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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로빈 Jan 17. 2021

1개월, 인턴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사회생활 1개월 차의 따끈따끈한 한 달 소감  ​


1. 일로 만난 사이

    나는 총 근무인원 수가 무척 적은 스타트업 회사에서 인턴을 하고 있다. 그 말인즉슨 근무하는 사람끼리의 거리감이 굉장히 가까운 업무환경 속에서 일을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거리감이란 책상과 책상 사이, 즉 물리적 거리감이 가깝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각자의 일상에 스며들어있는 정도가 깊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 직장동료들끼리는 한 달 사이에 일반적인 친구끼리 터놓는 정보와 텍스트보다 훨씬 많은 양을 공유했다. 그 정보는 하루 동안 처리해야 하는 업무의 양, 각자의 일정, 업무 우선순위 등 일과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그날 퇴근을 정시에 마치고 서둘러 집에 가야 하는 이유라던지, 최근 만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취미는 무엇인지, 따로 하고 있는 부업이 있는지, 있다면 그 업무는 회사의 업무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닌지 등 어떻게 보면 무척이나 사적인 정보까지도 포함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각자가 지닌 많은 양의 정보를 매일매일 갱신하면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사실 업무를 효율적으로 진행시키는 데에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으나 장기적으로 보면 조금은 피로한 일이기도 하다. 그 날의 기분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업무 효율을 방해하는 개인적인 사건이라던지, 최근 생각 중인 고민이나 개인적인 계획 등은 사실 친구로서 만나는 사이라면, 그리고 굳이 말해야 할 필요가 없다면 안 해도 괜찮은 대화 주제이지만, 업무에서 만난 상사와 부하의 관계에서의 대화라면 쉽게 대화 주제에 오르고 그것에 대해서 적당히 업무의 톤에 맞는 대답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는, 나에게 이러한 사적인 정보를 물어오는 상대방이 정말로 나와 개인적으로 친해지기 위해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인지가 궁금해질 때가 많았다. 우리는 일로서 만난 사이기 때문에, 그런 위화감을 늘 어딘가에 감춘 채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개인에 대한 호감과 친해지고 싶다는 모종의 소유욕구, 연결 욕구에서부터 출발하는 친구나 애인관계는 나의 정보를 공개하는 데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경계심이 덜하다. 하지만 일적으로 소통을 한다는 것은 그 전제부터가 조금 다르다. 우리는 서로와 친해지는 것에 대해서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전혀 전제하지 않았다가 이제 '계속 같이 일할 사이니까'라는 이유로, 필요에 의해서 어느 날 갑자기 점점 거리감이 좁아지게 된 인간관계에 해당한다. 우리는 '일'이라는 카테고리로 엮여서 우연히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던 인간을 만나게 되었을 뿐인, 그러나 같이 일하기 위해서 어떤 식으로든 가까워져야 하는 사이로서 같이 소통하고 있는 사이인 것이다.


   물론 상대방이 인간적으로 호감이 들지 않는다거나, 친해지는 것에 있어서 거부감이 드는 것은 아니다. 지금 다니는 직장의 사람들은 다행히도 친구로도, 직장 동료로서도 좋은 편에 속하는 사람들이라서 한꺼번에 많은 정보를 드러내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도 내가 견뎌야 하는 부담감이나 스트레스가 아주 크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나라는 사람은 '친구'도 '애인'도 아닌 '동료'라는 인간관계의 카테고리 자체를 처음 경험해본다는 점이 문제였다. 내가 이 사람에게 '어느 정도까지' 내 정보를 공개해야 하며, '왜' 그 정보를 공유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남을 때가 있어서였다. 내가 얼추 내린 결론은 '같이 잘 일해보기 위해서'였다. 일단 어떻게든,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의 텍스트 안에서 비슷한 결을 찾아내서 같은 흐름을 타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업무 환경이 되지 않으니까, 그런 식으로는 업무를 보는 공간 자체가 너무 텁텁하고 괴로워지니까. 결국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여러 가지의 과업을 잘 넘어가기 위해서 서로 친해지는 과정에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2. 원하는 일만 할 수는 없어서

  직무가 뚜렷하게 나뉘어 있는 다른 회사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일하는 회사는 우선은 인턴이라도 이런저런 다른 일을 넘겨받아서 어떤 식으로든 끝을 보아야 하는 곳이다. '콘텐츠 에디터'로서 진행해야 하는 일러스트나 글 연재 작업 외에도 정부 지원사업이라던지 다른 업체에 대해 영업을 진행해야 한다던지, 공공 서신을 보내야 한다던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런 업무 환경이 이어지는 이유는 결정적으로 일하는 인원이 제한적이기 때문이었다. 특정 아이디어나 기획으로부터 시작되어 본격적인 매출이 발생할 때까지 긴긴 보릿고개를 넘으며 투자자들의 자본을 끌어와야 하는 스타트업 회사는 본질적으로 일을 딱 나눠서 할 수 있는 환경이 못 되는 듯 보였다. 


   업무를 가려서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섞이고 꼬인 업무 현황을 새로운 사람에게 인수인계를 할 수 있는 여유 따위도 스타트업에게는 없어 보였다. 스타트업의 인턴으로서, 내가 일을 배웠던 단계는 얼추 다음과 같았다. 먼저 일을 배정받는다. 물론 해본 적 없고 써본 적 없는 일이다. 그러면 나는 먼저 일하고 있었던 전임자에게 관련 업무에 대해서 묻는다. 당연히 그 전임자는 기존에 하던 일이 잔뜩이라 나를 신경 쓰며 하나하나 알려 줄 시간이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그 전임자는 생명줄과도 같은 usb 하나에 모든 인수인계 파일을 담아서 나에게 건네준다. 나는 막막해진 심정으로 그 안에 담겨 있는 수많은 파일 속에서 유사 답안을 추려내고 짜깁기 한 다음 보고를 한다. 그 파일에서 나의 오갈 데 없는 막막한 심경이 아닌 '일을 대충 했다'라는 인상을 받은 상사는 나 대신 나에게 usb를 건네 준 직원에게 '왜 인수인계를 이렇게 했느냐, 왜 더 도와주지 못했느냐'라는 쓴소리를 건넨다. 그러면 우리는 둘 다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일에 대해서 깊게 대화를 나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수정을 한다. 그리고 그것을 전임자가 검토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서 전임자가 그 일을 처음부터 다시 한다. 그리고 제출한다. 


   문서 정리, 사업 지원, 무역 및 물류 상황 점검, 기획과 보고,... 어떤 일이든 주어진다면 해내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야말로 '해보는 것'밖에는 없었다. 그리고는 내가 만든 엉성한 결과물에 대해서 어쩔 수 없이 내 옆자리 동료에게 누를 끼칠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그 안에서 '이 일은 내가 하려던 일이 아닌데, 내가 선택한 직무가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사실상 의미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선택한 직무에 대해서조 차 나는 잘 알지 못하지 않던가. 따라서 내가 배정받은 업무에 대해서 나의 선택권이 없음을 탓하는 것보다, 내가 배정받은 업무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는 데도 나에게 일을 주고, 계속 고용하고 있는 이 회사의 아량으로부터 나는 긍정성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내가 답답한 것 이상으로 이들은 나를 끌고 일을 굴려나가기 위해서 답답함을 감수하고 있을 테니까. 



3. 우선순위와 변수 사이에서

  한 달 차인 내게 누군가 회사 일을 두 단어로 요약해보라고 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싶다. 첫째. 회사 일은 결국 누군가가 해야 하는 일을 가장 마지막에 넘겨받은 사람이 어떻게든 해내는 것이다. 둘째, 회사 일은 결국은 규칙적 업무과 불규칙적 변수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어떻게 조율하는 가에 대한 문제이다. 앞서 말했듯 스타트업은 업무의 변동 폭이 크다. 어떤 날에는 갑자기 두세 개의 사업 지원서류를 작성하면서 동시에 만화 한 편을 완성해야 할 때도 있고, 어떤 날에는 시간이 남아서 직원들끼리 커피를 한잔 하고 일찍 퇴근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후자의 경우는 잘 없긴 하다.) 고정된 업무 패턴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고정된 패턴으로만 일을 하지 않는, 그 미묘한 중간 경계 안에서 나는 어떤 업무가 가장 급하고, 어떤 업무가 비교적 덜 급한지에 대한 경중을 깨닫는 센스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우선순위를 설정할 때 가장 괴로운 것은 내가 원래 하고 싶었던 업무, 즉 나의 직무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일들-글과 그림 연재-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날 때다. 내가 심적으로 지향하는 업무는 따로 있는데, 그 외의 업무들이 회사차원에서 무척 급하고 중요하기 때문에 그 일들이 '그런 건 좀 나중에 해도 되는' 일 취급을 받고 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결코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니며, 나는 회사가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업무를 맡을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늘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이 회사는 도저히 혼자서 처리할 수 없는 일을 나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이니 나는 고용된 사람으로서 잘 도와줘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잘 다독여주는 것이다. 


닫는 글. 인턴,  "人 turn"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다. 일상을 깨고 들어오는 변수에 예민하고 스트레스를 잘 받는 성격이었던 나는 이 한 달 사이에 '미래의 일은 그때 가서 생각하자', '지금 있는 일 중 할 수 있는 것을 해내자', '일은 결국 하면 끝나는 것이다' 등 전에 하지 못했던 마인드 컨트롤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만큼 많은 양의 변수와 스트레스에 직면했었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잘 살아남아서 이렇게 한 달을 돌아보는 글을 적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6개월이라는 끝이 있는 계약기간과 어떻게 풀려나갈지 모르는 그다음의 고용불안에 대한 걱정, 위태위태하지만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중인 자취 라이프, 그리고 삼순 없이도 살 수 있음에 대해서 스스로가 인지해나가는 심리적 치유기간까지.. 2021년은 정말 어느 때보다도 앞날을 알 수 없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주어진 하루에 충실하다. 다음 달이 되어 이번 달을 돌아볼 때에도 스스로가 변해가는 모습을 긍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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