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조각과 마케도니아 금관

미술사 스터디 22

by 이승희


미술사 스터디 22




그리스 조각


서양 사상 철학은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부터 시작한다.


소크라테스는 육체-영혼 이원론자였다.

그는 만 지식은 영혼 안에 내재된

개념이라고 봤으며,

영혼은 불멸한다고 봤다.

영혼에 내재된 진리를 통찰하면

만 지식을 얻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합리주의자였으나,

때로는 초경험적인 내심의 소리,

즉 다이몬의 소리를 경청하고,

때로는 깊은 명상에 잠기기도 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절대 세계를

체험을 한 사람으로

그것을 제자들에게 전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수제자인 플라톤은

이론으로만 전수받았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아름다움은 균형 감각과

조화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은 적당한 척도와

비례를 유지하면 항상 아름답다라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미를

크기와 질서 잡힌 비율이다라고 했다.

이것을 바로 '미의 대이론'이라 한다.


이런 철학의 바탕에서

아름다운 비율을 가진 형태의

그리스 조각들이 나온다.




기원전 5세기에 폴리클레이토스는

7등신의 인체 비례를 정한다.

스코파스를 지나

리시포스는 다시 8등신으로 바꾸고,

한층 우미한 상을 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황금비율(Golden Ratio)도 연구되었다.

황금비율은 약 1:1.618로 표현된다.

이는 수학적으로 가장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비율이다.

이러한 황금비율을 토대로

면을 나누는 것을 황금분할이라고 한다.

황금분할을 활용할 경우 사람들은

시각적으로 조화와 안정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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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최고 조각가

프락시텔레스


프락시텔레스의 작품 헤르메스는

대리석 조각 가운데

최고의 걸작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프락시텔레스, 헤르메스. 기원전 330년 경





프락시텔레스가 제작한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는

여신을 전라로 표현한 최초의 조각품이며,

그 후 여성 나체 표현의 원형이 되었다.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의 원본은

소실되었고 49점의 모작이 전해진다.




크니도스의 아프로디테, 로마 시대 모각, 4세기경, 독일 뮌헨 글립토테크 미술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개인 조각가

리시포스


BC 4세기 그리스의 조각가 리시포스의

카이로스라는 부조 조각이 남아 있다.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로 구분한다.


크로노스 시간은 자연스레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이다.

크로노스적 시간은 달력의 시간이다.


카이로스 시간은 제 때를

의미하는 시간이다.

기회나 결정적 순간에 그에 맞는

올바른 행동을 하는 시점을 말한다.

그래서 기회라는 말로도 쓰인다.




제우스의 아들인 기회의 신 카이로스,

그의 앞머리는 머리털이 무성한데 비해

뒷머리는 대머리이고

왼손엔 저울,

오른손엔 칼을 쥐고 있는 형상이다.

어깨에는 큰 날개가 달려있고

신발에는 작은 날개가 달려있다.


카이로스에 관한 내용은 이렇다.


"내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봤을 때

금방 알아차리지 못하게 함이고,

또한 나를 발견했을 때는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고,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면 사람들이 다시는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어깨와 발뒤축에 각각 크고 작은

날개가 달려있는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함이다.

왼손에 들고 있는 저울은

기회가 앞에 있을 때 그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판단하기 위함이고

오른손에 잡은 칼은 옳다고 판단할 때

칼 같이 주저 없이 결단할 것을

촉구하기 위함이다.

나의 이름은 '기회'이다."





리시포스, 카이로스, 고대 그리스






리시포스가 기원전 220년에

헤라클레스 청동상을 제작한다.

그 청동상은 기원후 211~17년 로마 시대에

'파르네스의 헤라클레스'라고

불리는 석상으로 모각된다.


이 석상이 발굴된 것은

16세기 중엽 파르네스 가문 출신인

교황 바오로 3세의 욕심에 의해서이다.

오래된 본인 가문 저택인

파르네스 궁전을 꾸미기 위해

화려하기로 소문났었으나 폐허가 된

로마 황제 카라칼라 욕장을 뒤졌다.

그렇게 해서 유일하게 찾아낸 것이

헤라클레스 석상이다.





파르네스의 헤라클레스,

그리스 조각가 리시포스의 청동 원작(기원전 330년)의 모각품,

211~17년, 로마 시대, 나폴리의 고고학 박물관





트라키아의 금세공술과 마케도니아 금관


트라키아의 뛰어난 금세공술은

킴메르, 스키타이, 고대 그리스, 페르시아 등

주변 문화들과 교류하며 발전했으며,

독자적인 문화 정체성과 예술성을 표현했다.


트라키아 금세공술과 마케도니아 금관은

고대 발칸반도의 금속공예에서 서로 연관되면서도

독자적인 특징을 갖고 있었다.


트라키아 금세공술은

발칸반도 전역에서 고유한 동물문양과

기하학적 문양으로 발달해,

장신구와 제의용품에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준다.

마케도니아 금관은

특히 왕권과 신성을 상징하는 제의용 왕관으로,

트라키아 문화권과 접촉하면서

그들의 금속 세공 기술의 영향을 받았다.


트라키아 금세공술은

바로 위 현재의 우크라이나 지역 스키타이의 영향으로

동물 양식, 특히 동적인 동물 형태 표현이고

마케도니아 금관은 보다 식물적이고

신성한 자연 모티브를 강조한다.

트라키아 금세공술은

마케도니아 금관의 제작에 기술적·미학적 영향을 미쳤으며,

두 문화는 금속공예를 통해 상호 교류와

독특한 정체성을 동시에 발전시켰다.




BC 5세기 트라키아 왕의 순금 마스크, 불가리아




화면 캡처 2026-03-29 112008.png

순록 머리 모양의 금술잔





1975년 마케도니아 금관 발굴이 있었다.

황금 머리 장식과 필리포스 2세의 황금 왕관과

5번째 왕비 메다의 것으로 추정되는

왕비 금관이 출토되었다.


황금 머리 장식은

작은 꽃다발을 정교하게 조각한 경이로운 공예 작품이다.

왕비 금관은

꽃 디자인을 금과 에나멜로 장식해 화려하다

자연스러워 권위주의적이지 않고

섬세하되 형식적이지 않다.

여타 기존 금관들에 비해 탁월하다.

예술성이 있다는 뜻이다.


필리포스 2세와 알렉산더 대왕 시대의

마케도니아 왕관은

트라키아 금속 공예의 일부 화려한 기술적 요소들을

수용하면서도

자신만의 정치적 상징미학을 형성했다.






황금 머리 장식, 테살리아 고고학 박물관



왕비 금관,. 금과 에나멜로 장식. B.C336년 경.

베르기나 고고학 박물관




왕비 금관 디테일





트라키아 전사 무덤 발견


2024년 불가리아에서

태양광 발전소 설치와 관련된 발굴 작업 중,

전사와 그의 말이 묻힌 무덤이 발견되었다.

'사카르의 군주 Lord of Sakar'라는 별명을 얻은

전사 유골이 불가리아에서 화려한 금화관을 쓴 모습이었다.

기원전 2세기에 만든 이 무덤은

불가리아에서 발견된 것 중 가장 풍부한 유물을 자랑한다.


사카르는 불가리아 남동부 산맥 이름을 따서 지은 명칭이다.

스키타이를 유라시아 중부와 동부에서는 사카이,

인도에서는 사카라 불렀다.

사카르가 더 원어에 가깝다고 본다.

언어학적으로

르는 이동을 해서 리로 불리거나 없어지곤 하기 때문이다.




이 무덤은 불가리아에서 발견된 무덤 중 가장 부유한 무덤이다.

무덤의 주인은 기원전 150년에서 100년 경

헬레니즘 시대 후기에 살았으며, 스키타이 전사였다.

그 무렵 트라키아 지역은 그리스 지배를 받았고

그 세기말에는 로마 제국 일부로 정복당한 것으로 보아

그 지역 스키타이 최후의 무덤으로 여겨진다.




금박을 입힌 은으로 만든 화환 wreath


이 금박 화환은 로마의 월계수관의 원형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유럽의 월계수관의 뿌리는 스키타이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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