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흘러내리는 마스카라

택시 여기요

by 이음


수요일 새벽 2시.
거리는 아직 잠들지 않았다.
클럽 문이 열릴 때마다 묵직한 비트가 쏟아져 나오고,
술집마다 쏟아지는 웃음소리와 술잔 부딪히는 소리가
새벽 공기를 뒤흔들었다. 아스팔트가 담배 냄새를 토해내듯, 골목마다 술 냄새와 땀 냄새가 뒤섞여
마치 도시가 밤새도록 울컥이며 속을 토해내는 듯했다.

나는 유흥가 입구에 차를 세우고 남은 커피를 마시며 피곤함을 달랬다.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해가 뜨겠지.’
그때, 카카오콜 알림음이 울렸다.

“띠링—”
‘새벽 2시, 클럽 앞, 혼자라면 술 취한 손님이겠네.’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쉬며 방향을 틀었다.

클럽 앞은 작은 전쟁터였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몰려나와 택시를 잡기 위해 팔을 휘두르고, 어깨를 부딪히며 시끄럽게 웃어대고 있었다. 그 사이로 한 여자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롱코트 아래로 보이는 짧은 원피스, 손에는 작은 클러치 하나만 달랑 들려 있었다. 번진 마스카라와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로, 그녀가 지나온 긴 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발걸음은 휘청거렸지만 묘하게도 단호했다.

나는 얼른 내려 문을 열어줬다.
“조심히 타세요.”


“네… 감사합니다.”

차가 출발하자,
차 안은 잠시 조용했다.
밖에서는 여전히 클럽의 음악이 두둥거렸지만,
차 안에는 그 소리마저 멀게 느껴질 만큼 고요했다.

잠시 후, 여자가 깊은숨을 내쉬며 말을 꺼냈다.
“기사님… 제가요.”
그녀는 술기운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남자친구랑 CC였거든요.”

나는 아무 말 없이 백미러로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가에는 이미 반짝이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같은 과에서 만났어요. 수업도 같이 듣고, 시험기간엔 같이 밤새 공부하고… 그때는 진짜… 세상이 우리 둘만 있는 줄 알았어요.”

그녀의 입꼬리가 잠시 올라갔다가
금세 무너져 내렸다.

“근데요, 졸업하고 사회생활 시작하니까…
모든 게 달라지더라고요. 서로 다른 회사에 취직하고,
바빠지고, 지치고… 만나는 날보다 못 만나는 날이 많아지고.”

“오늘… 그 사람이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너랑 있으면 네가 행복하지 않아 보인다’고.”
짧은 한숨이 차 안에 묻어났다.

“그 말 듣는데… 너무 억울했어요. 저는 끝까지 괜찮다고 말했는데, 그 사람은 이미 마음을 정해놨더라고요. 제가 행복한지 아닌지는… 저도 모르는데.”

그녀의 어깨가 조용히 떨렸다.
나는 그저 묵묵히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때로는 침묵이 가장 큰 위로가 되니까.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 아직도 선해요.”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조금 높아졌다.
“비가 오던 날이었거든요.
제가 우산을 안 가져가서 비를 맞고 있었는데,
그 사람이 자기 우산을 툭 씌워줬어요.
그리고는 웃었어요.

그녀는 그 말을 되뇌며 씁쓸하게 웃었다.
"저는 아직도 그 웃음을 좋아하나 봐요.
근데 이제 보니 아니었네요.”

차 안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멀리서 클럽의 비트가 여전히 울리고 있었지만,
그녀의 호흡은 점점 잦아들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그녀는 문을 잡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작게 물었다.
“기사님… 오늘 저 같은 여자 많이 태우셨죠?”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많이 태웠지만…
손님 얘기는 다 다르더라고요.”

그녀는 그 말을 듣고 눈을 감았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기사님.”

그녀가 아파트 입구로 걸어가며
밤의 어둠 속으로 천천히 사라졌다.
멀리서 시끄러운 클럽의 음악이 들리는 듯하고,
아스팔트는 여전히 담배 냄새를 토해냈다.

나는 그 냄새를 깊게 들이마시며 혼잣말을 했다.
“누군가의 이별이, 오늘도 새벽 거리에 스며드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