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런 말이 있지 않나. 토끼는 당근을 먹어서 시력이 좋고, 뽀빠이는 시금치를 먹어서 힘이 세다는 이야기. 그래서 어떤 음식을 먹으면 몸의 특정 기능이 좋아진다는 믿음.
이건 단순한 카더라가 아니라, 나름 과학적인 근거도 있다. 당근에는 눈에 좋은 베타카로틴이 풍부하고, 시금치의 질산염은 근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그 시절의 부모들은, 그런 ‘좋다더라’를 거의 믿음처럼 받아들였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믿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안경을 썼다. TV를 많이 봐서가 아니라, 아래쪽 속눈썹이 안으로 자라 눈동자를 계속 찔렀고, 그 때문에 시력이 더 나빠졌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안과에 가서 속눈썹을 뽑아야 했다.
족집게로 따끔하게 뽑히는 순간, 반사적으로 눈물이 고였다. 의사 선생님은 말없이 휴지를 건네며 눈가를 닦아주셨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아, 내 눈물을 처음 닦아준 남자는 안과 의사 선생님이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그땐 꽤 진지한 발견이었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시력이 좋지 않았던 나는, 겨울만 되면 엄마 아빠가 눈에 좋다는 ‘무언가’를 사 오셨다.
다 씻고 이불 속에 들어가 몸을 말고 앉아 있으면, 엄마는 할머니 방에서 작은 소반을 들고 오셨다. 은근히 기대했다. 귤이나 사과 같은, 달콤한 간식일 거라고.
하지만 그날 소반 위에 있던 것은, 빨갛게 잘린 ‘소 생간’이었다.
접시 위에 놓인 그것은, 음식이라기보다는 낯선 덩어리에 가까웠다. 옆에는 참기름과 소금을 섞은 기름장이 작은 종지에 담겨 있었다.
“눈에 좋대~ 한번 먹어봐.”
엄마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그 말 속에는 분명히 어떤 바람이 들어 있었다.
“엥… 이걸 어떻게 먹어. 징그러워…”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결국 젓가락을 들었다.
조금이라도 눈이 좋아질 수 있다면, 이걸 먹는 게 맞는 걸까 싶어서.
작은 간 조각을 집어 기름장에 찍어 입에 넣었다.
뭉글뭉글한 식감, 그리고 입안에 번지는 비릿한 향.
잠깐 멈칫했다.
다행히 참기름의 고소한 냄새가 그 낯선 향을 덮어주었다. 하지만 그걸 이겨낼 만큼은 아니었다.
“아… 난 못 먹겠어요.”
어른들은 아무렇지 않게 드셨지만, 어린 나에게는 너무 낯선 맛이었다.
세 번쯤 겨우 시도하다가, 결국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엄마는 더 먹으라고 다그치지 않았다. 그냥 “그래~” 하고 말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그걸 먹이는 순간에도 알았을지도 모른다.
이 아이가 이걸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걸.
그래도 내온 건, 그저 하나였다.
조금이라도 눈이 좋아졌으면 하는 마음.
그 이후로 소 생간은 곱창집에서 한 번 더 본 적이 있다. 그때도 먹지 않았고, 다시 찾아 먹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다.
요즘은 오히려 소 생간을 잘못 먹었다가 눈개회충증에 감염돼 실명 위험까지 있다는 이야기도 접한다. 그때는 가족 모두 아무 탈이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꽤 위험할 수도 있는 음식이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그 기억은 ‘위험했던 음식’으로 남아 있지 않다.
겨울밤, 따뜻한 이불 속에 앉아
엄마가 소반을 들고 들어오던 장면.
그리고
‘눈에 좋대’라는 한마디에 담겨 있던 마음.
내게 그 생간은,
끝내 먹지 못한 음식이 아니라
어쩌면 다 먹지 못한 사랑에 더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