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만 바꾼 사내들

옛날 옛적에

by 이음

옛날옛적에, 소식이 느리던 시절이 있었다. 사람들은 눈으로 보고도 속았고, 귀로 들은 말에는 더 쉽게 무너졌다. 그 마을도 그랬다.
초여름 더위가 막 올라오던 날이었다. 장터 끝에서부터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관복을 입은 사내 하나가 말을 타고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허리춤에는 번듯한 패찰이 달려 있었고, 뒤에는 포졸처럼 보이는 사내 둘이 따라붙어 있었다.

“어사 나리 납시오!”

누군가 소리쳤다. 사람들은 순식간에 길 양옆으로 물러섰다. 사내는 말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마을을 내려다보듯 고개를 들었다.

“이 마을에 역적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왔다.”

그 한마디에 공기가 식었다.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봤다. 누가, 왜, 무엇 때문에. 하지만 묻는 사람은 없었다. 먼저 입을 여는 자가 의심받는다는 걸, 다들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내는 천천히 말을 몰아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는 집집마다 들르기 시작했다.

“이 집, 최근에 낯선 자 드나든 적 있지?”

“아, 아닙니다 나리.”

“거짓을 말하면 삼족이 화를 입는다.”

그 말에 주인은 무릎을 꿇고 말았다. 손이 떨렸다. 사내는 한참을 노려보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나라에서 이 일을 덮으라고 지시하셨다. 은전으로 성의를 보이면, 이름만은 올리지 않겠다.”

“얼마를… 드리면 되겠습니까.”

“네 집안 목숨 값이다. 알아서 내어라.”

그날 이후였다. 마을은 조용해졌다. 아니, 조용해진 척을 했다. 사람들은 서로 눈을 피했고, 밤이 되면 문단속을 두 번 세번씩 했다. 누가 먼저 불려갈지 몰랐기 때문이다.
은전은 빠르게 모으기 시작했다. 어떤 집은 소를 팔았고, 어떤 집은 혼수로 모아둔 비단을 내놓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이름이 불리지 않기를 바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이 하나 있었다.
마을 끝에 사는 늙은 서생이었다.
그는 이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어사는 이렇게 돌아다니지 않는다. 죄인을 찾으러 왔다면, 이미 명단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저 사내는 묻고, 겁을 주고, 돈을 받으려한다.
그건 수사가 아니라 장사였다.
서생은 하루를 더 지켜봤다. 그리고 확신했다.

“가짜다.”

다음 날, 사내가 다시 마을을 돌았다. 사람들은 또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때 서생이 앞으로 나왔다.

“나리, 소인이 여쭐 것이 있습니다.”

“고개 들어라. 이름이 무엇이냐.”

“이름은 중요치 않습니다. 다만, 나리께서 진짜 어사라면 증표를 보여주시겠습니까”

순간 공기가 멎었다.
포졸 둘이 움직였다.

“무례하다!”

“의심은 역심이다!”

사내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나 잠깐뿐이었다. 이내 웃었다.

“좋다. 네놈이 그리도 죽고 싶다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생이 소리쳤다.

“이 자는 사기꾼이다!”
사람들이 술렁였다. 사내의 얼굴이 굳었다.

“진짜 어사는 이미 다른 고을에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어사는 백성에게 은전을 받지 않습니다.”

잠깐의 정적.
그 짧은 틈이 전부였다.
사내는 말을 돌렸다.

“잡아라!”

그러나 이미 늦었다. 사람들의 눈이 바뀌어 있었다. 겁먹은 눈이 아니라, 속았다는 걸 알아버린 눈이었다. 분노는 공포보다 빠르게 번졌다.
포졸로 보이던 사내 둘이 먼저 달아나고 관복을 입은 사내도 뒤를 따랐다.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멀어졌다.
마을에 남은 건, 바닥에 떨어진 패찰 하나였다.
누군가 주워들었다.
그건 나무로 만든, 아무 글자도 없는 가짜였다.
그날 밤, 마을 사람들은 모여 앉았다.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웃었다. 어쩌면 둘 다였을 것이다.
서생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속은 건 죄가 아닙니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말했다.

“하지만 같은 일로 또 속는 건, 죄가 됩니다.”

그 말은 오래 남았다.
아주 오래.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이후로도 비슷한 사내들은 계속 나타났다.
옷만 바꿔 입고.
말만 바꿔서.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