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저러겠지
10대에 유학을 떠나 외국 국적이 되어버린 남편이 어느 날 말했다.
- 여러저러 한 일들이 있잖아, 그래서
잠깐. 나는 MBC 우리말 나들이 구성작가로 살면서 '여러해살이'도 들어보고 '여러모로', '여러분' 까지는 들어봤는데 '여러저러'는 못 들어봤다. 남편의 여러저러한 수다를 들으며 손가락으로는 조용히 사전을 찾아보니 '여러저러'는 없다. 이 매거진은 원래 우리 아이가 구사하는 재미있는 한국어 포인트를 기록하는 곳이지만 오늘은 아빠의 '여러저러한' 표현으로 시작을 해보았다. 표준어는 '이러저러'이고, 이와 비슷한 결의 낱말로는 '그러저러'와 '저러저러'가 있다.
다시 본론인 아이의 언어로 돌아가보자. 영어만 쓰다가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4세부터 현재 10세까지, 아직도 발음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희'였다. 엄마 이름에도 들어가는 글자인데 이걸 계속 '흐으이' 또는 '휘'라고 읽는다. 그러다보니 희생자는 '휘생자'가 되고 '흰 물개'는 '휜 물개'가 되어버리기 십상인 것이다. 초등학생 저학년일 때는 언젠간 고치겠지, 친구들이 하는 말을 듣고 따라하게 되겠지, 했는데 여전히 'ㅢ'를 'ㅟ'로 발음하는 아이. 어찌하오뤼까.
굳이 아이의 입장에서 쉴드(바른 외래어 표기는 '실드')를 치자면 'ㅢ'라는 복모음(=이중 모음 : 입술 모양이나 혀의 위치를 처음과 나중이 서로 달라지게 하여 내는 모음)이 영어에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어를 모르는 상태로 한국에 왔고 그때 애미가 한국어를 또 열심히 가르치지도 않았어서 현재위 결과를 낳은 것이 아뉜가.... 그때는 한국에 왔으니까 한국어는 어떻게든 하겠지, 라는 마음에서 그런 거였는데 어익후 2025년에도 그럴 줄을 몰랐다뤼.
이해하지 못하겠는 건 의사, 의자, 의상, 의심 따위는 발음을 잘 하는데 '희'만 '휘'로 발음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필 내 이름만. 그리하여 결단을 내렸으니 아이를 한글 대회에 내보내는 것이다. 사실 한글 대회라고 쓰고 지방 투어라고 읽어야겠지만 세종시에서 한다는 한글 대회 소식을 듣고는 신청서를 휘뚜루마뚜루 작성하였다. 내 외갓집이 충북이라 세종시는 당연히 가보았지만 사실 '세종시'로 바뀐 뒤로는 가보질 못했어서 대회 참가 및 세종 투어를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한글이 안 되는데 무슨 대회 참가인 것이 아니라 한글이 안 되니까 대회 참가를 한글 공부의 계기로 이용하려는 것이다.
엄마가 우리말 작가인 것과 아이의 한글 실력하고는 관계가 없다. 오히려 예선 탈락을 기대하고 있기도 하다. 보통은 승승장구하는 편인 아이가 이번 기회에 탈락의 맛을 새로이 경험하고 엄마는 세종시의 여러저러 핫플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올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즐거이 동한다. 이 글을 읽으신 분들 중에 세종시에서 가볼 만한 여러저러한 곳을 추천해주시면 감사휘 방문해보겠습니다.
+ 새 책 <우리말 나들이 문해력 편>이 나왔습니다. 사회 생활 속에서 우리말 때문에 쪼끔 부끄러웠던 일이 있으신 분들은 찬찬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