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증의 제사음식
아빠는 경상도 태생의 장남이다. 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우리 집에서는 자연스럽게 제사를 지냈다. 얼굴도 모르는 조상님께 드릴 음식을 하루 종일 준비하고, 저녁이 되면 상을 차려 절을 올리는 일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특히 우리 집은 제사 음식을 만들 사람이 엄마뿐이라, 나와 여동생 둘은 늘 함께 준비를 도왔다. 가짓수도 많고 손도 많이 가는 일이라 정말 하고 싶지 않았다. 제사를 없애면 어떠냐는 말을 여러 번 꺼내기도 했다. 그렇게 1년에 한 번으로 줄어들다가, 결국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몇 해를 더 지내고는 사라졌다.
나도 이렇게 싫었는데, 엄마는 얼마나 하기 싫었을까. 투정을 부리는 세 딸에게 엄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귀찮아도 해야 하는 거면, 즐겁게 하는 게 낫지.”
주어진 것에 순응하는 삶.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때의 엄마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것이다.
시간이 흐른 지금은 제사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보다, 그때 먹던 제사 음식의 맛이 더 또렷하게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가자미식해다. 빨간 밥알과 통가자미가 잘게 어우러진 그 모양이 참 인상적이었다. 어떻게 만드는지 알 길이 없었는데, 최근에야 블로그를 찾아보고서야 그 과정을 알게 되었다.
어린 가자미를 소금에 절여 꼬들해지면 밥과 섞어 한 번 더 절인다. 며칠이 지나 삭으면 무채와 고춧가루, 소금으로 간을 해 버무리고, 다시 한번 숙성시킨다. 잘 익은 식해는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먹는다. 제사 때만 맛볼 수 있던 이 가자미식해는 진미채를 넣기도 했지만, 역시 통가자미가 들어간 것이 제맛이다. 콤콤하게 삭은 가자미는 뼈까지 부드럽게 씹히고, 감칠맛 나는 양념이 배인 밥과 무를 함께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우리 집은 제사 때 닭을 통째로 쪄서 상에 올렸다. 닭이 앉아 있는 모양이 어린 눈에는 조금 무섭기도 했지만, 튀기거나 굽는 대신 찌는 방식이라 지금 생각해 보면 꽤 건강한 음식이었다. 제사가 끝나면 고모가 늘 닭을 찢어 밥상에 올려주셨다. 쟁반을 들고 상을 치우면서 고모가 닭살을 발라 우리 자매들 입에 하나씩 넣어 주셨는데, 늘 닭다리살이었다. 한창 배고플 시간이었기에 그 쫄깃하고 따뜻한 맛이 더없이 좋았다.
닭집에서 닭을 직접 잡아 오셨기 때문에 닭똥집이나 닭발도 조금씩 함께 사 오셨다. 그것들도 큰 찜통에 넣어 함께 쪄냈다. 점심 즈음 콩나물을 다듬거나 전을 부치면서 먹던 닭똥집과 닭발은 또 다른 별미였다. 소금과 후추를 넉넉히 뿌려 먹으면 싱겁지 않았고, 입안에서 닭발 뼈를 발라내는 재미도 있었다.
삶은 달걀은 또 어떠한가. 노른자가 정중앙에 오도록 삶은 뒤, 과도로 지그재그 모양을 내 꽃처럼 만들어 제기에 올린다. 육해공의 재료와 채소, 나물, 쌀까지, 좋은 재료를 지극정성으로 다듬고 요리해 차려낸 제사상. 지금 생각해도 ‘그걸 어떻게 다 했을까’ 싶다.
시간은 휙 스쳐 지나가는 바람 같다. 그 시절의 짜증과 불만은 사라지고, 잔잔한 맛과 기억만 남았다.
그때는 싫었고,
지금은 그 맛이 떠오른다.
시간은 그런 식으로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