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취미에 대하여
몇 년 전, 오랜만에 동창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다들 요즘 뭐하고 지내?" 라는 질문이 나왔다. 이 질문은 퇴근을 한 뒤, 그러니까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뭐하면서 시간을 보내냐는, 요즘 관심사를 어디에 두고 있느냐는 질문이었다.
누군가는 주 2회씩 캘리그라피(그 당시는 캘리그라피가 붐이었다)를 배운다고 했고, 누군가는 프랑스어를 배운다고 답했다. 개인 PT를 붙여 운동을 본격 배우고 있다는 경우도 있었고 또 다른 친구는 요리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나는 여가시간에 책을 읽거나 블로그/브런치에 글을 쓴다고 답했는데 내 대답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묘해졌고 누군가가 피식 웃으며 입을 뗐다.
"그런건 취미가 아니지않나? 여기 있는 사람 중 책 안 읽는 사람 있어? 그리고 SNS하는게 무슨 취미씩이나."
이전까지 나는 책 읽기와 글 쓰기가 하나의 취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 단 한 번도 의구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책 읽기와 글 쓰기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면 혹시 글을 쓰는 플랫폼이 원고지가 아니라 SNS인 것이 문제였을까? 하지만 그 자리에서의 "취미"란 적어도 새로운 것을 누군가에게 배우는 것, 또 그 배우는 과정에 "돈"이 들 것 이라는 조건이 필요한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를 제외한 모두가 없는 시간을 쪼개고 없는 통장 잔고를 긁어모아 뭔가를 배우고 있었다. 순간 나는 내 취미 생활에 대해 혼란에 빠지며 왠지 모를 부끄러움을 느꼈다. 다들 새로운 것을 배우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나 혼자 제자리에 머무르는 것 같아서. 노력도 의지도 없이 그저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만 같아서.
집에 돌아와 가만히 생각해보니 꼭 그런 것만이 취미여야하는 것은 아니지않은가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그리고 취미 생활에 투자하는 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책 읽기에도 꽤 많은 돈이 든다.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앞서 언급한 다른 취미보다 더 비싼 취미가 바로 책 읽기다. 책 읽기에는 책 값만 드는 것이 아니다. 완독한 책을 바로바로 처분하지 않는다면 그 책을 보관하는 비용도 계산에 넣어야 하기 때문인데 이 대목에서 책장 값은 물론이고 집 값도 생각해야한다.
우리 집의 경우 방 한 칸이 서재라는 명목 하, 책으로 꽉 차 있는데 이 방의 면적은 3.5평 정도다. 서울 아파트 값이 평당 3,000만원이라고 가정(2020년 기준)하고 계산하면 무려 1억원. 이만큼의 비용을 일종의 임대료이자 보관료로 쓰고 있는 셈이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비싼 존재가 바로 집 아닌가. 이 정도면 책 읽기는 그 어떤 취미보다도 돈이 많이 드는 취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책들에게 1억을 저당잡혔으니 쉬이 포기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다. 대신 나는 이후 나의 취미를 까내린 그 친구의 한마디 한마디에 신경쓰는 일을 그만뒀다. 대신 계속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세월이 흘러 그 날로부터 몇 년이 지났지만 내 취미는 여전하다. 책 읽기와 글 쓰기. 그간 글을 얼마나 썼는지 그 때 이후로 발간한 책도 다섯 권이나 된다. 그리고 이 책들은 대부분 SNS(브런치)를 통해 발간이 됐다. 밖에 나가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에도 분명 의미는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 취미란 "지속 가능성"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에, 지금도 앞으로도 나의 취미는 여전할 것이다.
배우지 않고 스스로 할 수 있는 취미에 대하여 -
아, 나를 제외한 그 때 그 친구들은 모두 그 "취미"를 그만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