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바도르 달리를 만나는 날

피게레스, 살바도르 달리 미술관

by 나예

이 날은 달리 미술관을 가기 위해 아침부터 기차를 타고 피게레스로 나갔다. 달리 미술관 외엔 아무것도 없는 한적한 교외. 그것만 보러 2시간씩 이동하는 일은 미술에 관심 없는 사람에겐 다소 낭비일지 모른다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그래서 나는 더 좋았다. 바깥 구경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미련없이 미술관에서 오래도록 시간을 쓸 수 있으니까. 짧은 일정 때문에 지로나와 피게레스를 하루에 묶어서 다녀오는 경우도 많은것 같던데 이런 코스는 썩 추천은 하지 못하겠다. 나는 이 날 미술관에서만 3시간 넘게 시간을 썼다.

'어떤 화가를 가장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에 만약 '저는 히에로니무스 보스를 가장 좋아합니다.' 라고 답한다면 '그게 누구에요?' 나 '어떤 그림을 그린 사람이에요?' 라는 질문이 따라 붙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달리는 다르다. 설령 달리가 어떻게 생긴 사람인지,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는 모른다 쳐도 그 익살스러운 콧수염쟁이의 모습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며, 백번 양보해서 달리의 얼굴은 모를지라도 녹아 흘러내리는 시계의 이미지는 알테니까. 녹아 흘러내리는 시계의 이미지는 달리의 대표작 <기억의 지속 The persistence of memory>에 표현되어있는데 이 이미지는 미술의 ㅁ에도 관심이 없는 내 주변 사람들조차 '엇, 이거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라며 대번에 알아보곤 했다.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omingo Felipe)는 20세기 초현실주의의 선구자이자 스스로를 천재이며 편집광이라고 공언한 일명 '이단의 화가'다. 스스로를 천재라 칭하다니 참으로 시건방진 인간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팩트는 팩트니까 누구도 그의 말을 반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겸손하든 아니든, 그는 환상과 무의식, 현실과 비현실이 뒤섞인 듯한 독특한 화풍으로 앤디 워홀을 비롯한 팝아트의 세계와 현대 영화에까지 다방면에 영향을 미쳤다.


미술관은 붉은 외관에 여러 개의 달걀이 올라간 희안한 모습. 그리고 문을 열기도 전부터 입장을 위해 줄을 서있는 사람들. 관광 성수기인 여름엔 미술관 건물을 한 바퀴 둘러 줄을 선다는데 이때는 겨울이라 그렇진 않았다.

'달리의 작품은 이러저러하다' 라고 하나의 개념으로 퉁쳐서 설명하긴 어렵지만 이 곳엔 달리 특유의 '숨은 그림 찾기' 식의 작품이 꽤 많았다. <Lincoln in Dalivision>는 가까이서 보면 아내인 갈라의 누드이지만 멀리서 보면 링컨의 초상으로 보이고, <Mae West's Face used as apartment> 역시 가까이서 보면 커튼과 액자, 쇼파 등 누군가의 아파트에 놓여있을 법한 개개의 객체이지만 멀리서 보면 Mae West 라는 여배우의 얼굴이 된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온다는 것은 내게는 큰 기쁨이다. 그 안에서 내가 알던 것을 실제로 보게되면 기쁜 감정 중에서도 반가움에 속하는 기분이 샘솟고 아예 새로운 것을 만나게 되면 '이런 것도 있었나?' 하는 놀라움을 느낀다. '숨은 그림 찾기'식의 작품들은 대개 유명한 것들이라 쉬이 알아볼 수 있었고 역시나 반가웠다. 그렇지만 그동안 잘 몰랐던 작품들도 많아서 새롭기도 하고, 결국은 이리저리 발품을 팔며 들여다 보느라 몹시 분주했다. 한 사람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스타일이나 표현 방식이 다양했기 때문에 질리거나 지칠 틈도 없이 계속 돌아볼 수 밖에 없었다.


자갈로 구성한 듯한 그림들은 아르침볼도의 작품들을 연상시켰으며 '달리'답지않은 얌전한 스타일의 그림들, 거울 때문에 보는 위치에 따라 두 그림이 합성되어 보이는듯한 작품, 진짜 새를 납작하게 눌러놓은 작품 등 대강 보고 빠르게 지나칠 수 있을 만한 만만한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


진짜 <기억의 지속>은 뉴욕에 있지만 대신 이 곳엔 달리가 '작품 활동을 위해' 낮잠을 잘 때 사용했다는 침대가 있었다. 달리는 “나는 꿈에서 본 것을 그린다”며 선언했으니 작품 활동을 위해서는 모티브가 될 만한 꿈을 자주 꿔야했고 꿈을 꾸려면 일단 자야하니까 침대에 공을 들인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방은 달리의 창작 활동에 기본이 된 공간인만큼 역시나 가장 사람들이 많았다.


미술관 입장권을 구매하니 보석관도 함께 입장할 수 있었다. 보석관은 달리의 특이한 면모를 표현한 재료가 '보석'이라는 것 외에 미술관의 작품들과 크게 다른 특징은 없었다. 예쁘고 화려한 보석 자체의 아름다움에 집중한 작업이라기 보다는 굳이 보석으로 이런걸 만들어야 했나? 싶을 정도로 기괴하고 희안한 것들이 대부분이라 새삼스럽게 '키치'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그런 어려운 말은 접어둔다해도 '역시나 달리구나' 싶은 것들이 많았다.


이곳에서는 작품 외에도 그 작품을 만들기까지의 상세한 밑 스케치 등도 함께 볼수 있어서 생각보다 은근히 꼼꼼했던 작가의 면모도 엿볼 수 있었다. 일필휘지로 휘갈겨 한 방에 만들어내는 스타일일 것 같았는데 그건 '천재'라는 개념에 대해 내가 갖고 있는 일종의 편견이었던 듯 하다. 괴팍스럽다는게 뭐든 즉흥적으로 해버린다는 의미와 동의어인건 아니니까. 도리어 달리는 병적으로 꼼꼼한 쪽에 더 가까웠을지도 모르겠다. 이 날은 이렇게 내가 갖고 있던 또 하나의 편견을 깼다.


내 나이 세살 때
나는 요리사가 되고 싶었지.
내 나이 다섯살 때
나는 나폴레옹이 되고 싶었어.
나의 야망은 점점 자라났고
지금 내 최고의 야망은
살바도르 달리가 되는 것
하지만 그건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네.
내가 살바도르 달리에 다가갈수록
그는 더 멀리 달아나기 때문에.

- 살바도르 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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