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폭발로 역사 속에서 사라졌던 도시, 폼페이를 목적지로 이탈리아 남부를 가던 차에 세계 3대 미항으로 불리는 나폴리를 들렀다.
저가항공이라 나폴리 왕복으로 18유로에 티켓을 끊은 대신 아주 이른 새벽 비행기를 타고 공항에 내리자마자 폼페이로 갔다. 폼페이 유적지가 품고 있는 그 옛날 아픈 기억을 되살린 후 다시 나폴리로 돌아왔다.
L'antica Pizzeria Da Michele
그렇게 처음 간 곳은 대충 때운 식사를 제대로 하자 싶어 마라도나, 김민재만큼이나 유명한 나폴리 피자 가게. 당연히 나폴리 3대 피자집 중 하나를 골라 찾아갔다.
다 미켈레는 카페 감브리누스보다 약 10년 뒤인 1970년부터 피자를 팔아온 집인 만큼 부심이 가득해 보였다. 그러나 가게 자체는 허름하기 그지없다.
줄리아 로버츠가 나온 영화, 'Eat, Pray, Love'를 촬영한 곳이기도 하고, 영국, 일본 등에 분점을 낼 정도로 유명한 나폴리 3대 피자 맛집.
마늘이 들어간 마리나라와 토마토, 바질, 마을이 들어간 마르게리타 피자 두 종류로 메뉴가 단촐하지만. 맛집들은 어디나 메뉴가 단촐하다는 생각에 기대감이 컸다.
줄을 서서 먹기엔 너무 험난할 정도의 줄이라 과감하게 to go로 결정한 후 들고 숙소로 갔다.
그런데 역시 피자뿐만 아니라 모든 음식은 갓 했을 때가 가장 맛난다는 말이 맞다. 숙소로 들고 가는 동안 멀지 않은 거리였음에도 식어서 맛이 덜하지만, 맥주 한잔 곁들인 피자는 나름 나폴리의 멋을 느끼게 해 주는 심벌이다.
Antica Pizzeria E Friggitoria Di Mattteo
에어비앤비에서 잠시 낮잠을 즐긴 후 나폴리 시내 중심가인 트리부날리 거리로 나갔다.
아주 좁은 길이 길에 늘어선 곳. 그곳을 거닐다 3대 피자집 중 하나인 디 마테오를 지나쳤다.
늦은 시간인데도 인산인해. 또 피자를 먹고 싶었으나 도저히 1박 2일의 여정으로 온 관광객으로서는 아까운 시간을 줄 서는 데 허비할 수 없어서 지나쳤다.
참고로 3대 피자집 중 마지막은 Pizzeria Brandi라고 하는데 가 볼 시간은 없었다.
브란디는 마르게리타 피자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곳으로 유명하다. 1889년 이탈리아 사보이(Savoy) 가의 마르게리타 왕비가 나폴리를 방문했을 때 피자 장인 에스포지토 브란디가 왕비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하기 위해 이탈리아 국기를 상징하는 세 가지 색을 담기 위해 토마토, 리코타 치즈, 바질을 이용해 피자를 만든 것이 마르게리타 피자의 유래라고 한다.
그리고 분명 중심가임에도 건물과 건물 사이에 긴 빨랫줄을 걸고 빨래를 말리는 모습은 정겨우면서도 나폴리의 경제상황을 여실히 보여주는 느낌이었다.
카페 감브리누스(Caffee Gambrinus)
늦은 저녁 시간이었지만, 나폴리를 찾은 이유 중 하나 카페 감브리누스를 갔다. 카페인으로 잠을 설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가장 대표 시그니처 커피를 주문한다.
5밀리 이상의 두꺼운 에스프레소잔에 담긴 커피 위에 크림과 시나몬 가루를 잔뜩 뿌려서 나오는 커피. 이름은 카페 스트라파짜토.
스탠딩으로 즐기는 커피는 유럽에서 느낄 수 있는 색다른 방법의 커피 문화라 그 자체로 즐겁다. 배 안에 여유 공간이 조금 있다면 빵을 곁들여 먹는 것도 좋은 선택이 될 듯하다.
플레비시토 광장
카페 감브리누스 옆에는 큰 광장이 하나 있다. 광장 주위에는 왕궁과 반원 모양의 큰 성당이 있다.
왕궁은 나폴리가 스페인 통치하에 있던 17세기초에 건축된 궁전이고, 18세기 이후로는 프랑스 부르봉 왕가를 비롯한 역대 나폴리 국왕들의 거주지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왕궁 반대편에는 판테온을 닮은 프란체스코 디 파올라 성당이 가운데 있고, 그 양쪽으로 팔을 넓게 벌리고 있으면서 세상을 포용하는 듯 양쪽에 반원형의 날개 모양을 하고 있다.
밤이라 광장 가운데에는 하늘로 쏘아 올리면 뱅글뱅글 돌려 내려오는 아이들 장난감을 파는 상인들이 관광객의 눈길을 끈다.
카스텔 델 오보(Castel Dell'Ovo)
달걀성으로 알려진 곳이다. Ovo는 영어에 타원을 뜻하는 오발(oval)과 어원이 같은 것으로 보인다.
달걀성의 유래는 성을 지을 때 기초 부분에 달걀을 묻고 '달걀이 깨지면 성과 나폴리에 큰 위기가 닥칠 것이다'라는 주문을 걸었다는 전설이라고 한다.
주변 바다가를 천천히 걸으며 야경을 즐기는 것도 좋다.
갈레리아 움베르토 1세 갤러리
1890년에 복합상가 용도로 건축된 갤러리인데, 밀라노에 있는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 아케이드와 거의 똑같이 생겼다.
십자가 형태로 난 길을 사이에 두고 건물이 크게 네 동으로 구분되고 그 사이 천장은 통유리로 돼 있다. 천장에 통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햇빛이 멋진 곳이다. 나폴리 투어를 하다 저녁 식사시간을 놓쳐 맥도널드를 먹었던 곳으로만 기억될 것 같다.
잠시 이탈리아니 만치 젤라토를 즐겨주는 여유를 부려본다.
카스텔 누오보
이렇게 나폴리 첫날 오후와 밤 시내 투어를 마쳤다.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폴리는 '지저분하고 안전하지 못한 도시'라는 이미지 때문에 폼페이, 카프리, 포지타노, 아말피를 목적지로 가는 사람들 중에 나폴리는 건너뛰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많다고 한다.
세계 3대 미항, 나폴리 3대 피자집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탈리아 한 달 살기처럼 긴 시간 여유를 두고 여행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굳이 하루 이상의 시간을 할애해서 투어를 할 곳은 아닌 듯하다.
세계 3대 미항이라고 하기엔 오히려 부산항이 더 멋져 보인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없고, 피자도 시카고에 우노 피자나 우리나라에 들어온 잭슨불러바드가 더 맛날 수 있다.
그러나, 적어도 안전하지 않아서 나폴리로 가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시 한번 나폴리를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도시 전체가 낡고 지저분한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그 또한 나폴리의 매력이라 생각할 수도 있고 하루 정도는 투자해서 돌아볼 만한 시간에 가치에 대한 보상은 돌려주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