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을 영어로 쓴다면
그건 아마도 Thank you
"결혼을 축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허겁지겁 사무실에 막 들어와 노트북을 꺼내 내려놓다가 다정한 문구와 함께 책상에 놓인 상자를 발견했다. 손바닥 보다 조금 큰 상자를 열어보니 안에 들어있던 건 다름 아닌 분홍색 하트를 품은 백설기와 쑥개떡이었다.
얼마 만일까. 직접 음식을 동료들과 주고받은 게. 생일을 알려주는 카카오톡 덕분에 회사를 떠난 동료에게도 커피 기프티콘을 보낼 만큼 주고받기가 손쉬운 세상에 살고 있지만, 갓 만든 따끈한 떡을 받을 일은 좀처럼 없었다. 결혼은 더 이상 필수가 아닌 데다가, 아는 동생의 말에 따르면, 가까운 가족과 지인에게만 결혼 소식을 알리는 게 새로운 미덕이라고. 언제부턴가 불현듯 책상에 행운의 편지가 놓일 확률만큼 청첩장을 받는 일은 드문 일이 되었다. 잔치 없는 시대에 살다 보니 곳간이 궁하여 파리조차 날릴 일 없는 지루한 책상에 행운의 편지도 아니고 따끈따끈한 답례떡이라니. 물 한잔 먹을 시간도 없는 아침에 이 보다 귀한 브런치가 있을까.
신혼여행을 다녀오자마자 급하게 떡을 준비했을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여 나는 기분 좋게 떡을 집어 먹었다. 이른 아침부터 따끈한 떡을 주셔서 제가 더 감사하지요-오-, 다시 한번 그들의 새 출발에 축복하듯 나는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뒤이어 다른 책상에도 놓아둔 떡을 발견한 사람들의 유레카 행렬이 이어졌다. 이게 웬 떡이냐며 너도 나도 떡을 오물오물 씹느라 바쁜 사무실 한편에서 대화 소리가 들렸다.
"그거 알아? 빵 보다 더 심각한 칼로리 폭탄이 바로 떡 이래."
꿀떡 하나가 밥 반공기에 달하는 칼로리이며 차라리 빵 한 조각을 먹는 게 낫다고, 쑥개떡 하나만 먹고 나머지는 며칠 동안 나눠 먹을 거라는 그들의 처절한 전략을 엿들으며 나는 어쩔 줄 몰랐다. 그렇다. 내 책상에는 어떤 떡도 남아 있지 않았다. 10분만 일찍 들었어도 쑥개떡 하나만 먹고 멈췄을 텐데. 차라리 저 이야기를 듣지 말았어야 했는데. 사랑하는 나의 떡은 한순간에 나를 배신했다. 어쩌면 떡의 위험한 민 낯을 늦게 안 나의 어리석음을 탓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바로 조금 전 입에 넣은 (초) 고열량이 원망스러워 10칼로리라도 태워보겠다며 괜히 팔을 공중에 휘 돌리며 부산을 떨었다. 얼마 돌리지도 못하고 책상 파티션에 팔꿈치가 부딪히는 바람에 아팠고 사무실 직원들이 쳐다보는 탓에 창피해서 더 아팠다. 그러나 더 아픈 건, 떡이 밀가루 보다 더 무서운 당폭탄이라는 바로 그 사실이었다.
갑작스러운 '떡 폭탄' 사태는 가히 절망적이었다. 할머니의 손에서 자라며 아무런 저항 없이 ‘떡’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더욱 그랬다.
떡은 오래된 기억 속 가장 처음 만난 달콤하고 부드러운 즉석 간식이었다. 할머니는 떡집에서 갓 만든 떡을 사 오거나 가루를 샀다. 할머니가 떡을 직접 만드는 날이면 나는 부엌에 일찍 감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쑥을 섞은 쌀가루를 넓적하게 호떡 모양으로 눌러 만들어 솔잎을 깐 찜통에 넣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쑥 향이 집안을 가득 메웠다. 갓 쪄서 보송보송한 반죽에 참기름을 발라 쟁반에 쪼르르 펴 옮겨 놓으면 나는 식기 전에 얼른 한 놈 집는다. 오른손으로 들고 한 입, 뜨거워 재빨리 왼손으로 옮겨 들고 또 한 입, 이렇게 서너 번 오가면 엄지와 검지에 묻은 쑥 반죽만 남아 나는 아쉬운 마음에 입으로 쪽쪽 대고, 할머니는 몇 개 집어 내 앞에 들이밀었다.
"개떡은 소화가 잘 되니 여러 개 먹어도 문제없어. 적어도 너덧 개는 먹어야 차."
쑥개떡. 할머니 손바닥을 가릴 만큼 넓적한 진한 풀색의 그것을 할머니는 줄여서 개떡이라 불렀다. 생김새가 투박하고 할머니표 이름 때문에 괴상한 오해를 받기 일쑤였지만 사실 쑥개떡은 좀처럼 공존하기 어려운 매력, 몸에 좋고 맛도 좋을 것 같은 숲의 향기를 가졌다. 소화가 잘 되니 속 썩이는 법이 없어 기분 좋게 배부른 음식이기도 했다. 이를테면 고3 수험생 시절, 모의고사를 보는 날이면 시험 중간중간 찾아오는 허기를 달래는 고육지책으로 떡을 챙겨 다녔다. 그뿐 아니라 수능을 앞두고 100일가량 독서실을 다닐 때에도 그랬다. 졸음을 쫓기 위해 남들은 껌을 씹을 때 나는 떡을 입에 넣었다. 쫀득거리는 떡을 오물오물거리며 눈을 크게 뜨고 이차 함수를 풀었다. 덕분에 당시 무너져가는 수리영역의 물살을 힘겹게 헤쳐나갈 수 있었고 그것의 자양분은 결국 그토록 미워하게 된 탄수화물, 그 칼로리 폭탄이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떡에게 속아 지내온 이유는 무엇일까. 떡은 여타의 칼로리 덩어리들과 다르게 타고난 성질이 쫀득쫀득하고 따뜻하여 괜히 옆 사람에게 한 덩어리 떼어 주고 싶은 묘한 이타심을 불러일으킨다. 쑥개떡도 그랬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와 찜통 뚜껑을 열면, 보기 좋게 익은 떡들이 등장한다. 두 손가락으로 집을 수 있는 모양과 크기를 유지한 채, 내 앞에, 네 앞에 놓인다. 마치 날개를 달고 천사가 될 준비가 끝난 듯이, 온기를 적당히 품은 채.
할머니는 쿠킹포일을 식탁을 가득 채울 만큼 크게 펼쳐 뜯은 뒤 쑥개떡을 차곡차곡 쌓았다. 그렇게 담은 쿠킹포일 포장을 검은 봉지에 넣으면 나는 그것을 들고 옆 동 할머니 댁으로 갔다. 초인종을 세 번 누르면 그제야 문을 열리고 봉지만 건네고 돌아서려 하면 옆 동 할머니는 나를 붙잡아 기어코 주방으로 데려갔다. 한 입 베어 먹은 쑥개떡을 입에 물고 두 손 바쁘게 냉장고에 뒤적이면 갓 꺼낸 김치와 반찬들은 검은 봉지에 차곡차곡 담겼고 나는 다시 그것을 들고 할머니에게로 돌아갔다. 할머니는 준 것 보다 더 받아오면 어쩌냐며 그 자리에서 김치 줄기를 찢어 입에 넣었다.
"하여간 이 할멈은 곳간을 다 털어 보냈네. 다음엔 개떡을 더 담아 보내야지."
아삭아삭 줄기 씹는 소리만큼 매콤 새콤한 계획은 머지않아 다시 쑥향을 가득 품을 주방의 운명과, 더 무거운 봉지를 들고 심부름을 갈 나의 운명을 예고했다. 봉지 끈자국이 손바닥에 벌겋게 남을 만큼 무거워도, 바로 떡을 꺼내 집어 먹으며 듣는 말들, 가져다주느라 고생했다, 참 맛있다, 정말 고맙다는 소리에 손바닥을 감추고 활짝 웃을 뿐이었다. 그거면 충분했기에.
답례의 표시로 떡을 주는 풍습은 내게 많은 추억을 주었다. 음식으로 말과 글을 대신한다는 걸 알게 해 준 든든한 경험이기도 했다. 표현이 서툰 할머니가 쑥개떡에 같이 넣은 말은 '고마워'였고 '쑥떡'거리며 맛있게 먹는 모습은 '나도 고마워'라는 답장이었다. 맛있게 먹는 것 또한 떡으로 나누는 대화의 일부였기에, 그래서 식기 전에 남기지 않고 다 먹을 수밖에 없었다고, 나는 다시 힘주어 말한다. (뭐, 그렇다는 거다.)
답례떡을 다 먹고 나니 뜻하지 않게 고열량으로 충전하는 바람에 기운이 솟아나고 목소리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슈퍼파워 브런치의 마법인가. 나만 그런가 싶었는데 떡 물고 나누는 대화 속 찰진 의성어들은 온갖 떡종류를 언급하더니 사무실은 본격적으로 북적였다. 떡 좀 먹어본 이들이 소소한 취향을 하나씩 꺼내니 대략 설기파와 찰떡파로 나뉘었는데 나는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설기와 찰떡 모두 사랑하게 해달라고. 결국 한 손에는 설기, 다른 손에는 쑥개떡을 들고 대통합을 부르짖으며 새참 시간은 막을 내렸지만 떡의 자취는 하루 종일 내 곁에 머물렀다. 식어버릴 듯 그윽이 남은 온기는 마치 아침 내내 고마워라고 한 페이지 가득 편지를 받은 것 같은 반가움, 흐뭇해서 곧바로 답장을 한달음 써 내려갔던 고마움이었다. 문득 용기를 내어본다. 따뜻한 마음 한 조각 건네고 싶은 날, 당신에게 작은 상자를 선물하고 싶다. 답례떡상자에 적힌 Thank you처럼 손을 내밀며. 다시 누군가의 따끈한 떡을 만나면 나도 같이 Thank you, too.라고 답장을 건네며.
표지 사진 출처 <a href="https://kr.freepik.com/free-vector/hand-drawn-ching-ming-dumplings-illustration_12673055.htm#query=%EC%91%A5%EB%96%A1&position=0&from_view=keyword&track=ais&uuid=77c1262c-af6d-405f-b985-d9430bf1d767">Freepi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