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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미골 Mar 30. 2023

스타 직원 문근영씨

슬기로운 농촌생활

새마을회에서 감자 심으려고 날 받아놓으니 때맞추어 봄비가 내렸다. 팅팅 불었던 땅이 고슬고슬해지고 감자 심을 준비가 시작되었다.

 새마을 단체는 각 마을의 지도자와 부녀화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 녀 회장 각 1명씩, 부회장 각 2명씩, 총무 각 1명씩과 감사 2명이다. 서른 명 되는 단체에 임원이 많은 것은 한마디로 일 많이 하라는 것이다. 새마을 단체는 그야말로 봉사단체이다.      


스무여 명이 모였다. 감자 심기가 끝나면 대로를 끼고 있는 마을 앞 길의 쓰레기를 줍기로 했다. 감자밭은 산기슭 구석진 곳에 있다. 남자회원들이 미리 로터리를 치고 거름을 뿌려 놓았다. 새벽 밥 해 먹고 나왔는지 잠꾸러기 봉자가 도착했을 때는 벌써 감자 이랑을 지어 놓고 그 위에 검은 비닐을 덮고 있었다. 봉자는 슬그머니 여자회원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언제 봤는지 총무가 도끼눈을 날렸다. 봉자는 매번 그랬듯이 최대한 빨리 일어나 부리나케 온 것이라고 해명했다. ‘나름 최선을 다하는데 맘에 안 들면 집에 가고’라는 봉자의 말대답이 나오기 전에 총무는 얼른 입꼬리를 올렸다.

 “밭 가에 산수유가 저리도 노랗게 웃고 있는데 제 아무리 총무라도 안 웃고 배기겠어.”

 부지런히 감자 심고 있는 유일하게 아가씨 회원인 연화에게 봉자가 속삭였다. 연화는 큰 눈을 찡긋하며 커다란 엉덩이를 옆으로 비켜 앉았다.     


 면사무소의 복지 담당 직원인 문근영도 이랑에 비닐 씌우는 일을 돕고 있었다. 일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농사라면 이골이 난 회원들이다. 일주일 전 씨감자도 쪼개어 놓았었다. 멀칭 위를 굵은 쇠파이프로 꾹꾹 눌러 구멍을 뚫었다. 연식이 좀 되었다고 애써 밝히는 회원들은 씨감자를 바가지에 담아서 구멍에 하나씩 넣었다. 좀 젊다는 회원들은 쪼그려 앉아서 씨감자가 놓여 있는 구멍을 흙으로 메웠다.      

 올해는 감자밭 옆 빈터에 고구마를 심기로 했다. 감자밭처럼 이랑 위에 흙을 고르고 돌을 주워내고 멀칭을 했다. 고구마 순을 심기에는 아직 밤 기온이 낮아서 사 월 중순으로 미루었다. 감자, 고구마에서 나오는 수익은 불우이웃 돕기에 사용하고 새마을회 운영기금으로도 사용된다. 그렇기에 모두 성의를 다한다.   


총무가 새 참 먹으라고 고함을 쳤다. 조그마한 몸에서 소리가 어찌나 큰지 일꾼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새참은 제일 만만한 김밥이었다. 문근영은 김밥 먹는 모습도 듬직해 보였다. 억센 농부들과 잘 어울리는 보습도 예뻤다. 서른도 채 안 되어 보이는 그는 나이 많은 회원에게는 손자뻘이고 봉자에게는 아들뻘이다.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 편안한 목소리를 가진 그를 봉자 또래의 회원들은 스타 직원이라고 불렀다. 그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싫어하지 않았다.

고구마밭 가의 청매화는 회원들이 새참을 다 먹도록 포리 한 꽃잎 그늘을 만들어 주었고 향기는 덤으로 내어 주었다. 복숭아 몇 그루도 분홍보자기를 펼쳐 놓은 듯했다.     

 자잘한 꽃들 옆에는 목련이 하늘을 향해 시원시원한 꽃망울을 내밀고 있었다. 목련이 피려면 며칠은 더 있어야 하고 고구마를 심으려면 아직도 멀었다. 일 년을 기다려 꽃 피우는데 며칠 피어 있지도 못할, 누가 봐 줄이 없는 산골짝의 목련은 꽃이 피기도 전에 멍이 들 것만 같았다.     


안타까운 목련꽃망울을 뒤로하고 마을 앞길을 따라 쓰레기를 주웠다. 몸 사리지 않고 쓰레기 줍는 문근영은 회원들 사이를 오가며 편안한 대화를 곧잘 했다. 봉자의 눈에는 직장 생활하는 딸들의 모습이 겹쳐져 보였다.  

 줍킹 하고 봄 구경도 하고 일거양득이었다. 만 보를 채우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이도 있었다. 혼자 보는 봄보다 여럿이 보는 봄은 더 예뻐 보였다. 밭 귀퉁이에 심겨있는 마늘이 얼마나 실했는지 보는 사람마다 한 마디씩 했다.  

 “요만할 때 뽑아가 고추장에 무치믄 막걸리 안주로 그만이제. ”

 “저 광대나물 좀 봐래이. 지가 밭주인 맨치로 온 밭을 다 차지하고 꽃이 만발했데이.”

 “광대나물도 쪼맨창 삶아가 무쳐 먹으믄 약 된다 카더라.”

 “하므 하므.”

먹는 이야기가 자꾸 나오는 건 점심때가 되었다는 것이다.


 “점심 어데 시킸노? 스타 직원 우째 됐노? 한 시간 전에 예약 하라카이 안 했나?”

 시장끼가 도는 회원들이 물었다. 문근영이 길가의 식당으로 회원들을 안내하며 난감해 했다.  어차피 점심은 준비되어 있는 것, 천천히 예약해도 문제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오리구이를 장만할 시간은 생각하지 못 한 채. 세팅해 놓은 반찬이 마르면 맛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잘하려고 했던 그의 의도는 방향을 비켜 갔다.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스타 직원을 보고 봉자가 구원에 나섰다.

 “하이고 우리 스타 직원. 우리 딸내미 친구 동생인데 저거 엄마, 아빠한테 하는 걱처럼 잘 할라 카다 보니 이래 된 기라요. 마침 식당에 우리 팀 밖에 없으까네 암만 늦어도 우리한테 일등으로 줄 깁니다. 시원한 음료수 마시면서 쪼매만 기다립시다요.”

 “딸내미 친구 동생 한번 잘 뒀구먼.  점심 퍼뜩 먹고 가서 오늘 못 한 일 다 할라켔디만”

 남자회원이 빈정거렸다.

 “언니, 오라버니들요. 우리 스타 직원 어때요? 손자 같지요? 아들 같지요? 그러니까 한 번만 봐주자고요.”

 봉자의 말이 끝나자 차기 여회장 감이 거들고 나섰다.

 “그래요. 밥을 굶는 것도 아닌데 쪼매 기다리자고요. 넘도 아니고 젊은 회원 딸내미 친구 동생이라 카는데.”

 그 말이 끝나자 또 한 명의 젊은 여회원이 덧붙였다.

 “요즘은 잘 생기면 반은 용서가 된다 캅디다. 우리 문근영 씨 월매나 잘 생겼습니까?”

  얼떨결에 남의 딸 친구의 동생이 된 문근영이 봉자를 바라 보았다.  봉자가  한쪽 눈을 깜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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