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용기가 나의 용기가 되기까지 <야구소녀>
야구소녀 GV에서 이주영 배우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 보기 힘든 착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가 있다고. 정말이다. 요즘에는 착하고 정답같은 이야기가 별로 없다. 자극적인 게 최고라는 이미 지나간(?) 트렌드는 제쳐두고, 정답같은 선한 이야기를 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이 '기억에 안 남는다'일 확률이 높아서 일까.
야구소녀는 코로나19로 힘든 극장계에서 좋은 스코어를 내고 있다. 왜일까? 왜 사람들은 야구소녀를 궁금해하고, 나는 왜 반 년간 가지않던 극장에 일주일에 몇 번씩 들리며 야구소녀를 사랑할까? 매일 인스타스토리에 야구소녀 이야기를 올리면 사람들은 물어본다. "그게 그렇게 재밌어?" 나는 대답한다. "너무 용기가 돼."
나조차도 왜 이렇게 야구소녀에 빠졌는지, 이 영화가 왜 나에게 용기를 주는지 궁금했다. 한동안 영화에 대해서 생각했다. 배우들이 좋아서? OST가 좋아서? 연출이 묵직해서? 세세하게 이유를 생각했지만, 마음에 확 와닿지 않았다. 그런 궁금증을 안고 압구정으로 달려갔다. 야구소녀를 5번째로 보고 나서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 영화는 주수인을 응원할 수밖에 없는 영화다.
불안정한 자기확신. 내가 생각하는 수인이다.
"내가 진짜 잘하는 거면, 그럼 너무 억울하잖아."
수인이는 그저 야구가 좋다. 프로에 가면, 야구를 오래 할 수 있다. 구속이 150이 안나와서 프로에 못 가니까, 150을 치기 위해 노력한다. 너클볼 투수가 드래프트나 트라이아웃에 뽑힌 적이 없으니, 처음으로 너클볼 투수가 되기위해 노력한다. 손에 피가 날 정도로 연습한다. 공을 잘 던지면, 건조하던 얼굴이 순식간에 해사한 웃음으로 뒤덮인다. 자신을 믿지 않던 코치와의 훈련을 즐기고, 질투 혹은 부러움을 느끼던 친구에게는 싸인을 부탁한다. 수인이는 야구를 좋아한다. 그래서 열심히 할 뿐이다. 불안하지만, 최선을 다 하는 것밖에 할 수 없다.
그런 수인이덕분에 주위 사람들이 성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두고 이렇게 말한다.
'주수인이 아닌 주수인을 둘러싼 사람들의 성장 영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은 버려두고 공인중개사인 꿈만을 쫓은 아빠는 대리운전을 시작한다. 아이돌이 꿈이어서 춤만 연습하던 방글이는 다시 기타를 산다. 트라이아웃 때 주수인을 비웃던 남자 야구선수들은 '주수인 화이팅'을 외친다. 수인이를 믿지 않았던 진태는 누구보다 수인이를 믿는다. 이들은 수인이가 홀로 싸우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수인이와 함께 싸운다. 화장실을 라커룸으로 쓰던 수인이가 오롯이 홀로 견디는 무게를 함께 들어주지는 못한다. 그래도, 어떻게 무게를 견딜 수 있을지 옆에서 함께 고민한다.
"해보지도 않고 포기 안해요." 해보지도 않고, 두려워서 포기한 내 꿈이 생각났다. 야구소녀를 볼 때, 나는 2순위였던 꿈조차 의심과 불확신으로 가득했던 상태였다. 수인이는 나에게 채찍이자 당근이었다. 그래서 수인이가 트라이아웃을 하는 모습을 보며, 안쓰러웠고 대견스러웠다. 그리고 용기였다. 너클볼을 던지다가 스스로 판단해 직구를 던지는 모습을 봤을 땐, 나보다 한참 어른이구나 싶었다.
어쩌면 가장 비현실적인 장면이었던 결말조차 용기가 됐다. 원하던 프로선수가 된 수인이는 마냥 웃지 않는다. 빈 야구장을 쭉 둘러보며, 조용히 미소 짓는다. 그리고 무언가 결심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내가 느끼기엔 그랬다. GV에서 답변을 듣지 못해 아쉬운 질문 중 하나다.) 수인이조차 스스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프로 1군에 갈 수 있는지는 모를 것이다. 그래도 수인이는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할 것이다. 수인이는 야구를 좋아하고, 그런 자신을 믿으니까.
좋은 영화를 보면,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영화 속 주인공의삶을 상상한다.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 같다는 생생한 느낌. 수인이는 앞으로가 더 힘들 거다. 수인이 덕분에 나는 한 걸음을 더 내디딜 수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여전히 수인이를 응원할 것이다. 세상의 많은 수인이를 응원한다. 여전히 너에게 가닿는 편견과 현실의 벽은 높을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응원을 던지겠다고. 꿈을 쫓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인이일테니까. 조만간 또 수인이를 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