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추[入秋]

십대의 마무리를 시작하며 하고싶은 말

by 이공계 문과

오늘 아침, 아침 구보를 뛰러 나가는 길에 근 3개월 들어 처음으로 겉옷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 비가 옅게 왔는데, 그보다 진한 가을 느낌이 밤새 찾아왔다. 진성면 한복판에서 맞는 두 번째 가을이다. 시험이 일주일 남은 지금이지만, 작년과 다르게 산염기 공부는 시작하지도 않았다. 이제 내신의 압박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났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는다.


요즘 부모님과 통화를 할 때, 부모님께서는 매번 "이제 15% 남았어"라고 말하신다. 분명 제작년 브릿지 때는 죽어도 줄지 않을 것 같던 숫자가 곧 사라진다니 미묘한 기분이 든다. 사실 그 15%는 숫자의 크기는 작지만, 내가 약 11년간 투자한 장기 프로젝트의 마무리를 짓는 시간이다. 물론,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지금은 그때가 온다면 아이스크림 케이크에 초를 꽂아서 자축하고 싶다. 아니면 통 아이스크림이라도.


(번외로 왜 이 사람은 아이스크림에 이렇게 집착할까? 과고에 오면서 유당불내증이 생겼기 때문이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급식에 아이스크림이 나오면 손도 대지 않았다. 친구가 너는 이거 못먹지? 하고 놀리는 건 일상이였다. 그랬던 유당불내증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이제 유유 빙수 컵을 먹어도 멀쩡하다. 1학년 초에 나를 그렇게도 괴롭게 하던, 내 질량이 10kg 감소하게 만들었던 위장 문제가 스스로 해결되고 있다.)


화려했던 나의 여름이 지나가고 있다. 8월 중순 여름의 절정에 올림피아드를 다녀오고, 더위가 한풀 꺾일 때 포스텍 총장장학생이 되고, 늦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에어컨 튼 교실 안에서 자소서로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여름'이라는 단어에 걸맞는 한 달을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뜨겁고, 숨이 막히지만, 아름다운.

한 달 전의 나에게 내가 겪을 일을 미리 말한다면, 무슨 터무니없는 소리냐고 핀잔을 줄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들과 친구가 될지, 누구와 만나게 될지, 어떤 글을 쓰고 어떤 삶을 꿈꾸게 될지 이 한 달이 바꾸어놓았다. 시작은 분명 미약했지만, 나 스스로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를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나는 학년 내에서 가장 특이한 사람이 되어 있다. 물론 지구과학 전공이 모래사장에서 바늘 발견하는 것 처럼 분포해서이기도 하다.


이제 가을이 오고 있다. 내가 2년, 아니 11년 사이에 무엇을 심고 무엇을 길렀는지 모르지만, 분명 무언가 거둬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올림피아드처럼 벌써 손에 들어오는 결과도 있고, 한편으로는 설레는 마음으로 원서를 한자 한자 적고 있기도 하다.

새로운 계절을 맞아 대학에 처음이자 마지막 도전을 하게 되었다. 학과를 정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미 지구과학을 할 것이라 정한 이상, 갈 곳이 그토록 명확할 수 없었다. 담임 선생님과의 '네'로 주로 구성된 대화를 통해 내가 갈 곳은 모두 정해졌다.


언젠가 올림피아드 후기나 과고 생활 후기 이런 글을 써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직 거기까지는 아니지만 나름의 성과를 자축하는 의미랄까. 마음이 절로 숙연해지는 진지한 글을 써 보고 싶었지만 나름대로 의미 있는 글이 완성되었다. 그동안 나와 함께 긴 길을 달려 주신 부모님과 동생들, 할머니 할아버지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내가 사람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던 중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준 소중한 이들에게. 나의 학교생활을 도와 주신 선생님들께도, 친구들에게도. 마지막으로 나를 거쳐 간 많은 사람들에게,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준 이들에게도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새로운 시작이 지금만큼이나 빛나길 바라며

2025년 9월, 더위를 업은 찬 바람이 찾아온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