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어는 본체만체하다
"엄마, 걔가 나를 본체도만체도 했어."
이 매거진은 자라나는 내 아이의 흥미로운 언어생활을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오늘은 아이가 하는 말 중에 '본체도만체도'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한다. 현재 10살. 아이는 꽤 오랫동안 '본체만체하다'를 '본체도만체도하다'로 잘못 써 왔지만 나는 그게 재미있어서 따로 지적하지는 않았다. 다만 메모장에 기록해두었다가 이제야 시간이 나서 브런치에 옮겨본다.
본체만체하다
「동사」
【…을】
보고도 아니 본 듯이 하다. ≒본척만척하다.
어린이에서 청소년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여자 아이들 특유의 예민한 인간관계 소용돌이 속에 서 있게 된 우리 아이. 분명히 친하게 지내던 아이였는데 어느 날 그 아이가 '본체도만체도' 한 것이다! 본체도 아니하고 만체도 아니했다는 뜻으로 쓰였을 이 말의 표준어는 '본체만체하다'이고 같은 말로는 '본척만척하다'가 있다. 띄어쓰기가 헷갈리겠지만 사전에 한 단어로 등재되어 있는 말이라서 모두 붙여써야 맞다.
나도 같은 경험이 있다. 90년대에 나는 중학생이었고 반포에서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그때 반포에서 학원을 다닐 게 아니라 그 돈으로 집을 샀어야...) 학원에는 우리 학교 아이 뿐만아니라 근처 다른 학교 아이들도 다녔다. 우리 학교에서 소위 날라리라고 불리는 아이 하나가 어느 날 내 옆에 앉았고 학교에서는 아는 척을 하지 않는데 학원이라 그랬는지 나에게 인사를 했다. 그때부터 학원 시간에는 함께 앉아서 공부를 했는데 어느 날, 이 아이가 갑자기 나를 '본체도만체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우리 아이와 달리 중학생이었고 어제도 인사를 하던 애가 모른 척해서 살짝 당황하긴 했지만 그 다음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아 다시 날라리로 돌아가서 평범한 학생인 나와는 말을 섞지 않을 모양이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예상한 대로 그 아이는 맨 뒤로 자리를 옮겼고 다른 학교 날라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뭐 그 이후로는 그 애의 얼굴도 가물가물하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그렇다. 여학생이었던 것만 기억에 남았다. (아..술을 끊어야만)
무던하게 넘길 수 있었던 나처럼 내 아이도 그럴 수 있을까? 세상이 변했고 국민학교는 초등학교가 되었다. 이제 사람들은 초등학교 1학년 아이에게 '모든 같은 반 아이는 친한 친구입니다.'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육아 전문가가 말했던 것처럼 FRIEND와 CLASSMATE는 다른 거니까. 어쩌면 본체만체했던 그 아이는 friend가 아니라 classmate였던 거겠지. 그 아이도 자기만의 이유가 있겠지. 그걸 이해하게 되면 너는 이제 어린이가 아니라 청소년이 되는 거겠지.
아직 4월 중순인 관계로 여전히 어린이이고 싶은 우리집 청소년. (5월 5일에 받아야 할 것이 있기에.. 우린 아직 젊기에.) 평소에는 어린이 아니라고 그렇게 성질을 내더니만 가정의 달에는 어린이여야 하는 우리집 어린이. 그렇게 인간관계의 쓴맛을 보았다. 요즘에는 학교 동아리를 시작하더니 선후배의 쓴맛을 보기 시작했다는데... 이 이야기는 다음에 또 풀어드리리다.
지극히 개인적인 뱀발 : 궁금하다. 요즘에도 '날라리'라는 표현을 학교에서 쓰는지. 요즘에도 각 학교의 날라리들이 자기네들끼리 알아보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며 어울려 다니는지.
"그 아이가 나를 본 체도 만 체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 문장은 맞지 않을까?
#우리말작가
사진은 아이의 학교 생활기록부 일부이다.
"친구들과 관계가 원만하여 많은 친구들을 두고 있는" 우리집 어린이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