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로나를 걸어보자

지로나, 각종 드라마 촬영지

by 나예

네이버에 '바르셀로나'를 검색해보면 '바르셀로나 일요일'이 자동완성 된다. 일요일에 식당을 빼고는 대부분은 다 문을 닫기 때문에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며 알차게 보내야 할지가 궁금한 사람들이 검색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대강 정리를 해보면

1. 가우디 위주로 돌아라, 가우디는 일요일에도 한다.

2. 365일 오픈하는 마레마그늄 쇼핑몰에 가라.

3. 시우테타야 공원에서 피크닉을 즐겨라.

정도였다. 


아닌게 아니라 정말로 바르셀로나는 일요일에 푹 쉬는 분위기다. 일요일 오전에 노천 시장 같은게 열리는 곳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가게는 셔터를 내리고 거리는 텅 비어 버린다. 상점, 자라(Zara)를 포함한 옷가게, 미술관(간혹 오전에는 하기도 함), 백화점, 심지어 마트까지. 한국에서는 한 달에 한두 번만 마트가 닫아도 당장 그 다음 주가 너무 불편한데 매주 일요일마다 다 문을 닫으면 이 동네 사람들은 쇼핑이나 장보기는 언제 하지? 싶은 오지랖이 발동하고야 말았다. 아마도 평일에 충분히 할 수 있으니까 일요일에 안심하고 모두 다 쉬어버리는것이겠지만.


바깥 분위기에 맞춰 덩달아 푹 쉬는 것도 좋지만 하루가 아쉬운 이방인 입장에서 숙소에 처박혀 빈둥대기는 아까운 노릇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이 날은 기차를 타고 근교 지로나 Girona로 나갈 생각을 했다. 물론 근교라고해서 그 동네는 휴일이 아닌건 아니지만 특별히 이 때의 주말은 '지로나10'이라는 페스티벌 기간이어서 제법 많은 곳이 문을 열었다. 지로나10은 숙박비나 레스토랑의 특선 메뉴 등을 모두 ‘단돈 10유로’로 즐길 수 있는 나름의 할인 행사다. 한화로 바꿔 생각하면 10유로가 그닥 작은 돈은 아니지만 바르셀로나 물가를 생각하면 꽤 매력적인 행사라고 할 수 있다. 보통의 유럽 여행에 비해 스페인 여행의 장점으로 늘 '물가가 싸다'가 언급되곤 하지만 그건 바르셀로나에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다. 마드리드나 세비야 등과 비교하면 바르셀로나의 물가는 살인적이고 인심도 야박하기 그지 없다. 아마도 관광업이 주요 산업인 도시에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으리라.


아무튼 계획대로 기차를 타고 지로나로 넘어갔다. 지로나는 기원전 4~5세기 경 이베리아인들이 세운 오랜 역사의 도시로 오냐르 강과 성벽에 둘러싸인 모습이 참 고즈넉하다. 인구가 10만명이 채 안되는 작은 마을이지만 역사적으로 많은 풍파를 겪으며 수 차례 주인이 바뀐 곳이기도 해 바르셀로나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기도 하다. 작은 마을은 작은 마을 나름의 매력이 있는 법.


람블라 라 리베르타 거리를 걸으며 구시가지를 둘러보았다. 날씨가 맑지는 않았는데 오래된 돌바닥은 반들반들거렸고 적당한 구름이 있어 더욱 운치있었던 기억이다. 작은 마을이니 만큼 딱히 "꼭 이 곳을 가야해!" 라는 마음가짐보다는 천천히 사색하듯 산책하는게 더 어울리는 곳이다. 날씨가 좋으면 일광욕도 할겸 느긋이 걷기 좋은 곳일텐데 이 날은 날씨가 싸늘하고 흐리기도 해서 그런 여유는 누려지지가 않았다. 어깨를 움추린 채 성벽 사이사이를 걸으며 예전에 이 지역의 주인이었던 사람들의 흔적을 만나보았다.


- 아랍 목욕탕 터 Arab Bath

12세기 이슬람 지배 시대의 유물인 아랍 목욕탕터에는 6개 기둥이 달려있는 8각형 욕조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욕조 자체보다는 냉탕과 온탕, 사우나와 보일러 시설까지 갖추고있다는게 더욱 신기했다. 옥상은 전망대로 쓰이고 있었는데 그다지 높지가 않아서 높은 곳에서 쭈욱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은 크게 들지 않았다. 정해진 입장료가 있는 것 같은데 이날은 지로나10 행사 덕분에 1유로에 입장할 수 있었다.


- 유대인들이 살았던 구시가지

건물은 높고 골목은 좁아서 어쩔수 없이 그늘진 곳이 많았다. 날씨가 싸늘해서 그늘이 더욱 춥게 느껴졌는데 골목골목마다 간간히 작은 가게들이 있었다. 말 한마디 안통하는 상점의 아저씨에게 손짓 발짓으로 물어물어 "지로나"라고 적힌 마그넷을 구입했다.


- 대성당

계단에서 바라보는 구시가지의 풍경이 멋지고, 또 성당 외벽이 멋졌던 곳. 1100년경 만들어졌다는 천지창조 태피스트리를 간직한 곳으로 유명한데 태피스트리는 엄숙하고 경건한 느낌보다는 생각보다 솔직히 좀 귀엽고 좀 우스꽝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태피스트리 외에 교황의 지팡이나 모자, 성화 등 그 외의 보물들도 많이 볼 수 있었다. (보물들은 촬영 금지)


그래도 역시 지로나의 랜드마크는 붉은 빛깔의 에펠다리다. 여기서의 '에펠'은 에펠탑의 그 에펠이 맞다. 에펠탑도 주로 철교를 가설했던 토목 기사 구스타브 에펠의 이름을 따서 에펠탑이 된 것이니까. 지로나의 에펠다리는 에펠탑을 짓기 전인 1877년 완공이 되었다. 처음 이 다리가 생겼을 때는 에펠탑과 마찬가지로 '주변의 미관을 헤치는 흉물스러운 철골 구조물이 왠말이냐'며 비난을 받았지만 지금은 지로나 주민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존재가 되었다.


※ 지로나는 각종 드라마 촬영지로도 인기가 많으며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메인 촬영지이기도 하다. 특히 대성당의 경우에는 <왕좌의 게임>, <푸른 바다의 전설>에도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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