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에서 맞는 아침.
플래비시토 광장
이탈리아 남부 여행의 목적지는 폼페이였기 때문에, 폼페이를 먼저 들렀다가 나폴리로 오다 보니 이틀째 아침은 플레비시토 광장에서 맞는다. 전날 밤의 조명과 장사꾼들이 없이 고즈넉한 광장이었다.
폐부에 젖어드는 신선한 공기를 코로 느끼며, 눈으로는 파란 하늘을 보는 여행객의 마음은 여유롭기 그지없다. 서둘러 어디론가 밀려가고, 앞에서 옆에서 나를 향해 다가오는 사람들을 피해 갈 필요 없는 넓은 광장이 주는 여유야 말로 여행객에게만 허락된 사치(?)가 아닐까 싶다.
다시 카페 감브리누스
이탈리아 아침 문화를 즐긴다고 하기엔 너무 거창하지만, 언제 또다시 올지 모르는 여행객인지라 또다시 카페 감브리누스를 들렀다.
크림과 산딸기가 얹힌 스폴리아텔라가 눈을 유혹했으나, 보통 스폴리아텔라와 럼주가 들어간 바바 각각 하나씩과 커피를 스탠딩으로 즐기면서 '과식좌 아시안'의 면모를 과시했다. 옆에 있는 이탈리안 부부(연인이었는지 모른다)로 부터 대식가라는 타이틀 아닌 타이틀을 얻으며 훗날 기억할 수 있는 추억거리를 만든다.
엘모 성 (Castel Sant'Elmo)
나만 그런 건지 모르지만, 어느 낯선 도시를 가면 도시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높다란 곳을 찾게 된다. 피렌체의 두오모나 조토의 종탑이 그랬고, 비엔나의 슈테판 성당 탑도 그렇다. 리스본의 상 조르주 성도 마찬가지다. 전체를 보면서 붉은 지붕이 엮인 파노라마 뷰를 보면 이런 것이 여행의 묘미구나 싶다.
나폴리에서는 엘모 성이 그런 곳이다. 베수비오 화산, 카프리섬, 멀리 소렌토까지 보이는 전경은 잠깐이라도 나폴리를 들러야 하는 이유가 될 것 같다.
산 마르티노 수도원 근처에 있는 이 성은 왕족들이 살았던 성인데, 그 후 17세기 초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감옥과 군사교도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성은 나폴리의 랜드마크이자, 나폴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입장료의 압박으로 입구까지 가서 나폴리 전경을 보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던데, 늘 '언제 다시 오랴'하는 마음으로 입장료를 아끼지 말고 성을 둘러보고 가면 좋을 것 같다.
엘모성은 입구부터 걸어 들어가는 동안 그 높이 때문에 입을 한번 벌리게 된다. 일반적인 사람 키의 30~40배는 족히 돼 보인다. 몇백 년 전에 지어진 성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견고한 요새 같다는 생각 또한 든다. 이 성에 처음에 거주했던 왕족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왕족으로서의 권위와 위용을 자랑하기 위함이었겠지만, 그 후 감옥으로 사용했다고 하니 그 안에 갇힌 죄수들은 탈옥은 꿈조차 못 꾸었을 법하다.
성을 자세히 보면 평지에 돌을 쌓아 올린 것이 아니라 자연 암반 위에 적절하게(?) 돌을 쌓아 올렸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전형적인 문송이인 나에게는 건축가들의 수학, 공학 지식은 상상 조차 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입장료를 내지 않으려는 여행객에게만 허락된 나폴리 전경과 베수비오 화산의 모습이다. 이 정도만 보기에는 너무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만일까.
나름 프레임 있는 예술 사진을 찍겠다는 마음에 아이폰 카메라를 눌렀으나, 여전히 일반인의 티가 난다. 멀리서 보는 나폴리는 아름답다.
엘모성의 압권은 '어린 왕자'에서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처럼 생긴 베수비오 화산을 배경으로 지중해와 맞닿아 있는 나폴리항이다. 세계 3대 미항이라고들 한다. 과연 3대 미항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겨야 할 것 같다. 한쪽 뷰는 폼페이를 삼킨 베수비오 화산, 그 옆 뷰는 쏘렌토와 카프리섬, 또 한쪽은 또 다른 나폴리 뷰. 그 뷰를 보고만 있어도 나폴리에 올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젠 김민재를 응원하러 오고 싶을지도 모른다.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군 병사들을 닮은 작품(?)도 있으니 덤으로 즐겨도 좋다.
그렇게 엘모성 전체를 찬찬히 소요하며 나폴리가 허락한 뷰를 즐긴 후 발걸음을 옮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