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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육쭈꾸미 May 18. 2022

젊은 날의 고통

보그르르... 레몬 맥주 거품 속 지친 얼굴


 부모의 빚을 떠안는 젊은 청춘은 지금도 있다. 우리 주변에 많다. 부모들은 다들 어디서 빚을 열심히 벌어오는지, 책임지지 못할 일을 저지르는건 어린 아이보다 훨씬 심하다. 차라리 아이가 더 어른스럽게 여겨질 정도로... 


 사람이 태어나서 느끼는 행복의 총량은 불행보다 적다.

 그렇다면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게 이득 아닌가?


 계산을 해보자.

 인간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행복이 허락되지는 않지만)

 인생의 1순위 가치가 행복이라는 사람은 널렸다.


 행복.

 손쉽게 말할 수 있는 존귀한 가치.

 대부분의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살아가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삶은 살아도 살아도 고통과 불행의 연속이다. 상식적으로, 불행을 느끼기 위해 태어날 바에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이득아닌가?!


 하지만 이렇게 물으면 다들 어물쩍 어물쩍 그래도 태어난 것이 낫다고 말한다. 신에게 저주라도 받은 것처럼 빌어먹게 느껴지는 인생이, 그때만큼은 다들 소중하게 여겨지나 보다.


 나는 누군가 나에게 그런 질문을 던졌을 때 "일리 있는 말이네. 차라리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겠다."라고 대답했다. 나의 판단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남들이 새 생명을 낳든말든 상관없지만, 내가 새 생명을 만드는 건 엄청난 죄와 저주를 퍼붓는 행위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이토록 고통스러운 삶을 무고한 생명에게 보여주고 싶어? 그런 생각을 하면 죄책감에 뇌리가 멈춘다. 한 생명이 태어나 시름과 근심에 시달리며 평생을 왜 살아야하는지 고뇌하다 답을 얻지 못하고 죽는 모든 과정에 2시간짜리 영화처럼 요약된다. 굳이 인간으로 태어나게 만들어, 그 족쇄를 안겨주고 싶은가? 차라리 현재 살아있는 생명에게 최선을 다하자. 지옥 같은 세상에서 일단 나부터 살리고.


 


 대학생은 인생의 찰나, 저물어가는 빛, 황금기라고 한다. 다들 행복하려고 아둥바둥한다. 하지만 나는 행복을 손에 쥘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행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욕심과 질투가 많고, 대뜸 지루하기 때문이다. 


 3년 전 나에게 가장 귀한 가치는 행복이었다. 얼마전 나는 행복을 달성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즐거움'을 추구했지만, 매번 즐거우려고 노력해도 인생은 더럽게 재미있지 않았다. 억지로 재미를 만드려면 마약인 담배를 피우는 것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그러나 나는 담배(마약)를 하지 않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지루한 삶을 보낸다. 또한 한 목적을 달성하면 금세 실증이 난다. 대학 합격 때도 나는 3시간 정도 기뻤지, 다시 우울해졌다. 개인 성격의 차이일 수 있다. 나는 아무리 기원하던 일을 달성해도 기쁨과 행복이 오래가지 못했다. 더 좋은거, 더 나은거, 아니면 변하지 않는 내 상황에 자꾸만 위로 향하는 욕심이 꿈틀거렸기 때문이다. 


 결국은 생각이 이렇게 도달했다. 지금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가치는

 

 하루를 처리하는 것.

 후회없이.


 찰나를 사는 내가, 영원을 후회하지 않도록.


 굳게 다짐한 것치고는 하루종일 일을 하는 것 같진 않지만, 행복이고 즐거움이고 비현실적인 목표보다는 나를 안심시켜 주는 말이었다. 친구랑 맥주를 기울이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나는 좀 이상한 것 같다고.

 인간세계가 너무나 낯설고, 늘 이방인처럼 느껴진다고.


  친구한테 행복한 적이 있었냐고 물었는데, 친구는 행복했던 적이 있었다고 대꾸했다. 하지만 지금은 너무나 불행하다고 말했다. 고통이 끊이지 않아. 그는 과자 하나를 집어먹으면서,


 죽을 용기도 없는 새끼가 늘 죽을 생각만 하고 살아.


 씁쓸한 미소를 보이는 것이었다. 나도 과자 하나를 집어먹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정말 죽고 싶은 줄 알았는데, 실은 아니더라.

 내가 기필코 살아야 하는 이유를 죽기 직전에 깨달아버렸어. 

 나는 죽고 싶지 않더라.




 태어난 김에 산다.


 요즘 유행어다. 나도 종종 듣는 말이다.


 친구가 나한테 물었다. 넌 왜 살아?


 이유가 없다. 하지만 강렬히 이 삶을 살아나가야 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느낀다. 인간의 뇌에 입력된 '생존 본능'이 강하게 작동하는 것일까. 우리가 조절할 수 없는 뉴런, DNA, 세포 같은 것에 입력된 '숫자' 때문일까.  


 우리는 동물이라서 배가 부르고 잠을 마음껏 잘 수 있으면 기분좋다. 종종 같은 종족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떨면 기분이 풀린다. 인간이란 그렇게 단순한 존재이다. 인간은 어렵고 비상식적이고 이상해도, 그들 역시 안락한 삶을 원하는 동물일 뿐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목표를 위해 일제히 움직이는 개미 군단인 것이다.


 태어난 이유따위 몰라. 그런 건 엄마 아빠한테 가서나 물어봐.


 나는 맥주를 홀짝였다. 가라앉은 레몬이 부글부글 거품을 냈다. 레몬은 어울리지 않는 음료와 음식이 없었다. 따끈따끈한 김말이를 안주로 집어먹으면서 말했다.


 "우리는 아직 어린데, 왜 이렇게 힘들까. 더 나아지는 순간이 올거라고 기다리지만, 올까? 안 온다는 걸 아는데, 우리는 왜 이러고 있을까. 못 죽어서. 죽지 못해 살아있어서. 고작 그것뿐인데."

 "마음가짐을 고쳐 먹어야 해. 삶이 불행하다고 해서, 그걸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그 속에 있는 행복을 찾아내야해."


 친구와 나는 동시에 미소지었다.


 너, 할 수 있어?






 대학가에 축제 열풍이 분다. 연예인과 주막, 부스가 하루하루 색다르게 학생들에게 다가온다. 3년만의(2년일 수도 있다) 축제인 탓에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 몰리고 있다. 그 주인공이였을 대학생, 나는 오늘도 파들파들 떨리는 손으로 과제와 각종 일을 처리하다 이렇게 아무 말이나 지껄이는 일기를 적는다.


 대학생은 마치 맥주 거품과 같다. 미래를 알면서도 취하고, 흔적 없이 사그라들고, 우리를 화나게 만드는, 그런 맥주 거품. 


 낭만과 거리를 먼 생활을 이제껏 계속 해오는 중이지만, 이 역시 나에게 좋은 거름이 되길. 내가 성장하는 발판이 될 수 있길. 그 생각만 하면서 매일을 처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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