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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ggie Nov 15. 2015

첫사랑에 대한 기억

내 첫사랑은 겨울,

어젯 밤,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 새벽 꿈을 꿨다. 여러가지 이야기가 섞여 있던 것 같지만, 가장 기억나는 것 하나는 내 첫사랑이 등장했다. 내가 13살 때, 그러니까 초등학교 6학년 때 좋아했던 애다. 물론 그 이전에도 숱하게 많은 여자애들, 누나들을 좋아했었지만 내가 이 아이를 내 첫사랑이라 하는 건, 이 애를 굉장히 오랫동안 좋아해서이기도 하고 누군가를 좋아하면서 가장 아팠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 애는 객관적으로 볼 때 전형적인 예쁜 소녀는 아니었다. 키가 많이 컸고, 1학기에는 안경을 썼으며, 얼굴도 갸르스름한 편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머리 속에 자꾸 떠오르던 건 그 애의 웃음때문이었다. 웃을 때의 눈과 입이 참 예뻤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느껴지는 분위기, 거창하게 말하자면 아우라. 생각 없이 그저 되는 대로 행동하던 또래 애들과는 달리 굉장히 생각이 많은 것처럼 느껴졌다. 환한 미소 뒤에 숨긴 슬픔이 느껴졌다. 그 슬픔을 응시하는 건 친구로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었지만, 슬픔 섞인 그 애의 미소를 볼 때마다 나는 너의 슬픔을 아노라고, 나는 어린 또래 아이들보다 더 성숙하다고 늘 말하고 싶었다. 내가 그 애를 좋아한 이유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그 애가 다른 여자애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성숙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난 또래 친구들과 놀면서도 자주 그들이 어리고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종종 느꼈고, 나와 같은 아이가 없다는 데 대해서 어떤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난 어릴 때 자주 형 누나들과 어울려 놀아서 나이에 비해서 성숙하다는 생각을 스스로 자주 했었다. 그런데 이 아이를 본 순간 나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아,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너도 나와 같은 고민이 있구나. 솔직히 가슴 깊은 이야기는 서로 한번도 못 해본 것 같다. 나 스스로가 첫사랑의 환상을 깨기 싫어서였으리라. 반 애들과 어울리면서 그 애와 한 자리에 있는 게 그저 기분 좋을 뿐, 적극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 혼자 간직한 추억이 많다. 6학년 수학여행 갔다가 돌아오는 버스에서 그 애의 캐리어 자물쇠가 열리지 않아 나도 도와준다고 같이 끙끙댄 기억. 내가 부디 숨겨진 능력을 발휘해 그 애의 문제를 보란 듯이 해결해주고 싶었지만 그 자물쇠는 끝내 풀지 못했다. 또 무엇을 하려던 건지 모르지만 학교에서 그 애가 내 팔목을 잡고 어디론가 같이 간 기억. 스킨십. 내 가슴이 무언가로 가득 차서 그 순간만큼은 세상 부러울 게 하나 없었다. 당황하거나 놀란 내색을 하지 않으면서 이 애가 내 팔을 더 오래 잡고 있기를 바랐었다. 또 수업 시간에 조별로 활동하는 게 있었는데 그 애랑 나랑 맞은 편이 됐었다. 그래서 같이 어깨춤을 춘 기억. 서로의 어깨를 맞추던 너무 재밌고 기분 좋은 추억. 난 어릴 때 흥이 겨우면 잘 노는 편이라 그 애랑도 즐겁게 잘 어울렸다. 또 그 애가 내 친구랑 사귀고 있을 때, 내가 그 애 연애상담을 들어 줬었다. 핸드폰 문자로 하는 대화였지만 어찌나 떨리고 설레던지. 그 애가 내 친구랑 사귄다는 사실은 그 애에 대한 나의 사랑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좋아한다고 해서 꼭 사귀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 애를 좋아하는 건 내 친구에게서 그 애를 빼앗는 일이 아니었던 거다. 그건 그렇고, 연애상담만큼 서로의 가치관과 감수성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대화는 없는 것 같다. 내 친구가 그 애를 서운하게 한 데 대해서 같이 내 친구 흉을 보거나 그 애를 위로하면서 간접적으로 그 애에 대한 내 애정을 표현했던 것 같다. 그 애도 조금 느꼈겠지. 또 다른 기억은, 학교에서 그 애가 나한테 다른 반 어떤 예쁜 여자 아이를 내게 소개시켜준 거. 그 애 이름이 다은이었나, 누가 봐도 귀엽고 예쁘게 생겼었고 그 반 남자애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여자를 평가할 때 외모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난 수줍은 것보단 당당한 게 좋았고, 조용한 것보다는 활발한 게 좋았다. 다은이는 이 기준에 맞지 않았다. 나는 최대한 상처주지 않기 위해 괜히 둘러대면서 그 짧은 소개팅에서 거절 의사를 조금은 모호하게 전달했던 것 같다. 그 시절의 나는 정말 밑도 끝도 없이 긍정적이고, 어떻게 보면 자기기만적이어서 내가 좋아하는 애로부터 다른 여자 아이를 소개 받고 나서도 그 애도 날 좋아할 거라는 희망은 버리지 않았던 것 같다. 나를 시험해 보려는 걸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1학기 후반부터는 정말 자주 어울려 논 걸로 기억한다. 그 애와 내 5학년 때 짝사랑, 나 그리고 내 친구 매번 같은 한두 명. 한 번은 같이 찜질방에 갔었다. 다른 건 기억이 잘 안나지만 밤에 찜질방에 있는 노래방에 가서 같이 신나게 뛰어 놀았다. 사실은 그 애가 신경 쓰여서 아주 난장판으로는 놀지 못한 것 같다. 기억나는 노래는 낭만 고양이. 정말 즐겁게 불렀는데, 즐거운 내 모습이 그 애한테 어필이 되었을 거라는 생각에 뿌듯했었다.  6학년 2학기 때는 학교 끝나고도 자주 모여 놀았던 것 같다. 물론 내가 저녁에 학원에 가야 해서 그리 오래는 같이 못 있었지만. 방과 후에 만나 놀았던 것 중에는 딱히 기억나는 게 없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나는 재미없는 애였다. 학교에서는 쿨한 척 혼자 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늘 모범생이어야지, 부모님 말 잘 들어야지, 철 없는 행동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좀 빈틈이 있어야 재밌는 일도 많이 생기는 건데 나는 너무 긴장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재밌는 기억은 학교에서밖에 없다.



슬프게도 그 애와의 끝은 좋지 않았다. 6학년이 끝나고,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겨울방학. 나는 앞으로도 내가 공부를 잘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잘 해낼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고 너무 불안했다. 그래서 그 겨울방학동안 계속 무기력했고, 어딘지 모르게 아팠던 것 같다. 중학교에 대비한다고 6학년 끝나갈 무렵부터 나는 새 학원에 등록했고, 자주 놀던 아이들과 잘 못 어울리게 되었다. 이따금씩만 만났는데, 어느 날은 참 눈이 많이 왔었다. 함박눈이었나. 만나기로 했다는 연락을 듣고 나는 내 친구집으로 추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 날은 감기가 좀 심했던 것 같다. 친구 친척인가가 하는 아무도 없는 세탁소에서 난로에 몸을 녹이다가 오랜만에 여자애들을 만나러 친구 집으로 들어갔다. 방학식 날 학교에서도 느꼈지만 여자애들은 꽤 변해 있었다. 특히 그 애. 화장도 하얗고 진하게 하고 어른스러운 코트를 입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남모를 위화감이 들었던 것 같다. 딱 봐도 공부 쪽은 아니구나, 알 수 있는 느낌. 감기로 아파서 그런 건지 그 애가 너무 낯설어서 그런 건지 그 날 우리는 몇 마디 대화도 못 나눈 것 같다. 이어진 그 애의 한 마디. 아직 어리기만 한 듯한 내게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 온 말.


담배 피우러 갈 사람?


다른 생각 없이 사는 애들이면 몰라도, 나는 내 첫사랑 그 애가 담배를 피울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담배는 어린 시절의 나에게 굉장히 많은 나쁜 의미를 담고 있는 물건이었다. 그 애 스스로도 좋은 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을 텐데, 자기를 좋아하는 내 앞에서 그렇게 당당하게 담배를 피운다고 선언하다니. 자기를 좋아하지 말라고 나를 내몬 것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담배 피우지 말라고 말려 주기라도 바란 것이었을까. 하지만 나는 그 애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관계가 아니었다. 같이 어울리지만, 그리 가깝지는 않은. 너무 좋아하지만, 그 감정을 늘 숨기고 있는 관계였던 거다. 남자친구도 아닌 내가 담배 피우지 말라고 하는 건 너무 이상해 보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숨이 턱 막혀서 그 애 눈도 마주치지 못 한 것 같다. 그렇게 불쾌한 정적이 흐르고 그 애는 여자애들과 같이 담배 피우러 가고, 나는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온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친구들은 너무하다고 생각했을 거 같다. 담배를 태우고 다시 돌아 왔는데 내가 말도 없이 가버렸다.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아서 핑계거리도 없이 그냥 집에 와버린 것 같다. 그냥 그렇게, 내가 너무 겁쟁이라서 우리는 그렇게 끝나버렸다. 다른 때였다면 그저 자연스럽게 담배도 받아들였을지 모른다. 그때가, 내가 너무 혼란스럽고 불안한 시기라 그렇게 행동했던 걸지도. 도망친 그 날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마음이 불안했다. 그래서 그 날 이후로 내가 좋아하던 친구들, 그 애들과도 어울린 적이 없다. 고작 담배때문에? 모르겠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그 애들에게 등을 돌린 나 자신이 너무 치졸하고 부끄럽게 느껴졌다는 거다. 내 친구들은 공부를 잘 하지 못했고, 노는 쪽이었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마음 가는 대로 행동했지만, 왠지 중학교부터는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행동 하나 하나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당장의 즐거움은 일절 추구하지 않기로 스스로 다짐했다. 그 애들은 내 즐거움의 온상이었다. 그 애들을 웃기고, 그 애들 무리에서 소속감과 안정감을 느끼고. 그 시절 그 애들은 내 행복 그 자체였다. 먼 미래를 위해, 취지는 좋았지만 어쨌든 고맙고 사랑스럽고 미안한 내 친구들한테 거리를 둔 건 정말이지 못 할 짓이었다. 난 내가 너무 싫었다. 역겨웠다. 스스로를 죽이고 싶었다. 거울 속의 눈빛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그 애들한테 미안해서, 뿌리치지 못하고 어울렸다면 지금에 와서 후회할 일이 없을까? 그 때는 먼 미래를 염두에 두고 내린 힘든 결정이었지만, 그렇게 큰 대가를 치른 것 치고는 지금 삶이 썩 만족스럽지 못하다. 이렇게 될 거였으면 차라리 그 때 그 애들에게 상처라도 주지 말 걸,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안 좋게 헤어진 이후로, 그 애와, 나와 항상 같이 다니던 친구는 나와 같은 중학교에 배정 받았고, 나는 이게 정말 죽을 맛이었다. 늦게 일어나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 자꾸 고통스러운 기억을 끄집어내는 건 너무 힘이 들기 때문에 중학교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그 아팠던 겨울 이후에도 내 마음에는 오랫동안 그 애가 있었다. 어림 잡아 3년 정도 그 애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뭘 해보지도 못하고 끝났으니까. 그것도 정말 안 좋게. 1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그 애에 대한 감정은 정리가 안 됐다. 만약 다시 만난다면 그게 지금이어선 안 된다. 그 애를 만난 반가움보다, 멋지지 않은 내 지금 모습에 대한 자괴감이 더 클 거라. 그게 죽을 만큼 아픈 일인 걸 너무 잘 알아서. 만나더라도 내가 직업적으로 성공해서 좀 여유가 생긴 후에 만나고 싶다. 그때 내가 네게 상처를 준 건, 이런 멋진 미래를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멋진 모습으로 내가 사랑하고 아파했던 그 애 앞에 서고 싶다. 가끔 생각나고 잘 지내는 건지 너무 궁금하긴 하다. 내 생각은 할까? 일 년에 한 번이라도. 나는 그 애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난 그저 나쁜 놈이었을까. 상처만 준, 인간 이하의 남자. 모르겠다. 그 애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고민하는 것도 너무 무섭다. 그냥 아프다. 쪽팔린 그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올라서일까. 지금은 그래도 큰 만큼, 조금은 나를 이해해 주지 않을까. 원망도 조금은 사그라들지 않았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욕심일지 모르지만, 너무 좋아했던 첫사랑에게 나쁜 사람으로 기억되는 건 싫다. 많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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