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감에 대한 고찰

의무감이 진심으로 피어나기까지

by 도토리

의무감에 대한 간단한 고찰.



보통 의무감이라는 단어는 좋지 않은 의미로 쓰인다. 예컨대 연인 관계처럼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해야 할 사이에서 '의무감'은 결국 사랑이 빠지고 행위만 남게 된 허무한 양태를 지칭할 때 쓰인다. 교회에서도 봉사를 의무감이 아닌 자발적인 마음, 즐거운 마음으로 하라고 가르친다. 이렇게 의무감은 '진심'의 반대어 정도쯤 되는 취급을 받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의무감의 사전적 의미는 부정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은 '상태의 객관적 묘사' 그 자체다. 의무감이란 '의무를 느끼는 마음'이다. (사전을 왜 찾아봤나 싶을 정도로 직독직해 수준의 정의..) 이 정의만 읽어보면 의무감은 오히려 좋은 뜻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 싶다. 의무가 존재한다면 의무를 느끼지 못하는 것보단 느끼는 게 당연하고 마땅하다. 위에서 말했듯이 진심을 쏟아야 하는 분야(연인관계, 봉사 등)에서는 의무감만으로는 부족하지만, 꼭 그러지 않아도 되는 분야, 예를 들어 길가의 쓰레기를 줍는 행위에서는 의무감 그 자체만으로도 빛을 발한다. 길가의 쓰레기를 주우며 "나는 반드시 환경을 지켜내고야 말겠어! 우리 환경은 너무나 소중해 .." 이럴 필요는 없다. 그냥 시민으로서 쓰레기를 봤는데 지나치기 뭐해서, 주워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주워도 괜찮은 것이다.



최근에 든 생각은 의무감을 꾸준히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의무감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공부 이야기를 해 보면, 나는 공부를 하면서 언제나 가슴이 불타올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었다. 아무 감흥없이 진도만 빼는 것은 의미없는 공부, 내가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되새기며 국가의 앞날을 위해 이바지하겠다는 신념으로 공부해야 의미있는 공부. 이렇게 생각했다. 과목에 대한 적성, 내 공부 성향 등 그 무엇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사명감 하나로 고시 공부를 시작한 것이기에 이런 태도를 더욱 강박적으로 견지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고시 진입 초반의 사명감은 옅어졌다. 당연한 일이다. 나 자신 하나 건사하기도 바쁜데 무슨 국가의 앞날을 생각하는가.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한 공부가 더 이상 즐겁지 않아졌다. 연인으로 치면 권태기가 제대로 온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의무감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의무감조차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벼운 수준의 의무감만 있어도 공부를 지속할 수 있을 텐데, 책상 앞에 앉아도 공부할 마음이 전혀 안 드는 지경까지 와 버린 것이다. 고시생으로서 큰 위기였다. 고시생이 공부를 하지 않는다는 건 고시생으로서의 호흡을 멈춘다는 것과 동일하다.



7월의 휴가를 끝내고 8월부터 다시 공부하는 일상에 복귀하면서 스스로에게 매일 의무감을 갖게끔 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경제학과 외교사와 열품타 스터디를 만들었다. 학교 커뮤니티에서 이런저런 챌린지 스터디를 구하기도 했다. (나중에 별도의 포스팅에서 더 자세하게 다루겠다) 지키지 못하면 죄책감과 금전적 페널티가 생기도록 나 자신을 구속하니, 적어도 그런 구속장치가 있기 이전보다는 의무감을 많이 갖게 됐다.



놀라운 것은 형식적인 의무감이 어느덧 작은 진심, 열정이 되어있었단 것이다. "해야되니까 하는 것"에서 "하고 싶어서 하는 것"으로 조금은 변화되었다는 말이다. 의무감은 진심으로 자라나기 위한 하나의 씨앗과도 같았다. 물론 모든 종류의 의무감이 진심이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공부에 있어서는 그랬다. 이렇게 하나 둘 피어난 진심은 앞으로의 공부를 지속하는 데 큰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의무를 갖는다는 것은 건강한 일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무방비상태의 백색 일상은 오히려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작게라도 매일 내가 해야만 하는 무언가가 있고, 내가 그것을 하는지 안 하는지 체크하는 피어 피드백이 존재하고, 해당 의무를 지켰을 때 돌아오는 심리적 보상감이 있다는 것은 하루하루를 윤택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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