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와 페르시아

미술사 스터디 22

by 이승희




메소포타미아 문명와 이집트 문명

> 아나톨리아 문화

> 그리스 문화와 페르시아 문화


지금까지

고조선의 12국 중 하나인 수메르 문명으로 시작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와 이집트 문명에 이어

고조선에서 이주해온 킴메르와 스키타이가

지금의 터키 북부 아나톨리아 문화 형성에

영향을 끼쳤음을 이야기 했다.


최근 아나톨리아에서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라는

기원전 12,000년 전 유적이 발굴되면서

환국 이전의 문화가 있었음이 확인된 바,

유서 깊은 지역이 아닐 수 없다.




메소포타미아와 아나톨리아


메소포타미아와 아나톨리아는 서로 인접하지만,

고전 고대사·지리에서 명확히 다른 영역이다.


메소포타미아의 기본 영역은

어원상 “강들 사이의 땅”이라는 뜻으로,

티그리스·유프라테스 두 강 사이 및

그 주변 범람원을 중심으로 한 지역이다.

지형적으로는 저지 범람원·하곡 평야가 중심이며,

관개 농업과 도시 문명이 발달한 “비옥한 초승달”이 핵심 구역이다.


아나톨리아의 기본 영역은

오늘날 튀르키예 영토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아시아의 큰 반도이다.

북으로 흑해, 서쪽으로 에게해·마르마라해, 남으로 지중해에 접하며,

내부는 고원·산지가 많은 해안 평야와 여러 강 유역이다.


둘의 경계와 접점은

남동부 아나톨리아는 상부 메소포타미아와 맞닿는 완충 지대로,

오늘날 튀르키예 남동부에 해당된다.


히타이트는 아나톨리아 고원에서 출발해

메소포타미아 쪽으로 진출했고

고대 아카드·아시리아·바빌로니아는 메소포타미아 중심에서

북쪽·북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아나톨리아 남동부 도시들과 활발히 교역도 했고 전쟁을 벌였다.







두 지역의 위치가 주는 문명사적 차이는 다음과 같다.


아나톨리아는

하티·히타이트·프리기아·리디아 등 고원·산지 기반의 왕국들과

서부 해안의 이오니아 그리스 도시들이 공존한 복합 지역으로,

동서 교통의 관문이자 금속 자원의 공급지로 기능했다.


메소포타미아는

티그리스·유프라테스 강 사이인 주변이 저지 농경 문명 공간으로

수메르·아카드·바빌로니아·아시리아 등

강 유역 도시 문명의 발상지로,

관개 농업·도시국가·법전(함무라비 법전)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아나톨리아는 그리스어로 '동쪽', '해돋이'를 의미하며,

고대부터 많은 도시 국가와 왕국이 번성한 문화의 요람이다.

유럽의 뿌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킴메르의 활동 무대이기도 했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와 아나톨리아의 문명은

서쪽으로는

유럽인들이 그들의 문화의 근원이라 생각하는

그리스 문화와

동쪽으로는

아리아인들이 이주해서 이룬 페르시아 제국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초기 에게 문명


유럽 문명의 기초를 형성한 청동기 문명부터

로마 정복까지 이어지는 과정으로,

척박한 산악 지형 속에서 폴리스(도시국가) 중심의

독특한 발전을 이루었다.


크레타 섬의 미노아 문명(기원전 3000–1400년경)

궁전 건축(크노소스)과 해상 무역으로 번영했으나

화산 폭발·지진·외침으로 쇠퇴했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미케네 문명(기원전 1600–1100년)

미노아 유산을 계승하며

트로이 전쟁(호메로스 서사시)으로 유명한

전사적 왕국 문화를 꽃피웠다.


암흑시대(기원전 1100–700년)

'바다 민족' 침입과 내전으로 미케네가 붕괴된 후

인구 감소·문맹화가 발생했으나,

철기 도입과 이오니아 이주로 회복했다.




고대 그리스 문명


그리스 도시국가의 생성(기원전 8세기경 ~ 500년)

아테네·스파르타 등 수백 개 폴리스가 등장,

산악 지형 탓에 통일 국가 대신

경쟁적 도시국가 체제가 정착되었다.


고전기(기원전 500–323년): 전성기

페르시아 전쟁(기원전 499–449년) 승리로

아테네 중심 델로스 동맹이 형성,

민주주의·철학(소크라테스·플라톤)과

예술(파르테논 신전)이 절정에 달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404년)으로

아테네 패배 후 스파르타·테바가 잠시 우위,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가 폴리스들을 정복했다.





페르시아 전쟁




그리스인들은 해양 활동을 통해

지중해 전역과 흑해 연안에 걸쳐

식민 도시를 세우며 무역 활동을 활발히 했다.


고대 그리스는 페르시아 전쟁에서의 승리로

아테네가 중심 폴리스로 떠올랐고,

페리클레스 시대에 황금기를 맞아

문화·예술·과학이 발달했다.

델로스 동맹을 주도하면서 해군력을 강화했지만,

이후 스파르타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통해

세력이 크게 약화되고, 테베가 잠시 주도권을 잡기도 했다.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2세가

기원전 338년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그리스 폴리스 연합군을 꺾으면서

그리스의 독립적인 세력은 사실상 끝나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 활동으로

헬레니즘 문화가 전 지중해로 확산되었다.


이후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그리스 문명은 정치적 독립은 잃었지만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 역할은 계속했다.


요약하면, 고대 그리스 역사는

초기 폴리스의 형성과 번성,

외부 침략과 내분으로 인한 쇠퇴,

마케도니아와 헬레니즘 시대,

로마 시대를 거치며 흥망성쇠를 거듭한

문명사라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문명은

서양 문명의 기초를 형성한 중요한 역사이다.





페르시아 제국의 최대 영역




페르시아 제국

아케메네스 왕조(기원전 691년 ~ 330년)


아케메네스 왕조는 기원전 691년

테이스페스가 엘람 왕국의 안샨을 점령하며 시작되었으나,

본격적인 페르시아 제국의 형성은

기원전 550년경 키루스 2세(키루스 대왕)가

메디아를 정복하면서이다.

아케메네스 제국은 약 220년간 유지되었으며,

기원전 330년경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멸망했다.


주요 통치 시기로는

다리우스 1세(기원전 521~486년)와

크세르크세스 1세(기원전 486~465년) 시기가

아케메네스 왕조의 전성기였다.





그리스와 페르시아 역사 비교


그리스와 페르시아의 역사는

서로 다른 문명권과 문화적 배경에서 발전했으며,

여러 차원에서 비교할 수 있는

흥망성쇠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정치 체제와 사회 구조

그리스는

도시국가(폴리스) 중심의 정치 체제였으며,

아테네는 민주주의를,

스파르타는 군사적 과두제를 실현하였다.


페르시아는

대제국으로서 왕권 중심의 군주제를 운영했으며,

다양한 민족과 문화를 통합하는

중앙집권적 행정을 갖추고 있었다.


대외적 충돌과 전쟁

페르시아는 그리스에 비해 여러모로 우세한 상황이었지만,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투,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 등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공에

그리스는 여러 차례 승리하며 독립을 지켜냈다.

이후 알렉산드로스의 정복으로써

페르시아는 서서히 쇠퇴하세 되었다.


문화와 예술

그리스는 철학(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조각, 극예술, 민주주의의 발달이 돋보인다.

고대 페르시아 제국은 정교한 궁전과 풍부한 예술,

유목민적 전통과 결합된 문화적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종합적 비교

그리스는 도시국가의 경쟁과

민주적 정치, 학문적 성취가 두드러졌으며,

페르시아는 광대한 영토 통치와 행정, 종교적 정교성이 특징이다.


그리스는 연합과 저항을 통해 독립성을 유지했으며,

페르시아는 대제국으로서 확장과 통합을 시도했지만,

결국 알렉산드로스의 정복으로 멸망했다.

이와 같이, 두 문명은 각각의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었으며

서로의 전쟁과 문화 교류를 통해 역사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두 문명은 약 400 ~ 600 년간 겹치면서

대립과 교류를 했으며,

페르시아의 제국적 확장과

그리스 도시국가들의 민주주의 및

문화 발전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리스와 페르시아 년대 비교




그리스의 건축





아테네 메트로폴리스


아테네는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국가 중 하나로,

기원전 8세기경부터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아테네는 특히 기원전 5세기 페리클레스 시대에

민주 정치가 완성되었으며,

이 시기를 "아테네의 황금기"라고 부른다.




파르테논 신전, 기원전 447년 ~ 기원전 432년,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기원전 480년에는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가 아테네를 약탈하고,

아크로폴리스의 옛 목조 건축물들을 모조리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러나 아테네인들은 그 이듬해에 페르시아 병사들을 무찌르고

아테네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그리고 아크로폴리스를 다시 지었다.


파르테논 신전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정상에 위치한

대리석 신전으로, 아테네의 수호 여신 아테나에게 바쳐졌다.

고전기 그리스 건축의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건축가 익티노스와 칼리크라테스가 설계하였고,

조각가 페이디아스가 장식 조각을 감독하였다.

이 신전은 그리스 민주정과

유럽 문화권의 상징적 기념물로서 중요성을 지닌다.

예술적으로 후대 건축가들에게

많은 영감을 준 건축물이기도 하다.


그리스 건축물의 특징은

기둥 위 공포에 해당하는 기둥 받침으로 평가한다.

가장 초기의 단순한 도리스식 기둥과

그 후 발전된 이오니아 양식 요소의 혼합된 형태를 보이며

코린트식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건축적 착시현상을 이용한 미적 조화와

구조적 내구성 등이 있다.




신전은 페르시아 전쟁 후

아테네의 승리와 번영을 상징하기 위해

델로스 동맹의 기부금으로 건설되었다.

오스만 제국 시기에는 모스크로 변했으며,

1687년 베네치아군의 포격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기도 했다.

현재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복원 작업이 지속되고 있으며,

고대 그리스 건축과 예술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에레크테이온 신전



아크로폴리스 언덕의 정상에서 본 파르테논 신전(왼쪽)과

에레크테이온 신전(오른쪽)











에레크테리온 신전의 여신 기둥들





페르시아


페르시아의 역사는

고대 이란 지역에서 시작하여 여러 왕조를 거치며

중동과 서아시아, 북아프리카에 걸쳐

거대한 제국을 형성한 중요한 역사이다.


아케메네스 왕조 (기원전 550년~기원전 330년)

최초의 페르시아 제국을 세운 왕조로,

키루스 2세가 메디아, 리디아, 바빌로니아 등을

차례로 정복해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다리우스 1세 때는 전성기를 맞아

중앙집권화, 행정체계 확립, 도로망과 우편제도 정비 등으로

제국 통치의 기반을 마련했다.


페르시아는 관용 정책을 펼쳐

다양한 민족과 종교를 포용했으며,

조로아스터교가 국교로 자리잡았다.




페르시아는 아리아인의 후손의 나라 이름이다.

페르시아인들은 페르시아라는 국명은 2500년 간 사용했다.

페르시아라는 이름은 이란의 남부 지명인

페르시스(현재 페르세폴리스)에서 왔다.

페르시스는 아리아인의 한 부족인

파르샤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파르샤(부족 이름) > 페르시스(지명) > 페르시아(나라 이름)


페르시아라는 아리안족의 나라에 수많은 왕조들이 피고 진다.

오늘날 진정한 아리아인의 후예를 강조하는 나라가 이란이다.

이란이란 뜻은 아리아인의 나라이다.

이란인들은 이집트에서 인더스강까지 이르는

고대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했던 아케메네스 왕조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아리아와 아리안

“아리아(Ārya)”는 원래 인도-이란계 고대 언어에서 나온 말이고,

“아리안(Aryan)”은

“아리아어(를 쓰는 민족 집단)”이라는 학술적 개념으로

19세기부터 유럽 언어학에서 쓰기 시작한다.


아리아의 본래 어원과 의미는

산스크리트어 ārya, 아베스타어 airya에서 온 말로,

기본 뜻은 “고귀한, 품위 있는 사람”이다.




아리안인의 혈통을 이은 페르시아는

메소포타미아 동쪽 지역에 자리하며

그전에 있었던 수메르와 이집트와 인더스 문명

그리고 아시리아와 바빌론 문명들의 좋은 것들을 모두 수용해

그들만의 페르시아 문화와 문명을 재창조해냈다.


페르시아 제국의 첫번째 왕조가 아케메네스 왕조이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건국자는 키루스 대제이다.

그는 키루스 왕조라 하지 않고 그의 선조인 아케메네스를 내세워

왕조의 이름을 지었다.

고구려가 고구려의 시작을 북부여로 여겼던 것과 같은 이치이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선조를 떠받드는 겸손한 처사이다.

키루스 대제의 치적은 왕 중 왕으로 불릴 만하다.





페르시아의 건축


고대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페르세폴리스 유적




페르세폴리스


고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이다.

현재 이란 시라즈에서 북동쪽으로 40km 가량

떨어진 곳에 있는 고고 유적지이다.

고대 페르시아인들은 이 도시를

페르시아인들의 도시라는 뜻의 ‘파르사’로 불렸는데,

이를 그리스인들이 그리스어로 옮기면서

‘페르세’(페르시아인들)와 ‘폴리스’(도시)로 불렀고

그 이름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페르세폴리스는 기원전 518년부터 건설되었다.

최초로 이 도시를 정한 것은 키루스 2세이지만

다리우스 1세부터 궁전과 테라스 등을

본격적으로 건설하기 시작하여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가 완성하였다.

아케메네스 왕조가 끝날 때까지 부분적으로 공사가 끊이질 않았다.


기원전 333년경 마케도니아 왕국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페르시아를 침입했을 때 페르세폴리스는 최후를 맞았다.

알렉산드로스는 페르세폴리스로 쳐들어가

몇 달간 보물을 모두 약탈하고

도시를 폐허로 만들 것을 명령했고

크세르크세스 1세의 궁전은 잿더미로 변했다.

이것은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1세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당시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불태운 일에 대한 복수로 보인다.

페르세폴리스는 알렉산드로스의 사후

셀레우코스 왕조 치하의 페르시아에서도

여전히 수도로 있었으나 점차 폐허로 변했다.




페르세폴리스는 바빌론·수사 같은 행정 수도와 달리,

제국 각지의 대표들이 공물을 바치고 연례 의식을 치르는

제국 위엄 과시용 의식 수도·왕실 보고(보물창고) 역할을 했다.

유적의 특징은

거대한 인공 테라스 위에 아파다나 궁전(알현실),

백주홀(‘100기둥의 홀’), 왕궁, 계단 부조,

왕의 문(문지기상) 등이 남아 있으며,

각지 사절단이 공물을 바치는 장면을 묘사한 부조가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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