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카페에 건물주가 산다

by Aeon Park

아무리 심심했더라도 내가 알바를 다니는 현장이 나와 방향성이 맞지 않았다면 아마 바로 그만두었을 것이다. 생방송, 녹화방송, 주말방송, 야외방송 등등 방송국 짬밥 20년이 넘었는데 똥인지 된장인지는 구분 가능한 사람이니까. 알바하는데 뭐 방향성까지 따지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모저모 따져서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피하는 것이 좋다.


내가 알바를 시작한 곳은 금토일 3일만 운영을 했는데 나는 이 가운데 토요일 하루 3시간만 일을 했다. 그렇게만 일손이 필요하다고 했던 동갑 사장님은 실제로는 도시에 살았다. 친정 부모님이 거주하시는 한옥 공간을 일부 개조해 카페로 멋지게 변신시킨 거였고 이 말은 건물주가 카페에 항상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카페를 운영하는데 건물주가 옆에서 3일 내내 지켜보고 있지만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다? 정답은 가족. 실제로 내가 살고 있는 이 인구소멸위험지역에는 그런 경우가 많이 보였다. 도시에서는 일상에서 건물주를 볼 일이 별로 없었는데 여기 오니 아이가 다니는 학원 원장님의 아빠가 그 건물의 소유주고 뭐 그런 일이 흔했다. 고도 제한이 있어서 큰 건물이 하나도 없는 워낙 작은 동리라서 그럴지도.


일주일에 3일만 영업을 하다보니 일요일에 영업이 끝나면 사장님은 얼음냉동고를 끈다. 만들어진 얼음을 다 녹이고 내부를 씻어서 항상 깨끗한 얼음을 쓸 수 있도록 하는 거였다. 그러면 매일 영업을 하는 일부 카페는 어쩌면 이 과정을 매일 하지 못할 수도 있고 그 이유로 내가 배가 아픈 거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하는 곳이 위생 관리가 철저해서 기분이 좋았다. 출근을 하자마자 사장님이 내려주는 커피 한 잔은 말할 것도 없다. 일단 여기는 커피가 맛있다. 커피맛이 내 입에 맞지 않는 카페에서 괜스레 웃으면서 손님에게 메뉴를 추천하며 거짓말할 자신은 없다. 나는 과감하게 냉동고를 끄는 사장님의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정직하게 장사를 하는 사람이었다. 위생관리는 당연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당연하지 않아서 다른 사람의 건강을 해치기도 하는. 참고로 사장님의 본캐는 간호사라서 다른 사람의 건강을 해칠 수가 없다.


여기서 얻는 것은 위생적인 커피맛 뿐만이 아니다. 딸이 장사를 하는 걸 자기 집에서 바라보며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는 친정부모님을 여겨보는 것도 나에겐 소소한 기쁨이다. 95년에 암으로 아빠를 잃은 나는 우리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사장님 아버님처럼 저러셨을까, 상상을 해본다. 나도 저렇게 아빠한테 잔소리를 했겠지, 아빠도 나에게 커피를 타달라고 했겠지, 아메리카노라는 것이 널리 알려지기 전에 돌아가시는 바람에, 믹스커피가 한봉지에 간편하게 담겨 나오기 이전에 돌아가신 아빠를 생각하며 상상을 한다. 여기에 오시는 어르신 손님들처럼 커피 말고 대추차만 마셨을 지도 모를 일이다. 아빠의 요즘 커피 취향을 알 리가 있나, 올해로 돌아가신지 30년이 되어버렸으니.


도시에 사는 사장님이지만 부모님이 사는 동네에 대한 존중의 의미랄까, 사장님의 메뉴에는 현지에서 나는 재료로 만든 음료와 디저트들이 있다. 여기 사는 나도 한번도 안 사먹어본 재료들인데, 리스펙. 지금은 나도 이장님을 통해 여러가지 현지 식품들을 사먹고 있다. 내가 먹어봤기 때문에 손님들에게도 더 자세히 설명할 수 있었다. 사장님은 나에게 대단한 장사를 시키지 않지만 내 방송작가 주둥이가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손님들을 향해 예고를 쓰고 오디오를 입히고 재방송을 내보낸다. 이 음료는 이 동네에서 나는 이것을 넣어서 맛이 있을 예정입니다. 많은 시청 바랍니다.


한번은 알바가 끝나고 건물주님에게 저녁 초대를 받은 적이 있다. 간단하게 집반찬과 고기를 구워 먹을 건데 같이 먹자고 하셨다. 나는 퇴근을 하자마자 집에 있는 와인냉장고에서(영원히 전원을 끄지 않는) 제일 좋은 와인을 꺼내서 신나는 마음으로 아이까지 데리고 자리에 참석하였다. 그 자리에는 알바인 나 뿐만 아니라 카페에 자주 오는 단골 손님들도 함께였는데 가까운 곳에 사는 분도 계셨지만 서울에서 오신 분도 있었다. 그때의 인연으로 그 손님들을 우리집에 초대한 적도 있는데 그건 다음에 이야기하기로 한다. (연재를 할 때는 다음에 할 이야기를 조금 쟁여놔야한다.) 사장님이 모두에게 친절한 이유는 어쩌면 사장님을 낳으신 건물주님이 모두에게 친절하기 때문이 아닐까.


보통 이런 글은 <도시워킹맘, 시골카페를 열다>라는 제목을 달고 사장님이 직접 연재를 하면 좋겠지만 (모르셨겠지만 나름대로 연재입니다) 사장님 피셜 글재주가 없으시다고 했다. 나라고 뭐 크게 다르겠냐만은 일단 나는 '심심하니까', 내가 먼저 알바의 시선으로 글을 시작했다. 사장님도 언젠가는 본인의 시선으로 본인의 가게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쓰시길 빌어본다. 사장님이 이 지역에 사시는 분이었다면 매일 운영을 하고 나도 덜 심심했을 텐데 (오로지 나의 기쁨을 위해 알바를 하는 자여...) 아쉽지만 아이가 둘인 사장님도 아이가 하나인 나도 매일 여기에만 몸을 묶어 놓을 수도 없는 처지. 달력에서 대체 휴무를 보자마자 먼저 연락을 하는 것은 내쪽이다. 사장님, 이날 연달아 놀던데 카페 연장영업 어떠십니까.




*농담조로 부모님을 건물주라고 했지만 일반적인 한옥을 지칭한다. 시골 한옥 카페이니까. 그러면 한옥주라고 했어야 하나? 한옥소유주? 그냥 사장님 엄마아빠집!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경력자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