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

고독. 즐기거나, 받아들이거나

by 한됴

고독을 즐기거나, 받아들이거나.

넷플릭스에서 만난 일본 영화 퍼펙트 데이즈.


이 영화, 60대를 살아가는 나를 미리 본 것만 같았다.

거창했던 꿈과는 달리 소박한 공간에서 / 삶을 이어갈 수 있을 만큼만 돈을 벌고 / 조용하고 정갈하게 나의 루틴을 지키고 / 깊은 대화를 나눌만한 지인은 없지만, 고독이 마냥 슬프지만도 않은 / 그리고 아무런 탈도 없이 일상을 마무리한 것에 감사하며 사는, 그런 삶


사람 만나는 걸 즐겨 하지 않고, 가정을 이루는 것에 로망이 없는 나는 때때로 혼자 지내는 50-60대를 그려본다. 속 썩이는 가정사가 없으니 편할까?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외로울까? 내 곁에 사람이 없으니 적막할까?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그것이 불행한가, 행복한가,라는 위험한 이분법적 사고에 이른다. 그리곤 오지 않은 미래에 잡아먹혀 버리는 나 스스로가 힘들어져 곧장 회피해버리고 만다.


그럴싸한 노후 준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내가 과연 언제까지 잘 살 수 있을까, 잘 산다의 정의는 무엇일까. 그동안의 고민과 낯선 두려움의 파동은 퍼펙트 데이즈를 보고 난 후 조금 잔잔해졌다.


도쿄 공공화장실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짧은 이야기만 건네 듣고, 공공화장실 디자이너의 이야기 인가했는데,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도쿄 공공화장실의 청소부, 영화는 그의 하루 루틴으로 시작한다. 아주 평범하지만 반드시 해야 하는 것.


싸락-싸락- 이른 새벽 이웃 할머니의 빗질 소리에 눈을 뜨고, 자고 일어난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1층으로 내려가 세면대 겸 싱크대에서 가볍게 세수와 양치를 한다. 그리곤 2층으로 식물방으로 올라가 보랏빛 조명을 맞으며 생명을 이어가는 식물들에게 물을 준다.


The Tokyo Toilet이 쓰여있는 출근복을 입고 현관에 놓인 차 키와 지갑을 챙기고, 문밖을 나선다. 날씨가 좋은지, 나쁜지 하늘을 보며 확인하는 것도 루틴 중 하나다.


문을 나선 후 집 앞 자판기에서 Boss 커피를 뽑아 마시고, 곧장 작은 봉고차에 올라탄다. 그의 출근길이 시작된다.


히라야마의 아침 루틴은 영화의 중반부까지 흐트러짐 없이 나온다.


히라야마만의 리듬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출근길 음악을 틀 때는 꼭 도쿄의 스카이 트리를 지나갈 때쯤에 맞춰 튼다. 음악은 100% 올드팝. 스포티파이가 아닌 카세트테이프로 재생한다.


그의 아침이 굉장히 단조롭고 평범하지만,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는 건. 히라야마가 중간중간 짓는 미소 덕분인 듯하다. 본인이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부드럽게 흘러가는 루틴, 그는 아주 만족스러운 것이다. 식물에 물을 줄 때, 세수를 하고 거울을 볼 때, 올드팝이 흘러나올 때. 무표정하던 주인공은 그 잠깐의 틈에 미소를 짓는다.


하루하루를 정성스럽고 조용히 살아가는 그는 화장실 청소도 허투루 하지 않는다. 남들 하는 만큼만 하는 수준이 아닌, 본인이 직접 개발한 청소 도구와 본인만의 방식으로 깨끗하게 청소한다. 누가 알아봐 주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당당하고 솔직해야만 진정한 보람을 느끼지 않는가. 히라야마 역시 비슷했던 것 같다.



점심에는 사찰 앞 공원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한다. 그리고 늘 같은 자리에 있는 나무에 안부를 전하듯 하늘과 맞닿은 나무 사진을 찍는다. 그것도 필름 카메라로.


또 제 자리가 아닌 곳에 싹을 틔운 식물은 스님의 허락을 구하고 가져오기도 한다. 히라마야는 책도 식물 관련 책을 읽을 정도로 식물을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딱히 나오지 않는다.



이때 식물을 가져오는 방식이 참 독특했는데, 히라마야는 종이로 만든 작은 화분과 흙을 함께 퍼담을 카드 한 장을 지니고 다닌다. 이건 매일 발생하는 일이 아님에도 그가 언제든 새로운 생명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모습이었다. 이마저도 정성스럽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옷을 갈아입고 목욕탕에 간다. 저녁은 아사쿠사 역사에 있는 식당에서 해결한다. 시끄럽게 맞이하는 선술집 주인에 비해 주인공은 조용한 미소로 대답한다. 주말이 되면 코인세탁소에 들러 세탁을 하고, 헌책방에서 책을 구매하고, 즐겨가는 스낵바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하며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한다.


영화의 중반부까지 그의 루틴은 계속 지켜진다.



나는 퍼펙트 데이즈의 히라야마보다 20-30살 정도 어린 듯한데, 그의 삶과 현재의 내 삶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다. 지방에서 대학을 나와 서울에 직장을 잡은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에 더 익숙해지고 편안함을 느낀다. 회사를 다니며 친구를 사귀기도 하고, 남자친구를 만나기도 했지만 이런 인연도 마무리하는 시기가 찾아온다. 아주 선명하고 영원할 것 같았던 사이가 점점 옅어지고 희미해져간다.


나이가 들어가며 좋은 점은 타인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 것보다는 나 스스로를 탐구하고 사랑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것.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어떤 것에 편안함을 느끼는지. 남보다는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 맞는지 안 맞는지 모르는 사람들과 부대껴가며 살았던 지난날에 대한 보상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히라야마에게 철없는 동료, 갑자기 찾아온 조카, 호감 있던 여성의 전 남편이 등장하며 평화로운 일상이 제멋대로 출렁이기도 한다. 보고 있자니 안타깝기도 하고, 그저 부처 같아 보이던 히라야마에게 인간미가 보여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역시나 사람 사는 건 똑같다. 원하지 않는 일에는 늘 당황하기 마련이니까.


오랜 시간 연락이 끊겼을 거라 추측이 되는 동생과 재회했을 땐, 히라야마가 눈물을 보였다.

자의든, 타의든 혼자를 선택하며 끊어야 했던 인연들, 묻어둔 감정, 애써 모른척한 서글픈 현실들이 동생을 마주한 그 잠깐의 순간 한 번에 밀려왔을 것이다.


혼자서는 꽤 괜찮은 척을 하고 실제로도 괜찮은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지난 필름을 기억하는 사람을 만났을 땐, 현실의 내가 초라해 보이기도 하고 나의 선택에 후회가 되기도 한다. 이런 수많은 감정이 히라야먀를 스쳐갔을 테다.



대부분의 삶이 그렇듯 영화 속 시끌 꺼렸던 시간도 어느새 지나가고, 다시 잠잠하고 평온한 시간이 찾아온다. 출렁거리던 히라야마도 다시 미소를 되찾고 늘 그랬듯 일상을 살아간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히라야마는 또다시 성실히 흘러가는 하루에 행복함을 느낀 듯 미소를 짓는다, 그리곤 눈 주위가 벌겋게 물들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쏟아낸다. 후련하게 웃으면서도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린다. 영화는 그런 그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며 끝난다.


그 장면을 보는 나 역시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가 어떤 감정으로 눈물을 흘렸을지 어떤 걸 말하고 싶은지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나 또한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오랫동안 여운이 머물렀다.


불안함 속에 찾아온 안도감, 또다시 혼자라는 것을 인식한 순간 느끼는 편안함과 두려움, 바뀔 듯 바뀌지 않는 일상. 이 모든 것들을 오롯이 견뎌야 하는 고독함에서 느껴지는 복합적인 감정과 눈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따뜻한 위로를 건네지도 대단한 가르침을 전하지도 않는다.

그저 나와 비슷한 누군가의 삶을 조용히 나눌 뿐. 그래서 더 깊이 새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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