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서울환경영화제 리뷰 #1 성스러운 공원
*보다 깊은 리뷰를 위해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모스크바의 작은 공원 '토르판카'를 둘러싸고 이 곳에 성당을 지으려는 입장과 공원을 지키려는 입장이 대립하면서 일어난 일들을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공원이나 공공 정원 대신 새로운 교회를 짓는 데 반대하는 지역 주민과 독실한 정교회 신도 사이의 갈등은, 러시아 수도권 지역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문제인데요. 법적으로 공원에는 건물을 세울 수 없는데, 또 십자가 있는 곳에는 성당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영화 정보 자세히 보러가기)
올리브 : 일단 예상했던 거랑 다르게 전개되는 게 흥미로웠어. 제목이 ‘성스러운 공원’이라길래 공원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공원의 순기능에 포커스를 맞출 줄 알았거든. 그런데 실제로는 공원 안에 성당을 짓는 이슈를 가지고 찬성 측과 반대 측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됐잖아.
브랜디 : 맞아. 그래도 그런 전개 속에서 은연중에 공원의 순기능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해 준 것 같긴 해. 내가 지금 사는 곳 주변에도 여러 공원들이 있는데, 너무 당연하게 원래 있는 것들이라 평소엔 그거에 대해서 별로 깊게 생각해 볼 기회가 없었거든. 저 공원에 갑자기 건물이 들어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몰입하게 됐던 것 같아.
올리브 : 좀 웃픈 장면이 있었어. 찬반 양측이 공원에서 대립하는 상황에서, 성당 건립을 찬성하는 사진가가 반대 측 사람들 영상을 찍고 있었잖아. 그런데 그걸 본 반대 측 사람들도 우르르 몰려서 그 사진가를 촬영하기 시작하는 거야. 그 불편함이 영화를 시청하는 내 입장에서는 상당히 유머러스하면서도 씁쓸하더라고. 서로 불편하지만 애써 괜찮은 척하려는 표정이나 덤덤한 척하는 발걸음이 눈에 걸렸지. 서로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하는 행동이겠지만, 평화로운 대화를 나누기 보다는 서로를 깎아내리려는 모습들만 보여서 씁쓸했어.
브랜디 : 나는 제일 신기했던 게, 갈등을 다루는 영화다 보니 양측의 입장이나 프라이빗한 공간을 균형 있게 담기가 어려웠을 것 같은데 그걸 해냈다는 거야. 보통 이런 다큐멘터리를 보면 감독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를 보고 치우라는 식의 행동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감독이 마치 이 현장에 없는 것처럼 연출을 한 게 눈에 띄었어. 감독이 그 현장에 개입하지 않음으로써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두 입장을 면밀히 비교해볼 수 있게끔 하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르겠고.
올리브 : 나는 종교가 사람들을 한데 모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성당 찬성 측 대표가 대주교에게 “사탄들이 우리가 성당을 건립하려고 하는 토지에 난입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했더니 “절대 빼앗기면 안 됩니다. 맞서 싸워야 합니다.”라고 하더라고. 또 “저희를 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혼내줘도 될까요?”라는 질문에는 “맘껏 혼내세요.”라고 대답했는데, 지도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 갈등을 더 부추기는 거 같아서 의아했어.
브랜디 : 맞아. 결국 그냥 본인에게 이익이 되는 것들만 생각하는 것 같았어.
브랜디 : 그리고 나는 이 갈등을 대하는 정부나 경찰의 태도에 의문이 들었어. 영화를 보면 성당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성당을 막무가내로 지으려고 하잖아. 그때는 그냥 단순히 사람들을 철수만 시켜놓고 반대 측이 기도회를 방해하니까 체포해 가더라고. 반대 측에만 너무 강경 대응한다는 생각이 좀 들었어.
올리브 : 그 나라 법률상 공원에 건물을 세우는 게 불법이긴 하지만, 십자가가 있을 때는 그 땅을 성지로 간주해서 불법으로 보지 않는다고 했잖아. 어찌됐든 그 공원에는 십자가가 있었으니, 거기서 기도를 하는 건 권리라고 생각했어. 근데 반대 측에서는 기도하는 것조차 방해를 하잖아. 일부러 시끄러운 음악을 틀고 소리를 지르는 장면은 나도 좀 불쾌했거든. 그런 점에서 경찰이 개입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
또 이건 좀 다른 얘기긴 한데, 나는 정부가 갈등을 중재할 수도 있지만 굳이 먼저 나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물론 정부가 제 때 나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양측이 서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
브랜디 : 맞아. 결말 부분을 보면 문제가 너무 갑작스럽게 해결이 됐잖아. 막 싸우다가 어느 날 “성당 다른 땅에 짓기로 했대!” 라며 성당 반대 측이 기뻐하는 모습만 보여줘서 의아했어. 양측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보여줬으면 좋았을 텐데.
올리브 : 위에서도 말했지만 나는 이 영화 제목만 보고 공원이 얼마나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줄 줄 알았어. 그런데 서로 치열하게 갈등만 하다가 갑자기 “역시 공원은 소중해~” 식의 이야기로 끝내잖아. 토르판카 공원이 모스크바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좀 더 디테일하게 설명했다면 이 치열한 갈등을 조금이나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
올리브 : 사실 나는 양쪽 다 별로 내키지는 않아. 처음에는 내가 무신론자고, 공원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반대 측을 옹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를 보면 반대 측 역시 도를 넘은 행동을 하기도 하잖아. 하지만 이게 모스크바만의 일은 아닐 것 같아.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하고만 공유하려고 하는 경향이 점점 더 심해지다 보니까, 온오프라인으로 이런 갈등이 늘어나는 것 같아.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정치적인 의견이 다를 때 서로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잘 보여줬다고 생각해. 의견 차이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잘 꼬집은 영화 같아.
브랜디 : 나는 찬성 측에 좀 더 큰 거부감이 느껴졌어. 그런 말이 있잖아. ‘혐오는 한 가지만 할 수 없다.’ 예를 들어 A는 동성애 혐오를 해. 그런데 동성애자에 대한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성소수자가 아닌 집단에 대한 혐오로 번지는 건 흔한 일이야. 그 혐오가 계속 파생이 되는 거지. 영화에서 성당 찬성 측이 반대 측에게 하는 말들에서 그런 걸 느꼈어. 성소수자 혐오를 하는데 동시에 여성 혐오나 비인간 동물 혐오도 하더라고. “여자는 아래가 따뜻해야 애를 잘 낳는다. 그렇게 찬 바닥에 앉으면 안 된다.”라고 한다거나, “돼지 새끼야.”라는 말을 쓴다거나. 또 그 갈등의 구조가 ‘가톨릭 신자 vs 무신론자’가 아니었고, 반대 측은 공원이 아닌 다른 곳에 성당을 짓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반대 측을 ‘신이교도’, ‘악마 숭배자’, ‘성당 혐오자’라며 프레임을 씌우는 게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어.
올리브 : 공원은 특정 종교를 가져야지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해. 거기다 십자가를 세우고 성당을 건립한다면 정교도회가 아닌 사람들은 그 영역에 출입을 하기 심리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잖아. 공원이라는 건 모두가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하기에 성당을 공원 안에 설립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이야.
브랜디 : 영화 초반부에 보면 어떤 남성분이 성당 건립 찬성하는 사람들 측 단상에 올라서서 "내가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나는 여기 있는 사람들 다 처음 본다."라고 하는 장면이 나와. 러시아 법에서 공원보다 성지가 더 우선시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공원은 주민들의 영역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 주민들의 의사보다 종교인들의 의사가 우선시 될 수 없다고 생각해. 또 환경적인 측면에서만 봐도 나는 그냥 성당 건립을 반대할 것 같아. 나는 무언가를 새로 짓는다는 거 자체에 회의적인 입장이니까.
올리브 : 맞아 건물을 지으면 거기 있던 식물들이 짓밟힐 거고, 아무리 친환경적으로 짓는다 해도 건축 쓰레기가 어마어마하겠지. 또 건물이 세워지면 동선이 바뀌어서 이동권이 침해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런 걸 고려하지 않고 종교의 자유만을 이야기한다면 주민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은 안일한 처사라고 생각해.
작년 7월 1일부터 시행된 '도시공원일몰제'를 아시나요? '도시공원일몰제'는 사유지를 도시공원으로 지정해놓고 20년 이상 공원 조성을 안 할 경우, 공원 부지에서 자동 해제가 되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로 전국의 1,766개의 공원 부지가 ‘개발 가능한 땅'으로 바뀔 위기에 처했죠.
이에 이엪지도 도시에서 공원이 사라지는 것을 우려했었는데요, 다행히 제도 시행 이후 공원을 살리려는 지자체들의 움직임이 도리어 빨라졌다고 해요. 수원시는 일몰제로 사라질 뻔했던 공원을 주민들과 협의 끝에 민간 사업자가 조성하도록 조치했고, 인천시는 내년까지 도시 바람길 숲과 미세먼지 차단 숲 33곳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용인시는 축구장 120배 면적의 공원부지 6곳을 매입해 보전 조치를 완료했고 12곳의 공원부지에도 재정을 투입했다는 보도가 있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이 기회가 많고 번화한 도시에 살기를 희망하지만, 동시에 자연에 대한 그리움 또한 가지고 있죠. 그 역할을 수행해주는 공원은 사라져서는 안 될 중요한 공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영화 ‘성스러운 공원’을 본 이후 저희 집 주변에 있는 공원을 검색해보면서 다시금 감사함을 느꼈어요. 여러분의 집 주변에는 어떤 공원이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