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찌개, 반반치킨, 신라면
외갓집은 이상하게도, 집보다 더 많이 먹게 되는 곳이었다.
나는 충북 청주가 외갓집이다. 청주시 석교동에 있던 2층 주택. 지금은 할머니, 할아버지 모두 돌아가셔서 다시는 갈 수 없는 곳이 되었지만, 내게는 여전히 즐겁고 맛있는 기억이 가득한 공간이다.
명절은 물론 방학 때도 우리 가족은 청주로 향했다. 두 시간 조금 넘게 달려 도착한 집 앞에는, 늘 할머니가 나와 계셨다.
“아이구, 우리 강아지 배고프지? 점심은 먹고 온겨?”
세상 모든 할머니가 그렇듯, 우리도 ‘강아지’였다. 도착하면 인사로 절을 드렸다. 나비가 날아가듯 사뿐하게 절을 해야 한다고, 할머니는 여러 번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그날의 저녁상이 차려졌다.
할머니네 집이라고 늘 맛있는 것만 있는 건 아니었다. 장아찌와 나물 같은 어른 반찬이 주를 이뤘다. 그중에서도 할머니의 시그니처는 단연 버섯찌개였다.
얼큰하면서도 감칠맛이 가득한 빨간 버섯찌개.
지금에서야 엄마께 여쭤보니, 제철에 수확한 버섯을 소금물에 담가 두었다가 조금씩 꺼내 끓이신 거라고 했다. 느타리와 표고는 물론, 목이·능이·싸리·참나무버섯까지. 냄비 안에서 서로 어우러져 깊고 순수한 맛을 냈다. 대부분 산에서 직접 채취해 오신 것들이라, 그야말로 ‘자연’의 맛이었다. 조미료 하나 없어도 충분히 진하고 칼칼했다. 자글자글 끓는 찌개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쌀밥을 말아 먹으면, 감기조차 물러날 것 같았다.
그렇게 저녁을 든든하게 먹고 나면, 밤이 조금 깊어질 즈음 우리는 다시 배가 고파졌다.
그럴 때면 할아버지께 치킨을 사달라고 졸랐다.
청주에 가면 꼭 먹어야 했던 페리카나 반반치킨.
“네, 여기 태광중기 안집인데요, 반반 두 마리요~”
주소를 말하지 않아도 통하던 집. 그 시절엔 콤보도 없어 다리는 늘 할머니, 할아버지께 드렸다. 우리는 다른 부위를 먹어도 너무 맛있었지만, 할머니는 통통한 닭다리를 굳이 드시지 않고, 슬쩍 우리 쪽으로 밀어주셨다.
바삭한 후라이드, 달콤짭짤한 양념치킨.
아이들과 친척들이 둘러앉아 먹으면, 그 맛은 이상하게 몇 배는 더 커졌다.
외갓집에서는 부모님의 말도 잠시 힘을 잃었다. 할머니, 할아버지께 말만 하면 뭐든 이루어지던 시간. 어린 우리에게는 작지만 확실한 해방이었다.
이모네 가족까지 오는 날이면 더 좋았다. 또래 사촌들과 어울려 놀고, 육거리시장 쪽 시내를 구경하러 나가는 일은 어린 나에게 꽤 짜릿한 일이었다.
어느 날 밤, 잠자리에 들려는데 이모가 라면을 끓이셨다. 신라면이었다.
나는 그 맛이 궁금해 한 입을 몰래 먹어봤다.
뜨겁고, 맵고, 짜고.
그 모든 자극이 한꺼번에 터지던 순간.
‘이렇게 매운 게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니.’
그날, 나는 조금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외갓집은 단순히 음식을 먹는 곳이 아니었다.
조금 더 먹고, 조금 더 웃고, 조금 더 자유로워지던 곳.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조금 더 자라고 있었다.
외갓집은, 배를 채우는 곳이 아니라 마음이 한 뼘 더 자라던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