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감정, 온도의 매개체
‘음악’과 ‘음식’은 추억과 감정, 온기가 스며든 소중한 매개체이다. 또한, 그때의 시간과 감정, 온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힐링 요소이기도 하다.사람마다 각기 다른 추억과 감정이 담겨 있어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 의미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출근길에 ‘슬기로운 의사 생활 OST’를 자주 들었다. 이 곡들을 좋아했지만, 언제부턴가 잘 듣지 않게 되었다.
3년 전, 아버지가 뇌출혈로 투병하실 때까지도 자주 들었던 곡이었다. 하늘나라로 보내드린 이후에는, 그 당시의 생각이 떠올라 트라우마가 생길까 봐 더 이상 듣지 않았다. 그때의 숨 막혔던 상황, 좌절, 이별을 함축적으로 모아둔 곡 들이기에.
11월의 어느 겨울 출근길, ‘갑자기 따스해진 날씨’가 하늘에서 아버지가 선물해 주신 것 같아 아버지 생각이 났다. 그래서 2022년 가을 그때처럼 작은 용기를 내보았다.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자주 가던 공원에서 마라톤을 다시 시작했던 순간처럼.
‘따스한 날씨’에 ‘따스하지만 아픔을 주는 곡’을 들어도 좋았던 출근길이었다. ‘아픔을 주는 곡’이 ‘따스한 날씨’의 선한 영향력을 받아 그 품에 포근히 안기는 느낌이었다. “내면이 많이 단단해졌구나”라는 느낌이 든다.
나에게 ‘음악’은 그 시간에 살던 추억과 감정, 온기가 스며들어 있는 소중한 매개체이다. ‘흐릿해진 기억’도 ‘생동감’ 있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
‘음식’도 나에게 그 시간에 살던 추억과 감정, 온기가 스며든 소중한 매개체이다. 싫어하던 음식을 좋아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어렸을 때 콩국수를 싫어했다. 20대 초반까지 못 먹는 유일한 음식은 콩국수와 순댓국이었다.‘싫어하는 음식’에 ‘사랑과 배려’가 더해지면 ‘최애 음식’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군 시절 여단장님 운전병으로 복무할 때, 사모님께서 나를 위해 직접 음식을 만들어 주신 적이 있다.
보통 공관병이나 조리병이 그분들을 위해 요리를 해주는데, 테니스를 치다가 간식으로 콩국수를 만들어 주고 싶어 달려온 모습은 기적 같았다. 그 음식을 먹은 후부터 콩국수를 점점 좋아하게 되었다. 지금도 여름에 콩국수를 먹으면 ‘따뜻했던 군 생활’과 ‘따뜻했던 여단장님과 사모님’이 생각난다. ‘따뜻했던 그 순간의 온기’가 떠오른다.
여단장님 운전병이 되기 전, 정보처 소속 운전병으로 막 근무를 시작했을 때는 순댓국을 잘 못 먹었다. 그런데 새벽에 전차 이동을 인솔하거나 간부들과 외근을 나갈 때는 자주 먹을 수밖에 없었다.순댓국은 간부들이 고생한 운전병을 챙겨주는 대표적인 메뉴였고, 순댓국 한 그릇에는 그 마음이 녹아 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서 천천히 그 맛에 스며든 것 같다.
이제는 진한 순댓국 맛집과 깔끔한 순댓국 맛집을 찾아다닌다. 남은 인생 동안 더 많고 깊은 추억이 스며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