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 한의원으로 가주세요

택시 여기요

by 이음


늦은 오후, 해가 서쪽으로 기울며 햇살이 빌딩 유리창에 부딪혀 금빛으로 반짝였다. 시간은 오후 4시 조금 넘은 시각. 도심은 점심의 북적임이 가라앉고, 퇴근길의 분주함이 서서히 시작되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띠링_”
카카오콜 알림음이 울렸다.
목적지는 은평동.
나는 바로 수락 버튼을 누르고 방향을 틀었다.

좁은 골목을 돌자, 작은 슈퍼 앞에 나란히 서 있는 노부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할아버지는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팔짱을 낀 채 서 있었고, 할머니는 목에 수건을 두르고 장바구니만 한 가방을 옆에 내려두고 있었다.

차를 세우자 할머니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아이고, 기사 양반 오셨네. 구의동 한의원까지 부탁드려요.”


“네, 천천히 타세요.”
나는 서둘러 내려 두 분을 도와드리고, 가방을 트렁크에 실었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아내가 입을 열었다.
“허리 아프다고 매일 밤에 끙끙거리니깐 꼭 같이 가야 한다니까요.”

할아버지는 창밖을 보며 툴툴거렸다.
“아이고, 난 안 간다고 했잖아. 나는 괜찮아.
허리 좀 뻐근한 건 나이 탓이지, 침 맞을 일 아니야.”

할머니가 바로 받아쳤다.
“뭐가 괜찮아요? 밤마다 뒤척이면서 ‘아이고, 아이고’ 하면서 내 잠 다 깨우면서는! 같이 가서 치료받자니까.”

“나는 괜찮다니깐! 할멈이나 맞아, 나는 침 안 맞어.”
할아버지는 고개를 홱 돌리며 팔짱을 더 단단히 꼈다.

“허 참, 내가 혼자 침 맞으면 뭐가 어색하다고!
둘이 같이 치료받으면 얼마나 좋아.
남들은 부부가 같이 운동도 하고, 병원도 간다던데 우린 왜 꼭 이렇게 따로따로야.”
할머니는 점점 목소리가 커졌다.

“침은 아프고 싫다니까!

살다 살다 내가 내 몸에 바늘 찔리게 될 줄은 몰랐어.”
남편의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졌다.

나는 백미러로 두 분을 바라보며
웃음이 나올 뻔한 걸 간신히 삼켰다.
투닥거림이지만, 그 안에서 묘한 애정이 느껴졌다.

할머니가 다시 말했다.
“지난주에 허리 못 펴고 하루 종일 누워 있었던 거 기억나요?
그리고 허벅지 저리다고 난리쳤던 거, 그게 다 허리통 신호래도. 그냥 두면 큰일 나요.”

“그거야 하루 쉬면 낫는 거지. 잠 좀 더 자고, 파스 붙이면 끝이야.”
할아버지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돈 쓰는 것도 아깝고, 침 맞으러 왔다 갔다 하는 것도 귀찮아.”

할머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깝긴 뭐가 아까워!
당신 허리라도 펴야 내가 장도 보고,
애들 반찬도 해주고, 우리 집이 좀 굴러가지.
당신 허리가 휘면 우리 집이 휘는 거라고!”

그 말에 차 안이 순간 조용해졌다.
할아버지의 얼굴이 뚱해졌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할아버지가 작게 중얼거렸다.
“…나보다 당신이 더 아프지 그럼 가봐. 어디...”

할머니는 그제야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내가 침 맞을 때 당신도 옆에 있으면 덜 무섭지. 그냥 같이 맞아줘요.”

할아버지는 마땅찮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리셨다.

구의동의 한의원이 가까워오자
멀리서 간판 불빛이 보였다.

할머니가 가방을 꼭 쥐며 말했다.
“기사 양반, 여기서 세워주세요.”
“네, 조심히 다녀오세요.”

나는 차를 천천히 세우고 트렁크에서 가방을 꺼내드렸다.

할머니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덕분에 편하게 왔네요.
이 양반도 오늘은 침 한 방이라도 맞겠어요”
할아버지는 대꾸도 안 하고 성큼성큼 한의원 쪽으로 걸어갔다.

할머니는 그의 뒤를 따라가며 작게 중얼거렸다.
“허리도 아픈 양반이 체면만 챙겨가지고…”

두 사람의 뒷모습이 한의원 문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 자리에 서서 지켜보았다.

서로 다투면서도 함께 이동하고, 끝내 같은 문으로 들어가는 그 모습에서 세월을 견디며 쌓인 부부의 정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택시는 그들을 구의동 한의원에 내려놓았지만,
서로를 향한 그 마음만큼은 차 안에 잔향처럼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