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너의 생일에 너는 일본에서 만든 어떤 작곡 프로그램을 사달라고 했어. 사실 작곡 프로그램인지도 명확하지 않아. 반백살에 주판부터 AI까지 다 겪고 있는 내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프로그램이야. Synthesizer V라는 처음 듣는 제품이었는데 가격이 20만원에 가까웠지. 초등학생 생일 선물로 그동안 할 수 있는 건 다 한 거 같아서 그래, 뭔지는 몰라도 저렇게 갖고 싶다고 몇 달을 재잘댔는데, 하나 사주기로 했지. 그런데 이때 네 삼촌이 등판했어. 그동안 버즈2, 닌텐도 따위의 IT스러운 선물을 조카에게 꾸준히 해왔던 내 동생이 이 얘길 듣고 자기가 하나 사주겠다고 나선 거지. 영어도 못하고 일본어도 못하는 삼촌에게 영어도 하고 일본어도 하는 너는 일본어로 된 구매 최종 화면을 삼촌에게 내밀었고 그렇게 결제가 되었어.
그런데 문제가 생겼어. 네가 결제를 했던 너의 노트북에 너의 개인 계정으로 결제를 한 줄 알았던 것이 알고 보니 학교 계정으로 로그인이 되어 있었고 결과적으로 그 초등학교 계정이 그 프로그램을 산 것처럼 된 거야. 너는 그때 너무 놀라서 엄청 많이 속상해했어. 선생님께 혼나면 어떡하냐 절대 말하지 말아달라 취소 못 하냐 꺽꺽대며 여러 해결방안을 찾아봤지만 결국 실패했지. 알아보니 이미 이런 문제가 전세계적으로 많이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 일본 회사는 한번도 결제취소나 계정변경 따위를 해준 적이 없었던 거야. 어쩔 수 없이 우리는 그 프로그램을 너의 계정으로 다시 사고 (이번엔 아빠 카드로) 많이 속상해하고 있는 너에게 다 잘 해결되었다고 거짓말을 했어. 생일 저녁 시간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너는 몇 주 동안 이 프로그램으로 이런 저런 음악을 만들면서 너무 재미있어 했어. 이야, 요즘 애들을 별 걸 다 가지고 노네 하면서 나도 그 소리들을 즐겼지. 그러다 어느 날, 눈치 빠른 네가 결국 말을 하더라.
"엄마.. 이거 다시 결제한 거지...?"
응!!! 미안해!! 고멘나사이!! 그날 네 생일인데 네가 너무 울먹거리고 슬퍼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말했어. 아이는 괜찮다고 말을 하면서도 그때부터 결제 오류나 결제 이상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듯 했어. 어느 정도 구사하는 일본어를 더 배우고 싶다고 언어학습 앱을 깔더니 아무리 유료로 변경하라고 해고 하지 않겠다고 우기고 끝까지 무료로만 이용한다든지.. 괜찮다고, 돈은 쓰는 거고 또 벌면 되는 거라고 아무리 말을 해줘도 말을 듣지 않았어. 그렇게 해가 바뀌고 몇 달이 지났고 오늘. 하교하는 길에 언제나 전화를 하는 네가 밝은 목소리로 들떠서 말했어.
"엄마! 학교에서 진행하는 캠프 신청하면 제주도를 공짜로 보내준대!!"
제주도? 근데 그 한 문장에 '제주도"나 "캠프"에 세기가 있는 게 아니라 "공짜"에 인토네이션이 있는 거 같다? 공짜인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제주도를 배 타고 간다니, 비행기 타고 간다니? (둘 다 불안해) , 언제 간대, 몇 명 간대, 일정이 어떻게 된대, 라고 물어도 전화기 너머로 답이 없었다. 한참 있다가 내뱉은 말은 "그래도 엄마, 공짜라잖아..." 아.. 큰일이다. 이걸 어떻게 고치지. 옆에서 아빠가 "Nothing is free."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다. 보통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았는데 이건 도통 모르겠다.
어쩌면 제주도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영국에서 태어나 살던 우리 아이는 주변 유럽국은 가보았어도 한국에 돌아와서는 코로나 때문에 많이 다니질 못해 결국 "반에서 Jeju Island 안 가본 애는 나 밖에 없어!"라는 말을 한 적도 있었던 것이다. 대신 너는 네덜란드 가봤잖아, 너는 진주 귀걸이는 한 소녀 그림도 직접 보고 너는 프랑스 까르푸도 가보고 너는... 무엇보다도 런던에서 안 가본 곳이 한 군데도 없... 하긴. 기억에 없는 얘길 해봤자이다. 최근에는 제주도에는 아파트가 있냐는 말을 해서 나를 놀라게 하더니 섬이니까 자동차가 반대 방향으로 운전을 하냐는 말까지 했다.
아무래도 올해는 가야겠다, 그놈의 JEJU ISLAND. 출장으로도 여행으로도 자주 가서 만만한 제주도. 널 위해 엄마가 같이 가줄게. 대신 아까워 하지 않기다. 학교에서 공짜로 보내준다는 캠프도 가거라. 그렇게 해서 네 마음이 부자가 된 것 같다면 그냥 그렇게 해. 다시 한번 말하지만 돈을 다시 벌면 되니까. 누가? 네가 어른이 되기 전까지는 엄마가, 네가 어른이 되고 나서는 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