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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브라유의 한살이는 읽었어

by Aeon Park

나는 딸아이에게 위인전을 읽힐 때 꼭 남녀의 비율을 같게 한다. 아인슈타인을 빌릴 거면 마리 퀴리도 함께 빌리는 것이다. 하지만 기분 탓인가, 남성 위인전이 더 많아서 항상 짝을 맞추기가 쉽지는 않다. 그럴 때는 예전에 도서관에서 이미 빌려 보았던 여성 위인전이라도 다시 빌려서 꼭 성비를 맞추려고 한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의 80년대 우리 엄마는 그냥 옆집 엄마가 샀다고 하는 전집을 따라 사는 것으로 자식의 지식을 올리려고 했겠지만 내 기억 속 엄마가 사준 100권짜리 위인 전집의 특징은 '왜 남자들이 훨씬 더 많지?'였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책을 한번에 20권 이상 빌려오다보니 정리가 되지 않고 거실에 이리저리 흩어져 있을 때가 많다. 읽은 것은 도서관 가방에 (한 아파트 회사에서 홍보용으로 나누어준 부피가 큰 천가방이다) 넣어놓으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해도 말을 듣지 않는 초등학생. 보통은 결국 내가 허리를 굽혀 바닥에 널브러진 책들을 줍기 마련이다.


- (바닥에서 책을 집으며) 마리 퀴리 읽었어?

- 아니! 그거 넣지 마, 아직 안 읽었어!

- 아인슈타인은?

- 그것도 안 읽었어! 넣지 마, 근데 루이 브라유의 한살이는 읽었어. 그건 반납해도 돼, 엄마.


응? 루이 브라유의 한살이가 뭐지. 먼저 사전을 보자.


한살이

「명사」

「1」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동안. =일생.

「2」 『동물』 곤충 따위가 알, 애벌레, 번데기, 성충으로 바뀌면서 자라는 변태 과정의 한 차례.


그러니까 아이는 루이 브라유의 일생을 그린 책, 한 낱말로 '위인전'을 읽고는 마치 루이 브라유가 곤충이라도 된냥 '한살이'라고 표현한 것이었다. 어머, 너무 흥미로운 생각이야! 학년이 올라가면서 과학 수업이 추가되고 방과후 수업으로 생명과학을 시켰더니 한 인간의 탄생과 죽음까지의 일대기를 한살이로 이야기하다니. 게다가 틀린 말도 아니잖아?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동안'을 뜻하는 표준어, 한살이. 나는 4N년 평생 입에 담아보지도 않았던 낱말, 하지만 아이가 어디 가서 그렇게 이야기하면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틀린 말도 아닌데 말이야.


- 너 지금 사람의 일생을 한살이라고 표현한 거야?

- 어, 왜?


아니야. 지금 안 고칠래. 아직 초등학생인데 뭐. 시험볼 것도 아니잖아. 아인슈타인의 한살이도 얼른 읽고, 마리 퀴리의 한살이도 얼른 읽어. 반납할 때 됐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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