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러 가는 길

택시 여기요

by 이음


한낮의 햇살이 도로 위에 반짝이며 내려앉았다.
점심시간이 끝난 지 조금 지난 시각, 거리는 서둘러 복귀하는 직장인들과 손에 장바구니를 든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는 천천히 골목길을 돌며 다음 손님을 기다렸다.

그때, 인도 쪽에서 작은 손이 힘없이 들렸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굽은 허리를 한 할머니가 낡은 장바구니 카트를 힘겹게 끌고 있었다. 목덜미에는 땀이 줄줄 흐르고, 입가에는 숨이 가쁘게 오르내렸다.

“아이고, 기사 양반! 성남시장 좀 가줘요.”
허스키한 할머니 목소리가 정겹게 들렸다.


나는 얼른 차를 세우고 문을 활짝 열었다.
“어서 오세요, 할머니. 천천히 올라오세요.”

할머니는 숨을 고르며 조심스레 자리에 앉았다. 손수건으로 이마를 훔치며 웃었다.
“아이고, 늙으니 다리가 말을 안 들어. 이 장바구니가 왜 이렇게 무겁게 느껴지는지 원…”

차가 출발하자, 나는 목적지를 다시 확인했다.
“시장까지 바로 모셔드릴게요. 오늘 뭐 사시나요?”


“아이고, 내일 우리 손주놈이 집에 와. 기숙사 밥이 입에 안 맞는다 해서 반찬 좀 해주려고 장을 보려구.”
할머니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손자분이 기숙사 생활하시나 봐요.”
내가 웃으며 말하자, 할머니의 얼굴이 금세 환해졌다.


“그럼, 우리 집에서 처음으로 대학 간 놈이여.
내가 업어서 키웠다니께.
우리 손주가 어릴 때부터 내가 해준 닭백숙을 아주 좋아했어. 그놈이 집에만 오면 꼭 그걸 해달래 그래.
‘할머니, 닭백숙 없으면 집에 온 게 아니라고”
할머니는 그때를 떠올리며 소리 내어 웃었다.
“그래서 오늘 닭도 싱싱한 걸로 한 마리 사고,
마늘이랑 대파도 좀 사야지.”


말만 하셔도 벌써 마음이 설레는 듯하셨다.
“손자분이 정말 행복하시겠네요.”


내가 말하자 할머니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에구, 그놈 먹는 것만 봐도 내가 배가 부르다니까.”

잠시 웃던 할머니의 표정이 이내 잦아들었다.
목소리도 조금 낮아졌다.

“시장에 다니면 말이야, 예전엔 정이 참 많았어.
가게마다 ‘아이고, 어르신 오셨어요?’ 하며 반겨주고,
‘이거 하나 더 얹어드릴게요’ 했는데.”
“근데 요즘은 다덜 힘든가 봐.
인사도 짧고, 눈인사할 틈도 없고.
그냥 장 보고 돈 내고,
허리 펴기도 전에 나가야 해.”

나는 그저 “네…” 하고 짧게 대답했다.

할머니는 장바구니 손잡이를 꼭 쥔 채 말을 이었다.
“나도 이젠 늙어서 그런가, 시장 한 바퀴만 돌아도 숨이 턱까지 차.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는데, 뒤에서 한숨 쉬는 소리가 다 들려서 미안해서 더 빨리 걸어보려 해도
다리가 안 따라줘서 말이야…”

할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 눈길도 어느새 백미러에 비친 그녀의 작아진 어깨로 향했다.

“그래도 시장에 가면, 아직은 내가 살아 있는 걸 느껴.
멸치 내, 파내, 막 튀겨낸 전내가 나면…
그게 다 우리 살아있는 증거잖어.”

성남시장이 가까워지자,
멀리서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상인들의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네, 기사 양반. 여기서 내려줘.”
할머니가 장바구니를 단단히 잡으며 말했다.

나는 차를 천천히 세웠다.
“할머니, 장 잘 보시고 조심히 다녀오세요.”

할머니는 차에서 내리며 활짝 웃었다.
“고마워요, 기사 양반.

그녀는 장바구니를 끌며 시장 입구로 천천히 걸어갔다.
햇살 아래서 그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작고 연약해 보였지만, 수십 년 세월을 짊어진 단단한 뒷모습이었다.

나는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사람들 사이로 할머니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택시는 그녀를 시장에 내려놓았지만, 그녀의 살아온 세월과 손자를 향한 그 깊은 마음만큼은…
끝내 내려놓을 수 없다는 걸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