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적어도 열 번씩은 들은 듯
아이유 전곡 작사 및 일부 곡 작곡
앨범 소개에서는 7개의 캐릭터에 아이유의 이야기를 대입했다고 하지만 그건 앨범 타이틀에 억지로 끼워 맞춘 것에 불과하다. 앨범 콘셉트를 떠나서 아이유는 현재 스물셋 자신의 나이에 맞는 고민과 생각들을 음악 위에 올려 고백하고 있다. 가사에서는 만들어진 이미지에 가려진 자신의 진솔한 모습을 다소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 솔직함이 이번 앨범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다.
I. 오랜 시간 기다린 앨범의 첫 곡. 팬들의 기다림에 보답하듯 가사는 "안녕, 오래 기다렸니"라고 말하며 시작한다. 자신의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해주는 방식으로 아이유는 첫 곡에서 특유의 살랑거리는 발랄함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사람들이 자신에게 원하는 모습이 어떤 건지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II. 음악적으로도 활기차다. 인트로는 약간은 행진곡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사도 딱딱한 단어를 거의 완벽히 배제하고 예쁜 순우리말과 조금은 신비로운 느낌의 외래어나 음악 용어를 쓰면서 곡 전체적으로 사랑스러우면서도 비밀스러운 소녀의 느낌을 배가시켰다. 가사는 라임을 반복해 리듬감을 살린 것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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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나멜 플랫 슈즈 위 따다닥
빨간 뾰족구두를 신고 또각
키가 큰 거울 앞에 다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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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한 음악소리 빠라밤
심장은 리듬이 돼요 빠담
우리랑 같이 춤춰요 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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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주인공 아이 제제를 테마로 한다. 제제는 집안에서 악마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심한 장난꾸러기지만 이사 온 집 옆에 자라난 작은 라임 오렌지 나무로부터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이 곡의 가사는 아이유가 나무의 입장에서 제제에게 말을 하는 내용이다. 나무는 자신의 가장 어린 잎을 꺾어가라며 제제를 받아들인다. 다만 스스로도 겁이 나는지 장난치거나 아프게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사랑하는 상대에게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바치는 노래. 아이유만 바라보는 팬들은 조금 슬플지도 모르는 비유가 떠오른다.
II. 짓궂은 제제에게 증오나 멸시 대신 호기심을 느끼고 사랑하게 되는 나무의 마음처럼 음악은 사랑에게 순수를 바치는 여자의 설레고도 부끄러운 마음을 형상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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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제, 어서 나무에 올라와
잎사귀에 입을 맞춰
장난치면 못써
나무를 아프게 하면 못써 못써
제제, 어서 나무에 올라와
여기서 제일 어린잎을 가져가
하나뿐인 꽃을 꺾어가
Climb up me
Climb up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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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이것 혹은 저것이라고 특정할 수 없는 아이유 자신에 대한 성찰. "맞춰봐"라며 조금은 얄밉게 당신이 과연 자신의 진짜 모습을 정할 수 있을지 비아냥거린다. 애초에 아이유는 어떻다고 말할 수 없다며 자신에게 국민 여동생이나 순수한 소녀의 이미지를 덧씌우려는 사람들에 대한 저항심을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다.
II. 음악은 영화 <써니>의 디스코 사운드를 닮은 춤추게 하는 소리를 바탕에 깔면서 변화무쌍한 아이유 자신의 정체성을 나타냈다. 한 곳에 멈춰있지 않고 여우였다가 곰이었다가 완전히 다른 어떤 것이 되기도 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통통 튀는 사운드는 아이유를 틀에 가두려는 사람들의 손아귀에서 힘껏 튀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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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쪽이게?
얼굴만 보면 몰라
속마음과 다른 표정을 짓는 일
아주 간단하거든
어느 쪽이게?
사실은 나도 몰라
애초에 나는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거든
여우인 척, 하는 곰인 척, 하는 여우 아니면
아예 다른 거
어느 쪽이게?
뭐든 한쪽을 골라
색안경 안에 비춰지는 거 뭐 이제 익숙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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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노래의 배경이 되는 계절은 여름과 그 여름을 떠올리는 어느 훗날. 한 사람을 보고 '첫 눈에' 반한 경험을 고백하고 있다. 그 사람을 메마른 땅을 적시는 여름 비에 비유하며 자신의 건조한 마음 한 켠에 수분을 넣어준 것에 약간은 놀란 마음을 담담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오랜만의 단비에 마음이 설레던 밤은 아플 만큼 푸르렀다.
II. 기타 소리와 하모니카 소리가 기본이 되는 잔잔한 곡이다. 아이유의 음악을 떠올리면 늘 빠지지 않는 약간은 마이너적인 감성. 화려한 사운드나 기계음을 동원하지 않고서 있는 그대로의 악기들을 활용해 내는 소박한 소리들이 아이유의 소녀 같은 음색을 가리지 않고 서로 잘 어우러지며 고요한 감정을 쭈욱 끌고 간다.
그날 알았지 이럴 줄, 이렇게 될 줄
두고두고 생각날 거란 걸
바로 알았지
까만 하늘 귀뚜라미 울음소리
힘을 주어 잡고 있던 작은 손
너는 조용히 내려 나의 가물은 곳에 고이고
나는 한참을 서서 가만히 머금은 채로 그대로
나의 여름 가장 푸르던 그 밤,
그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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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모두에게 미움 받는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 몇 개월 전 선후배 간에 욕설이 오간 동영상 유포 사건이 떠오르는 것은 나뿐일까? 아이유는 모두가 욕하는 사람일지라도 사람들이 비난하는 단편에 가려진 뒷모습에는 사랑받아 마땅한 따뜻한 모습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어 한다. 다만 그렇다고 확신할 수는 없기에 '믿거나 말거나' 딱히 마음에 두지 말라고 당부한다.
II. 요즘 가요 차트에서 핫한 자이언티가 피처링을 했다. 관여하는 부분은 짧지만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적지 않다. 후렴구(Hook)에서 발랄한 선율을 따라 묻힌 듯하면서도 그만의 개성을 살리는 코러스는 노래에 묘한 생명력을 더한다. 또한 마지막 부분에서도 리듬을 타는 그의 애드리브는 전혀 노래의 흐름을 깨뜨리지 않고 매력을 올린다.
표정이 없는 그 여자
모두가 미워하는 그 여자
당신도 알지 그 여자
오 가엾어라 그 여자
모두가 무서워해 그 여자
당신이 아는 그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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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를 이어 가 볼까요
(한 번 더 짚고 넘기자면)
이건 어디까지나 가벼운 얘기죠
(괜한 오해는 말아줘요)
그 여자 말야
아주 오래전 슬프게 우는 아무개의
서러운 등을 쓸어준 그 손이
(믿을 수 없이 따뜻하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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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4번 트랙 <푸르던>과 같이 잔잔한 노래. 무대 공연이나 음악 프로듀싱 등 음악인 본연의 일뿐만 아니라 연기 활동, 예능 출연 등으로 꽉 찬 스케줄에 치여 생각할 시간도 없는 매일에 지쳐버린 피로감이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면서 어머니 혹은 할머니의 무릎을 베고 머리를 쓸어 넘기는 따뜻한 손길에 스스르 잠이 드는 그리운 기억을 떠올린다.
II. 이 곡에서 악기는 피아노와 아이유의 목소리 두 가지뿐이다(약간의 스트링 소리를 제외하면). 낮고도 날카롭지 않은 피아노의 선율과 꿈속을 헤매는 듯 몽환적인 아이유의 목소리는 매일의 피곤함에서 벗어나 깊은 잠에 들고 싶은 그녀의 바람처럼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느샌가 '까무룩' 잠에 빠져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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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을 베고 누우면
나 아주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머리칼을 넘겨줘요
그 좋은 손길에 까무룩 잠이 들어도
잠시만 그대로 두어요
깨우지 말아요 아주
깊은 잠을 잘 거예요
조용하던 두 눈을
다시 나에게 내리면
나 그때처럼 말갛게 웃어 보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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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내 눈 앞에서 미소를 지어 보이는 사람들, 애써 자신의 치부를 감춘 사람들을 짓궂게 파고 들어서 그들의 벌거숭이를 까발리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애초에 '무거운 각진 안경'을 쓰고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은 피곤한 일이라면서. 이미 자신은 충분히 피곤해서 그저 무지개를 멀리서 보며 대단한 게 있을 거라고 상상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고.
II. 이번 앨범에서 아이유가 혼자 작곡한 곡 중에서 가장 다채로운 음악이다. 약간은 코믹한 사운드와 엉뚱한 코러스부터 살짝 불협화음이 섞여있는 듯 촐랑대는 피아노 선율까지 프로듀싱의 측면에서 많은 도전을 한 듯 보인다. 가장 인상적인 건 절(Verse)에서 후렴구(Hook)로 들어갈 때 곡의 템포가 느려졌다가 나올 때 다시 빨라지는 부분이다. 곡 전체적으로, 그리고 특히 이 부분에서 피곤해서 깜빡 조는 듯한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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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해도 안경을 쓰지는 않으려고요
하루 온종일 눈을 뜨면 당장 보이는 것만
보고 살기도 바쁜데
나는 지금도 충분히 피곤해
까만 속마음까지 보고 싶지 않아
나는 안 그래도 충분히 피곤해
더 작은 글씨까지 읽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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