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의 효능과 부작용

그리움의 부작용

by 이음

답답할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바람을 쐬러 가거나 여행을 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떠나기가 어렵다. 나는 단기 스트레스 탈출 방법으로 TV 시청을 선호한다. 화나는 일이나 심란한 일이 있을 때면 텔레비전을 켠다. 공포물 아니면 코믹을 틀어 놓고 보다 보면 아무 생각을 안 하고 있거나.

보고 있되 들리지 않고, 듣고 있되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 되면 고민은 일시정지 상태로 변한다.


나는 그 상태로 정신은 동굴로 들어간다. 그러다 보면 잠이 솔솔 온다. 실컷 자고 나면 시간의 거리만큼 고민의 거리도 멀어져 한결 가벼워진다.


이렇게 좋은 약이 부작용이 있다. 심신이 괴롭지 않을 때 봐도 바보를 만든다. 할 일을 못 하게 하고, 점점 기대다 몸을 눕게 하고 결국 재운다. 텔레비전 약은 심신이 취약하지 않을 때 복용하면 다른 장기에까지 영향을 미쳐 비만을 부를 수 있으므로 반드시 약사와 상의 후 복용해야 한다.


가끔 텔레비전을 보면 예전에 다니던 봉사활동이 생각난다. 양로원이었는데 나는 봉사가 아니라 착한 척하는 나를 만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는 선뜻 봉사활동을 나가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선한 척하는 건 매우 쉬운 일이었다. 진짜 선하기가 어려운 일이지.


양로원에 가면 치매 할머니들부터 세월에 냄새로 물든 노인들까지 난해한 상황이 많아진다. 당연히 잘 씻을 수 없고 관리하실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가는 것이다.

그곳에 가면 빨래 당번, 방청소, 목욕 당번, 식사 당번으로 나뉜다. 시간이 나면 할머니들과 대화도 하고 공감해 드리며 손을 잡아드렸다. 같이 식사를 하고 뒷정리를 하고 오는 순서였다.


우리는 맡은 바의 일을 열심히 하고 어르신들을 만나러 갔다. 이때부터 고통이 시작되는 시간들이다. 괴팍하고 소리 지르시는 분들은 세월에 상처가 많으신 분들일 테다. 때론 욕하시는 분들도 있고 니들이 와 봐야 얼마나 오냐고 호통하시는 분들도 있다. 아마 이렇게 왔다 갔다 이야기를 하고 떠났을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마음을 주다가 우리가 갑자기 안 오게 되면 받을 상처가 두려워 미리 방어막을 치시는 거라 느꼈다. 이해는 가지만 할아버지들의 호통은 무섭고 긴장하게 만들었다. 젊어 술 좀 드시고 거칠게 사셨던 분들은 나이 가 들어도 거치셨다. 생전 만나보지 못했던 분들이라 그런가 이런 날은 진이 쏙 빠져 쓰러져 잠들기 일쑤였다.


할머니들은 나이가 들어도 여자는 여자였다. 말 좀 잘 듣고 친해진 학생들에게는 요구하는 게 많았다. 용돈을 달라는 분도 계시고 삔도 빼고 가라, 목걸이도 주고 가라 하셨다. 윗옷도 맘에 든다고 달라고 떼쓰시면 관계자 분이 말리고 중재에 나서는 경우도 있었다. 파우치에 소지품이라도 넣고 가면 다 드리고 빈 몸으로 오는 날도 있었다. 이럴 때면 이해를 해야 하는데 속상하고 언짢은 맘이 들었다. 그것까지 각오하고 가지 못해서일까? 아님 그것까지 내놓을 맘이 없어서였을까?

나는 이런 회차가 계속될수록 지쳐갔다. 맘이 힘드니 가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결국에는 그분들 말씀처럼 발길을 거두게 되었다.


상대의 어떤 모습도 받아 들 일 수 있는 사람은 진짜 선한 사람이다. 나는 선한 척하려다 위선적인 나를 만나고 위선자로 살기로 했다. 그래도 아직 미안한 마음은 남아있다. 그분들이 두려워했던 떠나는 사람이 나였다. 역시 같은 상처를 한 줄 그어주고 나온 사람이 나였다. 그분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갔을까? 그분들의 말씀은 다 사실이었고 현실이 되었다.


봉사활동은 사실 선한 마음으로 가는 게 아니라고 느꼈다. 나를 만나러 가는 시간이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렇지 않으면 포기하게 되고 지치게 된다. 인간의 다른 모습을 받아들이고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조금 더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조금 못 움직이는 사람의 짐을 들어주러 간다고 생각했어야 했다. 봉사활동은 내면의 선함이 있다고 믿는 자만심이 함께 떠나서는 안 된다. 인간을 사랑하는 인간이 함께 떠나야 한다. 그래야 상대의 말과 행동에 상처 받지 않고 사랑하고 받들 수 있다.


우리의 시간도 그렇다. 지금을 사는 일이 중요하다. 나이가 든다는 건 지는 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끝까지 아름답기 어려운 것과 같다.

목련이 떨어져 처량해질 걸 생각하고 목련의 아름다움을 달리 볼 필요는 없다. 지금 발화하는 목련의 우아함을 그리워하는 일이 인생이 아닐까 싶다.


한 발작 떨어져서 봐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고민도 인간사도 마찬 가지다. 필요한 만큼의 거리를 두어야 인간도 꽃도 예쁘게 볼 수 있다. 거리가 너무 가까우면 불편해지고 거리가 너무 멀면 소원해진다. 물리적 거리만큼 심리적 거리도 마찬가지다. 상대의 의도보다 내가 너무 가깝게 다가서 있으면 오해하고 방어하기 쉽다. 나의 거리만 볼 것이 아니라 상대의 거리도 보아야 한다. 텔레비전도 거리를 지켜보아야 시력이 저하되는 걸 막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당신과 나와의 거리는 적당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