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도 사랑을 할 수 있어요

<레옹> 스포일러

by eggie
나 아저씨랑 자고 싶어요.


레옹을 사랑하게 된 마틸다가 하는 말이다. 레옹은 물론 거절한다. 미성년을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과 사랑하는 연인을 잃은 후에 다시는 누군갈 사랑하지 않겠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깨지 않기 위해서일 것이다. 레옹은 마틸다에게 묻는다. 사랑이 뭔지 아느냐고. 마틸다는 대답한다. 그게 뭔지 모르지만 아저씨랑 같이 지내면서 배에 늘 뭉쳐 있던 게 눈 녹듯 사라졌다고. 그거면 충분한 게 아니냐면서. 결국 마틸다의 성화에 못 이겨 둘은 침대에서 '잠만' 잔다.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딱 봐도 청춘은 물 건너 가버린 아저씨에게 자신의 순결을 바친다는 건 너무 겁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진지한 얼굴로 오직 자신이 원해서 아저씨와 자려고 하는 건 마틸다에게 레옹이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소녀의 순결보다 더 소중한 존재, 아저씨. 사랑하는 갓난 동생을 잃고서 자신에게도 찾아온 죽음의 문턱 앞에서 홀로 울며 서있을 때 마틸다에게 손을 내밀어 준 건 아저씨다. 아저씨가 없었다면 마틸다는 이미 이 세상에 없었다.



아저씨는 마틸다에게 생명을 선물한 신이며, 갓난 동생을 죽인 마약단속국 경찰관들에게 복수할 기회를 준 은인이다. 마틸다를 구해 준 레옹이 하는 일은 청부 살인 업자(cleaner)다. 레옹의 직업을 듣고 마틸다는 멋지다(cool)고 한다. 가족으로부터 폭력을 당하고 가정에서 내팽개져 방치됐었고, 가족 모두의 죽음을 목격한 마틸다에게 청부 살인 업자라는 직업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마틸다는 오히려 아저씨가 하는 일이 자신의 복수에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을 한다.


마틸다는 레옹에게 총 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하지만 레옹은 어린 아이에게 살인을 가르칠 순 없다며 거절한다. 마틸다는 창 밖에 마구 권총을 쏴대거나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면서 자신의 의지가 결연하다는 것을 아저씨에게 각인시킨다. 어린 아이가 눈 앞에서 자살하는 걸 볼 수 없는 레옹은 결국 마틸다를 청부 살인 현장에 데려가 조수 역할을 시키는 지경까지 이른다. 둘은 청부 살인의 완벽한 콤비가 되고, 다행히 단 한번의 실수도 없이 마틸다는 늘 안전하다.



마틸다는 '살인하는 법'을 배우는 동안 끊임없이 레옹에게 사랑을 표현한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보호 받는 느낌, 그리고 누군가 자신을 위해서 무언갈 해준다는 느낌이 아마 마틸다에게 사랑으로 다가온 것 같다. 그러면서 늘 웃지 않고 경직된 레옹을 풀어 주기 위해서 마틸다는 우스꽝스러운 화장과 옷을 입고 유명 연예인을 따라하고 누군지 맞춰 보라 한다. 반대로 레옹도 어떤 제스쳐를 취하며 문제를 내는데 그 모습이 굉장히 귀엽다. 마틸다는 누군지 맞추지 못하지만 정답을 들은 후엔 그 사람과 똑같았다며 아저씨를 위로한다.


마틸다는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도 아저씨에게 사랑의 표현을 서슴치 않는다. 그녀는 함께 간 레스토랑에서 레옹에게 키스하려고 테이블 위에 올라 간다. 레옹은 상당히 당황해 하면서 부디 그만둬 달라고 부탁한다. 마틸다는 단념하고 컵에 담긴 술 한 잔을 단번에 들이켜 버린다. 그러고는 레스토랑 손님들이 다 쳐다볼 만큼 크게 그리고 오랫동안 웃음을 터뜨린다. 사랑을 하는 데 나이는 크게 중요한 문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과민반응하는 아저씨가 너무도 우스워 보인 것이다.



다소 과장된 마틸다의 이 웃음에는 미성년과의 사랑을 금기시하는 사회 통념에 대한 반항심이 저변에 깔려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레옹이 당황해 하든 말든, 사람들이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든 말든 마틸다는 제멋대로 기괴하게 웃으면서 편견에 갇힌 사람들을 비웃는다. 어린 나이에도 열렬히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마틸다는, 나이 차이가 심하게 나는 레옹과 자신을 보는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에 대고 '어쩌라고!'를 외치며 가운데 손가락을 드는 것처럼 호방하게 폭소한다.


하루는 위험한 살인 의뢰가 들어와 레옹은 마틸다를 집에 혼자 두고 나간다. 마틸다는 고민하다가 홀로 마약단속국 건물로 가서 자신의 동생을 죽인 스탠스의 뒤를 쫓지만 결국 함정에 빠져 붙잡힌다. 레옹은 붙잡힌 마틸다를 구하기 위해 마약단속국의 부하들을 쏴죽이는데, 이것 때문에 레옹의 정체와 소재가 경찰국에 노출되게 된다. 경찰들에게 둘러싸인 레옹은 마틸다가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환풍기에 구멍을 뚫고 그 아래로 난 통로로 내려보낸다. 마틸다는 혼자 갈 수 없다고 하지만 레옹은 자신도 뒤따를 거라며 그녀를 설득한다.


You've given me a taste for life.
I wanna be happy, sleep in a bed, have roots. You'll never be alone again.
네 덕에 삶이 뭔지도 알게 됐어.
나도 행복해지고 싶어. 잠도 자고 뿌리도 내릴 거야. 절대 네가 다시 혼자가 되는 일은 없어.


하지만 결국 레옹은 마틸다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다. 마스크를 쓰고 부상당한 경찰로 위장해 출구에 거의 다다르지만 스탠스에게 결국 탄로나 몸에 두른 수류탄을 터뜨려 스탠스와 같이 죽고 만다. 결국 레옹이 마틸다의 복수를 대신 해준 것이다. 홀로 남겨진 마틸다는 동생을 위한 복수 말고도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자신을 위해 목숨을 바친 아저씨를 위해서 남은 삶을 아름답게 살아야 한다. 마틸다는 아저씨의 분신인 화초를 공원에다 심고 아저씨가 편히 쉬길 바란다. 마틸다의 곁에 아무도 없을지라도 예전과 달리 혼자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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