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습게시리 스산하고 찬기운이 가득한 저녁이다. 이래서 난 밤에 나가질 않는다. 며칠사이에 이렇게 기온이 떨어질 수도 있구나. 적지 않게 살아온 것 같은데 아직도 매번 새롭다.
몰입에 관한 책을 읽고 있는데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아서 더 재밌게 보고 있다. 예를 들면 아인슈타인도 한 가지 문제를 풀 때 몇 날 며칠을 식사도 거른 채 그 생각만 했다고 한다. 나 역시 글쓰기 수업 때 하루 온종일 한 가지 주제에 관해서만 생각했었다. 미션이 주어졌을 때는 주변의 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고 한 달씩 야근을 밥먹듯이 해서 십 킬로씩 빠졌으니 그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으리라.
10일에 마감하는 공모전이 있어 나가보려 하는데 통 몰입이 되지 않는다. 멍하고 산만하다. 이 고비를 넘겨야 생각의 물길이 터질 텐데.. 이놈에 무기력과 대치하느라 정신이 없다.
무기력이 나이고 내가 무기력이지만 우린 서로를 달리 본다. 서로가 분리되길 원한다. 그래서 한 발자국 뒤에서 나는 나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참 저번주 토요일에 상견례 때 있었던 일이다. 우리 룸으로 들어오시는 남자분을 보고 나는 얼른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희 영아 셋째 언니입니다"
그리곤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남자는 어리둥절해했다.
둘째 언니는 옆에서 빵 터졌다.
우릴 방으로 올 때 맨 앞에서 안내해 줬던 식당 매니저님이라고 한다.
난 뒤에서 따라 들어오느라 미처 보지 못했었다.
그렇게 웃으며 상견례가 시작되었다.
위에 어르신들은 별말씀 없이 식사만 하셨다고 하는데 나는 제부동생과 쿵짝이 맞아 한참을 수다를 떨며 웃으며 밥을 먹었다. 나는 촌스러워 코스요리에 헛배가 부른다. 그래서 1코스에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곤 내가 수정과를 좋아한다고 하니 모두가 나에게 수정과를 양보해 주어 혼자 6컵이나 마시게 되었다.
산삼이 1인당 1개씩 나왔는데 누구 한 명이 산삼을 안 먹었다. 그때 작은 언니가 산삼을 들고 말했다.
"누가 산삼을 먹을?"
그때 내가 얼른 산삼을 두 손으로 받았다.
"아, 그럼 제가 하나 더 먹어 보겠습니다"
하며 어르신들께서 꾸벅 인사를 했다.
그때 모두들 빵 터지셨다.
"어 그래 처제 먹어"
"사돈 돌돌 말아서 꿀을 찍어 드세요"
"아, 이렇게 돌돌 말아 꿀을 찍어 먹으니 훨씬 맛있네요~~~~"
나는 넉살 좋게 산삼을 두 뿌리나 먹고 행복하게 올라왔다.
나중에 동생에게 들으니 그 산삼은 작은언니가 안 먹고 양보한 것이라고 한다. 작은 언니가 먹으려고 했는데 내가 넙죽 받아먹었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미안해서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언니 왜 산삼 안 먹고 나 줬어"
"아냐, 언니 쓴 거 원래 안 좋아해"
"인삼도 잘 안 먹어"
"아픈 네가 먹으면 더 좋지 뭐"
"음.. 미안해. 난 눈치도 없이.."
"아니야. 네가 먹길 잘했어"
미안함과 고마움에 전화를 끊었다. 동생이란 이래 철이 없다.
작은 형부가 집에 가는 길에 말하길 영혜처제 친화력이 이 세상 친화력이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내가 제부 동생분과 대화를 계속해서 상견례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는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