 갓난 아기가 무슨 힘이 있다고 엄마를 구했다는 걸까.
1994년 10월 21일.
내가 태어난 지 일주일째가 되던 날 아침 엄마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는데, 성수대교가 무너졌다고 한다. 성수대교는 부모님 두 분이 직장에 오갈 때 매일 건너던 다리였다. 당시 엄마는 강남구 논현동에서 일하고 있었고 아빠는 여의도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매일 아침 노원구에서 한 차로 출발 하시던 두분은 7시 35~45분 사이 성수대교를 지나가셨다고 한다. 성수대교가 붕괴된 것은 10월 21일 금요일 오전 7시 38분이다.
만약 내 출생 예정일이 한 달이라도 늦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 세명은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다행스럽다고 생각하다가도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가져간 비극적인 사건이기에, 우리 가족의 행운이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가족과 함께 할 수 있어 감사하고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길 줄 알게 되었음은 분명하다. 죽음과 가까이 설 때 삶의 소중함을 선명하게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내게 앞으로 주어지는 모든 순간과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 싶다.
성수대교 붕괴 사건으로 세상을 떠난 32명의 서울 시민에 대한 깊은 애도를 담아, 그리고 내 인생의 소중한 인연들에 대한 감사함과 사랑을 담아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