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불합리함을 겪었어

by Aeon Park

시골 학교에서 알림장이 왔어. 지역 교육청에서 제공하는 영어 줌 수업을 4개월 동안 들으면 12월에 제주 캠프를 보내준다는 내용이었어. 제주에 한번도 가보지 못한 너는 들떠서 신청을 준비했지. 친구들과 같이 갈 수 있는 제주도라니! 얼마나 신났을까. 알림장은 목요일에 처음 받았는데 손글씨로 쓴 자기소개서와 신청서를 월요일까지 내라고 했어. 너는 신나서 목요일 저녁에 다 쓰고 나한테 맞춤법을 검사 받은 후에 금요일에 선생님께 제출을 했지. 나는 '실력을 1층 더 높이고 싶다'고 쓴 너의 글을 '한층'으로 고쳐준 것밖엔 없어.


마감일인 월요일에 하교한 너에게 난 물었지. 오늘도 많은 아이들이 신청을 했니? / 아니, 아무도 신청 안 했어. 지난 주에 신청한 나 포함 O명이 다야. / 아 그럼 되겠네. 지원자가 아주 많을까봐 걱정했어. / 선생님이 나 자기소개서 잘 썼다고 칭찬해주셨어. 그리고 다른 친구들은 게임 잘한다고 써 놔서 혼나고 다시 쓰게 해서 걔네는 다시 썼어.


엄마인 나는 지원자가 많을까봐 걱정을 했으면서도 다른 엄마들이 이 기회를 모르고 지나갈까봐 전화를 해서 이거 꼭 신청하라고 말까지 해 놓은 상태였거든. 목요일 저녁에 이 내용을 나에게 처음 듣고는 신청서를 프린터하러 읍내에 일부러 나갔다 온 엄마도 있었지. 이 엄마의 자녀가 바로 그 게임을 잘한다고 썼다는 그 아이이기도 해. ㅋ


그런데 그 줌 수업이라는 것을 너무 밭게도 화요일부터 시작한다는 거야. 월요일까지 신청서를 내라고 했고 아직 지원자들이 선정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도 모르는데 화요일에 당장 수업 시작이라니. 뭔가 이상했어. 나중에 알고보니 이건 원래 지역 중학생들을 위한 수업이었는데 인원이 다 채워지지 않았고 초등학생까지 기회가 나중에 온 거였어. 게다가 다른 중학생 학부모들과 이야기를 해 보니 말로는 중학생들이 다 지원할 수 있다고 해놓았지만 사실 그 제주 캠프를 가는 기간은 이 지역 중학생들의 시험기간이라서 신청할 수 없게 되어있는 구조였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인원이 부족했겠지. 이 말을 듣고는 이번에 지원한 초등학생들은 다 선정되겠구나 라고 생각했어. 담임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화요일 오전이 되었고 교육청은 학부모에게 문자를 보냈어. 아침에 선정하려고 했는데 아직 준비가 안 된 지원자가 있어서 좀 기다렸다가 오늘 중에는 꼭 선정 여부 문자를 보내겠다는 내용이었어. 여기서 나는 또 이상하다고 생각했어. 준비가 안 된 지원자는 여기서 걸렀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더니 결국 추첨을 통해 미선정되었다는 문자를 받고 말았지. 추첨을 할 거면 왜 손글씨로 쓴 자기소개서를 받았었는지 또 의아한 부분이었어. 그런데 알고보니 너만 빼고 너희 반에서 나머지 학생들은 다 선정이 되었던 거야. 너는 굉장히 좌절했고 학생이 된 후 공부루틴을 지켜온 아이였는데 이날 처음 공부를 단 한 장도 하지 않았어. 나는 괜한 신청으로 아이의 학습 의욕을 꺾은 건 아닐까 너무 후회했어.


"나는 정말 너무너무 속상해. 왜 나만 떨어졌는지 모르겠어. 누구누구는 자기소개서도 못 써서 혼났는데."


이 일로 나는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다른 엄마들이 교육청에 전화를 했던 모양이야. 같은 반에서 아무리 추첨이라도 한 애만 똑 떨어뜨리면 어떡하냐고, 게다가 이번에 선정된 한 아이는 곧 전학을 갈 아이였대. 그 아이는 겨울 캠프에 참가하지도 못하는데 걔는 왜 붙였냐고. 저녁 시간에 담임 선생님께도 전화가 왔어. 신청서 받을 때부터 될 애를 뽑았어야 되는데 이게 무슨 일이냐며 추첨할 거면 자기소개서는 손글씨로 왜 받았냐고 초등학교로 공문 보낼 때부터 이상했다고 하셨지. 교육청에 얘기해보시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그냥 그 말로 위로를 받아서 추첨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했지.


나는 어쩔 수 없다고 위로할 수밖에 없었어. 제 시간에 신청서를 냈고 손글씨를 제대로 써서 담임에게 칭찬도 받았고 이사도 전학도 안 갈 거지만 가위 바위 보에서 진 것과 같은 거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었어. 다음 날 담임 선생님께서도 "앞으로 세상을 살다보면 이런 억울한 일들이 굉장히 많을 거란다."라고 말씀하셨다고 주눅 든 네가 말했어. 그리고 계속 말했지. 왜 나만.. 왜 나만..


어차피 영어를 잘 하는 아이이니까 서류에서 떨어진 거라면 모르겠어. 영어를 못하는 다른 아이들에게 기회를 준 거라고 생각하면 되고 그런 거라면 애초에 신청도 하지 않았겠지. 중학생을 대상으로 했던 건데 인원이 모자라서 초등학생까지 기회가 온 것을 결국 인원수를 채우려고 아이의 학습의욕을 꺾는 일로 마무리 될 일이라는 것도 알았다면 신청하지 않았겠지. 결국 몇 명이 수업 중에 이탈하고 듣지도 않는다는데 그럴 거면 왜 하겠다는 아이를 추첨에서 떨어뜨린 건지도 모르겠고.. 모르는 것 투성인 상태로 하루하루가 흘렀어.


그때 많이 속상해서 다음 날 쌍꺼풀이 사라진 채로 등교를 하던 그날을 잊을 수가 없어. 그때 그 아이들은 줌 수업 잘 듣는대? 물으면 '몰라, 말 안 해.' 하기도 해. 나는 이번 일로 오히려 이 지역에서 아이를 키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어. 인구소멸이라는 말을 앞에 붙인 이 지역에서 나는 이제 아이를 키우고 싶지가 않아. 사람이 많은 곳이었다면 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었을까?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 많은 곳에서 여러 명이 떨어진 것과 많지 않은 아이들 속에서 너만 떨어진 거는 그릇 사이즈가 다르잖아. 그냥 신청하지 말걸. 불합리함을 겪게 만들어서 엄마가 미안해.






--쿠키1--

그리고 손글씨로 쓴 자기소개서 뿐만 아니라 온라인 신청도 함께 했어야 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오후 6시 29분에 그 신청을 해야 한다는 문자가 단체로 발송되었어. 오늘 자정까지 신청하라는 말과 함께. 그런데 그 사이트가 작동을 하지 않는 거야. 단체 문자에 안내된 번호로 연락을 하니 전혀 모르겠다는 투의 어떤 분이 받았는데 거기는 알고보니 당직실이었어. 그러다가 "현재 교육청 전화가 당직실로 연결되어 통화가 어렵습니다"라는 단체 문자가 다시 발송되었고 어찌저찌 겨우겨우 담당자와 통화를 하게 되었지. 뭐 때문에 그러시냐는 말에 당일 자정까지 신청하라고 해놓고 신청 사이트가 되지를 않으며 담당자들은 다 퇴근을 한 것 같다고 말씀드리니 아 그런 문제가 있었던 거냐며 한 시간 안에 해결하겠다고 답을 들었어. 다른 엄마들은 이런 일이 있었던 것도 모르더라. 결국 시스템이 돌아가게 만들어놓은 건 엄마인데 너만 똑 떨어지게 만든 게 뭔지 알아? 추첨이야. 앞으로 네가 추첨한다는 말에 지레 안 한다고 말할까봐 너무 무서워.


--쿠키2--

신청사이트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원래 중학생들을 위한 수업을 억지로 초등학생까지 확대하면서 신청자격을 '초등학생'까지 되도록 수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어.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렇게 온라인 신청도 함께 진행되어야 하는 거였는데 왜 손으로 쓴 신청서와 자기소개서를 애초에 받았는지는 모르겠어.


--쿠키3--

엄마가 나이가 들어서 너에 대한 많은 것들을 나중에 기억하지 못하게 될까봐 이 매거진을 하고 있어. 아 맞다 그랬었지, 라고 나중에 읽어주기를. 그때 엄마는 이랬구나 나는 저랬구나 하면서 읽어주어도 좋고. 이번 미선정에 너는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것도 알아주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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