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소리 극단이 사라졌다

2021년 기록

by 이음

13년 전 회사로 등기가 도착했다.

흰 봉투 안에는 공연 티켓이 두 장 들어 있었다.

들소리에서 주최하는 비나리 퓨전국악공연이었다.

처음 보는 공연이었고 누가 보냈는지 알 수 없었다.

티켓이 아까워 친구와 공연을 보러 갔다.

나는 내가 국악 공연을 보고 덩실거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마당놀이와 창 그리고 대취타를 섞어 놓은 퓨전 공연이었다.

실력은 기본이고 신명 나는 소리로 무대를 폭파시켰다.

전통적인 국악이 아니라 신세대도 좋아할 만한 화려하고 젊은 국악이었다.


관람객들은 다 같이 월드컵을 보는 듯 일어나 춤추고 환호했다.

나는 내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춤추고 소리 지를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 이후로 몇 차례 더 비나리 공연을 보러 갔다.


공연이 끝나면 국악단은 북과 장구를 치며 관객들을 배웅했다.

내가 본 마지막 공연은 시어머님을 모시고 갔을 때이다.

공연이 끝나고 말씀하시길 '이런데 나 자주 데리고 오지 마라, 버릇 나빠진다'

라고 하셨다. 엄청 좋다는 말씀이었다.

생경한 공연에 처음에는 멋쩍어하시더니 끝날 때쯤에는 뒤꿈치가 들썩들썩하셨다.


그리고 비나리는 52개국 순회공연을 떠났다.

얼마 전부터 잊고 지내던 비나리 단장님 소식이 페이스북으로 올라왔다.

반갑게 인사하고 들소리 소식을 내 페북에 퍼 날랐다.


오늘 아침 페북 채팅으로 단장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들소리는 해체되고 멤버 몇 명만 남아 사맛디로 이어가고 있으시다고 했다.

사무실도 내가 사는 일산이라고 하셨다.

반가운 마음이 그간의 기다림의 거리를 좁혀 놓은 듯했다.


사맛디로 공연이 올라오면 연락 주신다고 하시는데

소원해져 소식을 몰랐던 마음이 미안했다.

'들소리에 정신을 이어가고 있으니 앞으로도 사랑 부탁드린다'라고 하셨다.

들소리는 팀워크가 워낙 좋았다.

그들의 에너지는 활화산처럼 폭발하고 용암처럼 들끓었다.


그들은 52개국을 순회하며 우리나라 전국을 돌아다녔다.

공항에서 자고, 매일 같이 연습실에서 사는 듯했다.

나는 그들의 열정으로 예술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고 감탄하고 자랑스러워했다.

해외에서 성황리에 공연을 마치고 들어왔다.

그런데 국내에서는 붐을 일으키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경영악화로 극단이 해제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술인들이 설자리는 점차 좁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세상에 재미있는 것이 너무 많다.

스마트폰 하나면 별천지 세상을 맛보는 세상이다.

예술이 퇴화되는 위기의 시점이기도 하다.

예술은 작가에게는 생각과 철학을 행위로 표현하는 분야이다.

관람객에게는 움직여 부러 보러 가야 하고, 돈을 지불해야 하는 일이다.

또 이를 보고 느끼려면 관심이 있어야 한다.

때론 약간의 지식이 필요하기도 한 분야도 있다.

이는 불편할 수도 있다.

검색만 하면 볼 수 있는 미술전, 검색만 하면 들을 수 있는 공짜 콘서트가 많다.

검색만 하면 집에서 볼 수 있는 영화들이 이런 것이다.

모든 행위가 필요 없어지고 있다.

행위는 불편하고 필요 이상의 것이라는 착각을 심어준다.


생각해 보면 콘서트는 현장에서 라이브로 듣는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럼에도 듣고 싶은 마음을 아주 조금만 충족시켜 주면 공짜로 편하게 끝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큰 장점으로 예술이 퇴화되게 하는 이유이다.

감동은 두말할 필요 없이 다르지만 장점이 크기에 단점을 감수한다.

미술전에 가서 화가의 작품 설명을 듣고 그림을 이해하는 것은 훨씬 좋다.

내 맘 데로 인터넷에서 판단하고 감상하는 일은 그림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극장에서 온전한 울림으로 영화에 빠져 보는 것과 집에서 왔다 갔다 하며 보는 것은 다르다.

스마트 폰을 보며 보는 영화는 전달력 또한 변질된다.

빠른 시대이니 어쩔 수 없는 일도 분명 있다.

그러나 사람을 알려면 또는 사람이 주는 감동을 받으려면 또는 사람의 슬픔을 공감하려면 움직이고 만나야 한다.

아무것도 안 하고 안 느끼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느끼고 공감하는 것이 낫긴 하다.

하지만 최소한의 영역에서 최소한의 감동으로 만족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는 생각보다 깊은 울림을 받을 수 있는 존재이다.

깊은 배려가 있고 깊은 사고가 가능한 인간이다.

이런 감동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달란트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매력 있는 사람에게 끌린다.

이끌 수 있고 자신감 있는 사람에게 끌린다.

확고한 자아의 바탕에는 깊은 사유가 들어있다.

내면의 크기가 큰 사람들이 작은 파도에 흔들리지 않는다.

다른 것들에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는 사람에게 끌릴 수밖에 없다.

다양한 분야를 받아들이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사유의 크기도 색도 빛날 수밖에 없다.

나만의 색을 만들고 나만의 매력을 만드는 되는

예술이 좋은 처방전이 될 수도 있다.


움직여서 얻을 수 있는 많은 것들을 외면하고 지나가면 사막을 걷는 삶과 같다.

퍽퍽하고 건조하며 울림이 없다.

이런 사람들은 좁고 답답하다.

소통의 방법을 모르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내가 우선이고 내가 맞고 다름을 기피하며 부정적 시야가 많다.

이런 사람들은 불편하게 되고 멀리하게 된다.

우리는 꽤 괜찮은 존재로 지구 상에 태어났다.

좋은 것을 공감하고 받아들여 내 안에 화분을 키우는 일은 나에 몫이다.

좋은 것을 봐야 좋은 것을 담을 수 있다.

옷도 입어본 사람이 잘 입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초등학교 때를 생각을 해보면 이렇다.

아침에 돌 두덩이 같은 눈을 비비고 일어나 씻고 학교를 가려면 세상만사가 다 귀찮았다.

'추운데 언제 일어나 씻고 걸어가나'를 두고 늘 이불 킥을 하고 뒤척였던 때가 있었다.

학창 시절에 가장 힘든 점은 정말이지 지옥 같은 등굣길이었다.

그러면서도 학교를 가면 우리는 날아다니고 친구들과 웃고 떠들기 바빴다.

쉴세 없는 입은 쉬는 시간이 끝났는데도 재잘거리고 수업시간에도 쪽지를 돌리고 웃었던 시간들.

분명히 추억이 되었고 행복했던 찰나였다.

단계는 힘들지만 막상 도달하면 즐거운 일들.

학교를 가는 일이 아닐까?


7월 사맛디에 공연에 오라고 하셨다.

오리온 초코파이를 사 가지고 간다고 인사를 드리고 채팅을 마쳤다.

그들이 감당했을 이별의 쓸쓸함이 내게도 전해졌다.

그늘진 곳에 예술인들이 살아가기 좋은 세상은 언제 오는 걸까.

우리는 좀 더 깊은 감정을 느끼고 풍부한 삶을 공감할 수 있다.

내가 걷고 내가 일어서는 행위에서부터 그것들은 오게 된다.

느끼고 공감하는 삶이 그리운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