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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 로빈 Feb 07. 2021

"스타트업이니까"


"퇴근하고 로빈만의 삶을 살겠다는 것이 로빈의 라이프스타일이라면, 그렇게 살아야죠. 그렇게 사는 것이 맞아요. 월차, 연차.. 챙길 것 챙기고, 일 할 때는 열심히 하고, 퇴근하면 스위치 딱 끄고. 그런 라이프스타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겠어요. 그런데 로빈이 말하는 건 약간 이런 거랑 비슷해요. 가족 셋이 있다 이거야. 아니다. 가족은 너무 구차하다 그렇죠? 다른 비유.. 그래 뭐 그냥 친한 친구라고 하자. 완전 생사를 같이하는 친구가 로빈 포함 세명 있다 이거야. 같이 프로젝트를 하는데, 한 사람은 맨날 발표 맡아서 하느라 정신이 나가 있어. 또 다른 사람은 다른 자료 정리하고 발표자 도와주느라 넋이 나가 있고. 그런데 그 옆에서 도와주는 로빈은 '어 나 먼저 가볼게'라고 하고 그냥 집에 가는 상황이란 말이야. 그런 거예요. 로빈이 원하는 거, 바라는 거, 일하다가 느끼는 단점들.. 저도 모르지 않은데 회사 입장에서는 지금 최대한으로 신경 써주고 있는 거거든요. 로빈이 우리 회사의 비전을 보고 같이 하고 있다는 건 알지만.. 솔직히 사실이 그래요. 스타트업이잖아요. 이게 로빈한테 도저히 받아들이기가 어렵고 로빈과 정말 맞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면, 그냥.. 하루라도 빨리 로빈에게 맞는 곳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월요일의 면담은 그야말로 정중한 퇴사 권유였다. 아니, 퇴사하지 말라는 말과 동시에 지금의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고 일하라는 본 뜻을 권력자의 언어로서 정당화시키는 자리였다. 우리가 일하는 방이 아닌, 다른 회사 사람들의 작은 사무실에 들어와 앉아 면담을 진행하면서 내가 느낀 바는 그랬다. 나는 내가 이런 대화를 나눴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었을까. 사내에서 한 번도 쓰여본 적 없는 월차를 직설적으로 언제부터 쓸 수 있는지 물어보았던 것? 월급날이 주말인데 금요일에 월급을 주는지, 주말이라도 그 날에 월급을 주는지 물어보았던 것? 정시에 퇴근하였던 것? 금요일에 맡은 업무를 주말에는 관리 및 진행하지 않았던 것? 일이 한 번에 많이 쏟아지는 것과 동시에 인수인계는 전혀 없고, 그것을 진행한 것에 대한 책임만을 지는 근무환경에 대해서 입이 대빨 나온 표정을 지으며 일했던 것?



스타트업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다는 말은 실로 잔인하게 들렸다. 인턴으로서 처음 사무직을 배우는 모든 청년들이 이런 근무환경을 당연하게 합리화할 수 있으려면 저 위의 일곱 글자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말이었으니까. 스타트업이기만 하면 근무하는 사람 입장에서 부당하게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어쩔 수 없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이었으니까. '세상에 없는 것, 세상에서 안된다고 말하던 것들을 해내는 기업'으로서의 스타트업 정신에 '대신 남들 다 지키며 살기 바라는 것은 안 지켜도 되는 기업, 왜냐하면 대의명분을 이루기 위해서.'라는 그 한 줄의 설명이 추가되는 것에 기업을 이끌어나가는 대표 본인이 아무런 죄의식과 씁쓸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말이었으니까. 대한민국에서 누군가의 밑에서 일한다는 것은 결국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말이었으니까.



하지만 내가 정말 정말 분함을 느꼈던 것은 그 말을 듣고도 '아 그렇군요? 스타트업이 그렇군요. 그렇다면 어쩔 수 없네요. 저는 스타트업이랑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신경 써주셨는데 감사합니다. 저 오늘까지만 하겠습니다.'하고 회사를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었다는 점이었다. 나는 월세살이에 묶여있었고, 당장 일을 그만둔 다음의 하루하루가 실존 유지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상황에 놓여있는, 그야말로 처음 사회생활과 자취생활을 견디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표님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이 일을 대하고 있는지, 얼마나 진심으로 이 일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말이다. 그런 중에 나에게 '스타트업이 이러니 네가 이해하던지, 아니면 다른 일을 알아봐라'라고 말을 했다는 것은(물론 이렇게 직설적인 표현이 아니라 돌려 돌려 말한 것이긴 하지만), 사실은 본의가 저 말 자체라기보다는 '내가 너를 이 상황까지 몰아갈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강조하는 것과 같았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대표님의 면담은 나에게 우리 사이의 위계질서를 확인시키는 행동 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처사에 속했다.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나온 나는 이 날 처음으로 내가 자취를 시작하기로 한 것을 후회했다. 그저 편안한 잠을 자겠다는 마음으로 인해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내가 잃어버린 것을 세는 것은, 내가 방금 받은 업무를 이해하는 것보다 쉬웠다. 그리고 꼭 그만큼 괴로웠다. 내 16년을 함께한 반려견이 내 자취방 이삿날 나를 마중 나오다 죽었고, 매달 40만 원을 고정비용으로 지출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으며, 내가 눈뜨고 잠드는 모든 순간에 드는 비용을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만 하게 되었고, 그리고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없는 공간에서 노동해야 하는 환경에 스스로를 방치해야만 하게 되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자취를 시작한 것이었을까. 나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일까.



분함과, 속상함과, 그리고 막연하게 생각나버린 삼순이의 얼굴과 냄새 때문에 나는 그날 유달리 일하다가 자주 눈물을 터뜨렸다. 곁을 지켜준 직장 동료는 그 시간만큼은 동료가 아니라, 내 오랜 친구로서의 몫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내 어깨를 한 손으로 꾹 주무르며 함께 울어준 그 친구는, 스타트업이니까 있을 수 있는 모든 사건들을 어떻게 견디며 버텼을까.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 날은 유독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그러지 못했다. 그 친구도 그랬는지 우리는 그날 정말 대화를 얼마 나누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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