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독립 도자기 4

핸드빌딩 도자기 정규 클래스 첫 번째 날,

by 한됴



처음 데셍을 배우던 때가 생각났다.

난 여전히, 나를 다루는 일에 꼼꼼하지 못하다.





처음 도전하는 정규 클래스는 어려운 이론을 공부하고, 단계별 커리큘럼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딱딱한 분위기는 없었다. 수업 일주일 전, 어떤 도자기를 만들고 싶은지 미리 도안이나 사진을 준비해달라는 선생님의 요청에 급하게 핀터레스트를 뒤적여 레퍼런스를 찾았다.


3개의 컵과 2개의 다과용 작은 접시를 만들생각이다.


3개의 컵은 모두 친구네 가족을 위한 것이다.

서울살이 동안 많은 도움을 준 친구네 가족을 위해 크기별, 모양별로 컵을 만들어 선물하기로 했다. 물레가 아닌 손으로 만들다 보니 울퉁불퉁하고 못생긴 컵에 더 가까울 것이라, 선물하기가 망설여졌지만 친구는 상관 없다고 했다. 일하다 잠깐 쉬는 시간, 여유를 즐길 수 있을 만큼의 컵이면 된다고 부담을 덜어주기도 했다.


나머지 두 개의 접시는 나를 위한 것이다.

전통주와 함께 놓일 기왓장 모양의 접시와 한과나 약과 등 디저트를 놓을 수 있는 작은 다과용 앞접시를 만들어 볼까 한다.


대망의 첫 수업.

선생님께 찾아놓은 그림과 이미지를 보여드리자, 고개를 한 번 끄덕이시곤 바로 수업을 진행해주셨다.


일단 기초 다지기를 할 수 있는 컵부터.

마음 같아선 3개 모두 하루 만에 만들고 싶지만 코일링으로 하나하나 쌓아 올리는 건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일단 2시간 내에 2개 정도는 만든다는 목표로 천천히 시작했다.


원데이와 정규클래스 사이에 두 달 정도 공백이 있었다니 보니, 오랜만에 만지는 흙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처음에 어떻게 시작했었는지도 가물가물 해져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다시 배운다는 생각으로 임했다.


먼저 원하는 컵 크기의 바닥 판을 만들고 그 위에 수타면처럼 기다란 흙 반죽으로 컵 외벽을 쌓는다.


지난번 수업을 통해 도자기는 소성하면 크기가 현저히 줄어든다는 뼈아픈 경험을 겪었다. 이번에는 처음부터 큼직하게 만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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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큼직하게 시작한 건 좋다.

근데, 높은 이상과 다르게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은 손에 불안함이 훅 끼쳤다.


기술적인 면이야, 아직 배우는 단계이니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 마음을 요동치게 했던건,

손 끝 하나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대충 끝내버리려고' 했던 마음가짐'이었다.



코일링을 하나하나 쌓을수록 어릴 적 미술시간 데셍을 처음 배우던 때가 생각났다. 미술 선생님은 소묘륻 대하는 선만 보아도 그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 했다.


선생님은 내 데셍을 보고선, 단번에 "너 성격이 급한 편이구나" 라고 말씀하셨다.


당시에는 내가 성격이 급한 편인지, 침착한 편인지 알아차리지 못할 때라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지만, 시간이 꽤 흐른 지금은 그 말의 뜻을 온전히 알아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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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사람들은 내가 꽤 꼼꼼한 편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다른 사람과 함께 돈을 벌기 때문에 꼼꼼한 것이다.


나는 사실, 꼼꼼하지 못하고, 손 끝에 집중하는 시간을 못 견뎌 한다. 공을 들여 짓는 행동을 못한다. 인내심이 부족한 것이겠지. 지구력이 부족한 것이겠지.


호기롭게 시작했다가도 이렇게 꼼꼼하게 해서 뭐 얼마나 달라지나? 대충 그럴싸한 판만 만들어 놓자. 라는 마음가짐이 연필 선 하나하나에 묻어 나온 것이었다.



미싱을 배울 때도 마찬가지였다. 알맞은 크기로 정확하게 잘라, 선을 따라 바느질만 하면 되는 것인데

천천히 공들이지 못해, 늘 내 결과물만 남들보다 크기가 작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그제서야 깨달았다.

난 여전히 나 스스로를 다루는 일에 꼼꼼하지 못하구나.



이번만큼은 나의 이 대충을 모르는척 넘어가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실망하고 싶지 않았다. 과오에 대한 미련을 급히 거두고 다시 손 끝에 집중했다.



누가 알아주지 않고, 나만 아는 시간이래도 정성을 다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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