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은 A가 더 나이가 많으냐(older) 아니면 B가 더 나이가 많으냐는 아이의 질문이었다. 이런 참신한 질문을 요즘엔 자주 들을 수 없어 아쉽다. 벌써 올해로 초등학생 5학년이기 때문이다. 오해말라, 예비 5학년의 문해력 문제라기보다는 아직 이중언어의 늪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한 거라고 해주자. 영국에 계속 살았다면 Year 6였을 테지. 얼마 전 아이는 영국 학교 친구들과 찍은 학교 단체 사진을 보면서 아이들의 이름을 곱씹어보았다. 아디예니를 뺀 나머지 아이들의 이름을 다 기억해냈다. 영국에서 5년, 한국에서 5년이 흘렀다. 기억나는 것들은 한국에 더 많을 테니 가고 싶지 않다는 말도 하고, 다시 가서 친구들과 놀고 싶다는 이야기도 한다. 꿈이 뭐냐고 물으면 아직 모르겠다고 하지만 (아이의 현재 가장 친한 친구는 가수로 꿈을 정했다기에 꼭 작사 작곡을 같이 하는 가수가 되라고 귀띔해주었다) 그럼에도 중학교는 지금 살고 있는 시골에서 다니고 싶지 않다는 말도 동시에 한다. 여기가 싫다기 보단 애미애비가 그래도 중고등학교는 도시에서 다녀야 하지 않나, 라며 몇 번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이에게 '시골 중학교'에 대한 어떤 영향을 끼친 것 같다. 그 점에 대해선 미안하게 생각한다. 아이에게 기회를 더 줄 수 있는데 주지 못하고 있는 농어촌 거주 애미애비의 한탄 정도로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농어촌에도 다양한 기회들이 분명 있다. 처음에 도시에서 농어촌으로 이사를 간다고 도시 학교 담임에게 말했을 때 그분은 '농어촌 전형을 노리고' 가시는 거라면 좋은 결정하셨다는 이야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가정 상황 때문에 이사를 한 거지 전형이라는 게 존재하는 것도 몰랐던 엄마였던 것을 누가 알겠는가. 농어촌 전형이라는 것도 이 글을 쓰면서 처음 찾아보았는데 초중고 입학과 졸업, 총 12년을 농어촌 지역에서 생활해야 한다고 하니 이미 조건부터가 우리와 맞지 않다. 우리 아이는 입학을 하지 않고 중간에 전학을 온 거니까. (이 조건에 맞지 않으면 중고등학교를 6년 동안 거주, 재학하는 방법도 있다고 한다)
검은머리 외국인인 아이 아빠는 농어촌 전형은 잘 모르겠고 대한민국이 저출생이라는데 우리 애 하나 들어갈 대학 자리 하나가 없겠냐며 철 모르는 소리를 한다. 이 아빠는 한국에서 일을 해본 적이 없다. 자기 엄마가 차렸던 회사에서 잠깐 팀장을 해본 적은 있지만 그걸 '대한민국에서 직장 생활을 한 사람'으로 쳐줄 수는 결코 없다. 내 선에서 잘라버리겠다. 여보야 너는 여기서 일을 한 적이 없는 거야. 알겠느냐. 그러므로 여기서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여기서 대학을 들어가고 여기서 회사를 들어가고 직장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말을 한 숟가락도 얹을 수가 없겠다. 마음이 급하고 눈썹이 불에 타고 있는 것은 오직 나 뿐이다.
그런데 또 소위 8학군에서 유초중고등학교를 다녔어도 SKY에 가지 못한 애미와 영국 사립학교를 졸업하고 런던에 있는 좋은 대학교에 들어가서 박사 과정 도중 직업을 바꾸어버린 애비 밑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를 생각하면 대학이 또 뭐 대수인가 싶기도 한 것이다. 과연 무엇이 행복이란 말인가. 지금처럼 닭에게 모이를 주고 개와 산길을 산책하며 도시 아이들이 소소하게 아파트 주차장에서 눈사람을 만들 때 어마어마한 양의 눈으로 아무도 침을 뱉지 않았고 아무도 담배꽁초를 버리지 않은 자기 마당에서 이글루를 만들어버리는 지금의 삶이 아이에게 큰 행복인 건 아닌가.
A. '아직' 5학년이니까. 지금처럼만.
B. '벌써' 5학년인데? 변화가 필요해.
두 갈래의 길 앞에 선 아이가 스스로 할 결정을 기다려본다.
A가 better인지 B가 better인지.
영단어 Better는 '더 좋은, 더 잘 하는, 더 알맞은'이라는 뜻과 더불어 '(몸과 기분이) 더 나은'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여기서 better가 '더 좋은 선택'이라기보다는 아이의 '몸과 기분이 더 나은'의 의미이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