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위 속에서 웅크렸던 나에게
과학고 기숙사에서 보낸 첫날, 살이 에일 것 같은 날씨의 아침 6시 20분. 귀를 찢는 기상곡에 놀라 후다닥 조례 대형으로 줄을 서며 잠을 쫓았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었던 1학년의 시작을 대변하듯 그날따라 하늘은 야속하게도 까맣기 그지없었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영재원에서 카이스트 캠프에 갔을 때 로봇공학자라는 그럴싸한 장래 희망을 얻었고 거기에 살을 붙여 가며 멋도 모른 채 '목표지향적인 학생'의 이미지를 만들어 갔다. 천성적으로 강했던 책임감과 주변 아이들보다 철이 일찍 든 탓에 주변 학생들보다는 선생님들에게 더 존재감이 강했고, 그렇기에 안정적인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늦게 시작한 선행도 시기가 잘 맞아 중학교 2학년 초, 대형 입시 학원의 영재고 대비반에 합류할 수 있었다.
영재고 대비반에서의 시간은, 쓰라렸다. 일시적으로 죽을 만큼 아프고 마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생기고 아물 때쯤이면 다시 아문 부분을 도려 내는 고통이었다. 이전까지는 나의 공부 세계에 엄마와 나, 몇몇 과외 선생님뿐이었지만 이젠 나보다 더 선행을 많이 한 실력 있는 학생들이 추가되었다. 사실 다른 학생들이 뭘 잘하고 뭘 못하는지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나는 학원의 '사람들' 자체가 죽도록 싫었다. 영재고를 준비하는 학생에게 "목포 해양 고등학교 가서 고기나 잡아라."라는 말을 하는 선생부터 모의고사 성적으로 미묘한 급을 나누는 학생들, 어딘가 결핍된 부분을 학원에서의 인간관계로 채우려는 사람까지. 그 모든 것이 아직 세상을 잘 알지 못했던 내게는 큰 상처였다.
영재고에 합격하면 이 지옥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도록 노력했다. 아니, 발버둥 쳤다는 표현이 더 옳을 것이다. 내가 거의 유일하게 좋아하던 지구과학은 문제 풀이법까지 만들며 내가 잘하는 것만이라도 완벽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그러나 내가 노력할수록, 학원에 있는 시간은 길어졌고 내가 이해할 수 없던 것만 가르치던 수학 선생에게 '돌대가리'라는 말을 듣는 빈도만 늘었다. 학원이 정해준 대로 수업을 들어도 나는 학원이 원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밀물 차듯이, 스멀스멀 나를 잠식했다. 길을 잃은 것 같았다.
고통은 더한 고통으로 잊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고통은 날 무감각하게 했고, 무엇이 다가왔는지 인지하지 못하게 했다. 만만한 상대라고 생각했던 내가, 다른 학생들처럼 눈을 깔지 않고 당당하게 의사를 표현한 것이 꽤 불편하다고 생각한 이들이 있었다. 내가 혼자 행동하는 때가 많다는 것을 파악한 두 사람은, 나를 천천히 무너뜨리려고 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나는 학교에서 귀에 못이 박혀라 하는 학교폭력 교육의 내용을 완전히 신뢰하고 있었고, 그들의 행동은 모두 선생님들의 귀에 들어갔다.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선생님의 계속된 언질로 심기가 상한 그들은 내 입을 막으려고 했고 그 결과 학교 폭력 위원회가 열리게 되었다.
학교 폭력 위원회 이후 이상하게도,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시험 기간에 그들은 끈질기게 내 주위를 맴돌았고, 몇 번을 선생님께 말해도 눈물을 흘려도 달라진 게 없었다. 학교폭력 위원회 결과는 가해자 모두 '무혐의'였다. 부모님은 교육청과 소송을 시작했고, 나는 쉬는 시간마다 도서관에 틀어박혔다. 도서관은 밝고, 공개된 장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말없이 흘러갔고, 입시는 계속되고 있었다. 영재고 입시 실패 이후 과학고에 도전했다. 사실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감정적으로 결여되어 있었고, 다른 것 다 제쳐 두고 몰두할 것: 예를 들어 공부할 것이 필요했다. 더 이상 목 끝까지 차오르는 불안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기뻤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시간 이후에, 나는 과학고에 합격해 있었다.
진실을 알게 된 건 그 이후였다. 학년실에서 불안을 호소하는 나를 위로했던 선생님들 중 나의 담임선생님이셨던 수학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단 한 분도 내가 겪은 2차 가해에 대해 증언하지 않았다고. 그리고 내 사건을 담당했던 장학사가 나의 분리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창 추위가 거셌던 12월, 축제 리허설 무대에서 가해자가 원더걸스의 Tell me를 추는 것을 지켜봤다. 주변에서 예쁘다, 잘한다고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만족하지 않았을까? 나만 제외하고.
학교폭력 위원회가 끝난 날, 머리를 짧게 잘랐다. 물론 아무도 날 찾지 못했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고, 인상이 순해서 남들이 만만하게 본다고 생각했다. 부은 눈을 감추려고 괜스레 떨어지는 머리카락만 보며 고개를 숙였다. 다시는 쉽게 보이지 않겠다고, 다시는 순순히 믿지 않겠다고 잘려 나간 머리카락이 말하고 있었다.
조례와 체조가 다 끝나면 모두가 학교 한 바퀴를 돈다. 옆에서 임원 선배들이 어서 뛰라고, 무섭게 다그친다. 뒤처지지 않고 싶어서, 손이 얼어 버릴 것만 같은 추위가 싫어서 억지로 달린다. 깔끔하게 잘린 머리 아래로 찬 바람이 불어칠 때, 괜스레 옆을 돌아본다. 1년도 더 되었지만, 아직 내 모습과 감각이 어색하다. 까맣기만 하던 하늘이 점점 보라색으로 변하고 있다. 새로운 시작이 오고 있음이 잔인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