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기록
한 시간쯤 잤을까?
왠지 모를 불안감에 일어나 보니 바닥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시계를 보니 5시가 조금 안 되었다. 재난문자와 네이버를 아무리 검색해 봐도 지진이란 말이 없었다. ‘판단해야 하나’ 하며 자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여차하면 나가야지 할 때쯤 진동이 멈추었다. 착각이라기에는 너무 실감 나는 여진이었다. 고양이는 소파에서 잠꼬대를 하며 꿀잠을 자고 있는데 그렇다면 나는 바퀴벌레보다 예민한 지각 능력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일어난 김에 산책이나 가볼까 하는 마음에 옷을 입고 나왔다. 시원한 공기에 상쾌함을 상상했지만 상황은 반대였다. 새벽인데도 공기는 여전히 더웠고 불쾌함이 마중 나와 있었다. 그래도 일단 걷다 보니 걸음에서 활력이 붙는 게 느껴졌다. 이른 아침이라 거리에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앞서가는 할아버지를 뵈니 누가 봐도 운동 나오신 분 같았다. 조용한 거리에 발자국 소리를 들으신 할아버지는 뒤를 돌아보고는 다시 걸음을 움직이셨다.
할아버지는 주머니에서 화장지를 꺼내 바닥에서 무언가를 조심스레 주워 학교 담장 틈 사이에 내려놓았다. 그렇게 몇 차례 반복하는 할아버지를 보고 앞서 걷게 되었다. 걷다 보니 바닥에서 뭘 주워 옮기신 건지 금세 알게 되었다.
‘세상에,,, 지렁이’
이미 바닥은 지렁이 천국이었다. 밤새 비를 뿌렸는지 지렁이가 왜 이렇게 많이 나왔는지 알 수 없지만 지렁이들이 겪은 참혹한 현장이 진행 중이었다. 돌다리를 건너듯 폴짝이다보니 신호가 바뀌었다. 바뀐 신호를 보고 냅다 뛰어 지렁이 구간을 벗어났다.
왜 그렇게 그곳에는 지렁이가 많을까 생각해 봤다. 이상하게 그쪽에는 새가 없었다. 새가 많은 길가에는 지렁이가 남아 있지 않았다. 요즘 같은 세상에 지렁이를 보호하려 그늘로 보내주는 어른이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리 예쁜 마음을 간직한 어른이 계시다니, 이분은 천사다!!’
혼자 생각하며 걷던 중 예쁜 꽃도 보고 일출 사진도 찍을 때쯤 어르신이 나를 앞지르셨다. 산 입구 갈림길에서 어르신은 산길로 진입하셨다. 잠시 숨을 고르는 듯 멈춰서 계셨고 나는 옆 아스팔트 도로로 진입해 걸었다. 반쯤 오르다 폰 배터리가 없어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내려오던 중 할아버지를 다시 만났다. 산 진입로에서 만난 할아버지가 말을 건너셨다.
“운동 나온 거예요”
“네, 어르신”
“아까 지렁이가 하도 많길래 아가씨 놀랄까 봐 치워 주려고 했는데 너무 많더라고”
‘세상에 아가씨?’
새벽부터 코끼리도 춤추게 하실 어르신을 만나 속으로 생각했다. 분명 장수하실 어르신이다.
복 받으실겨…. 복 받으실겨~
“아가씨 아닙니다. 어르신” ^^;
“아들이 5학년입니다”
“감사합니다. 젊게 불러주셔서….”
“흐흐 나는 아가씨로 봤구먼, 아가씨래도 믿겠어요”
아침부터 산삼 멘트를 날리시고는 다음에 보자고 하시며 쿨하게 갈길로 가셨다.
지렁이를 살리려고 였는지, 뒷사람이 밟을까 염려돼서였든지, 화장지로 주워 옮기는 배려를 가진 어른 ‘크 멋지구나’ 그분의 삶의 여백이 내게도 전이되는 것 같았다. 비록 땀은 뻘뻘 흘리고 모자는 다 젖었지만 오히려 흠뻑 흘린 땀에서 엔도르핀이 샘솟아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우리 단지를 들어오던 중 예상치 못한 현장을 다시 목격했다. 저만치 앞서 들어가는 할머니가 보였다. 강아지와 산책을 마친 듯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폴짝 일 때쯤 내 눈앞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나의 현관 입구 땅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것….
향기를 맡고 모여드는 파리들….
파리들의 케이크를 폭파한 아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