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 동기] 희망, 찬란한.

적절한 동기는 보고서를 있어 보이게 합니다

by 이공계 문과

브런치북 제목이 왜 저런지 궁금하신 분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니, 있었으면 좋겠네요.


저는 사실 순수 이과가 아닙니다. 인터넷을 돌아보다 보면 수학과 가까운 과목부터 인문과 가까운 과목까지 나열해 놓은 짤이 있는데, 저는 인문과 가까운 과목일수록 공부할 때 편안함을 느낍니다. 이 편안함이란 공부할 때의 성취감보다는 '효율이 높다'라는 표현에 가깝습니다. 생물이나 지구과학 같은 과목은 조금만 해도 금방 실력이 오르니까요.


그런데 순수 문과도 아닙니다. 어미 몇 글자의 변화가 나비의 날갯짓처럼 큰 효과를 낸다는 논리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또 그런 데 얽매여서 상대와 '결론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지 아니하였기에 아님을 부정할 수 없지 아니한다'와 같은 고급 기술을 시전하는 직업을 가지고 싶진 않았습니다. 결론적으로 과학고라는 대학교 급행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탑승하긴 했는데 기차 객실이 아니라 기차 지붕 위에 탄 것 같습니다. 목적지로 가고 있기는 한데 같은 기차를 타고 있는 사람들과 도통 교류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가끔 창밖을 내다보던 사람들과 이야기하곤 했지만 당장 제 얼굴로 날아오는 나뭇가지를 피하고, 나무 아래나 터널을 지나갈 때 매트릭스처럼 혼자서 엄청난 묘기를 부려야 했습니다. 그나마 좋았던 점은, 묘기를 부리는 사람으로 유명해졌다는 것입니다. (좋은 게 맞나?)


학교에서의 생활은 딱, 기차의 지붕에 탄 것과 같았습니다. 수없이 떨어지는 수행평가와 숨 돌릴 때쯤이면 찾아오는 시험, 거기에 더해지는 대외 활동 스펙 사냥까지. 날아드는 장애물들을 피하다 보니 어느새 절반이 지나 있었고, 객실 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날이면 날마다 '이게 맞나?' 싶은 창의적인 이야기가 나와서 몇 번 기겁하면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습니다.


1년 전, 딱 춥고 옆구리 시린 이맘때 동생과 함께 반지 공방에 갔습니다. 오래 끼고 다닐 것 같아서,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생각해서 반지 안쪽, 가끔 나만 볼 수 있는 곳에 적어두었습니다. 'spes, clarus.', '희망, 찬란한'이라는 뜻입니다. 구글 라틴어 번역기가 찬란한/선명한/빛나는 을 하나의 단어로 취급하더군요. 이토록 제 상황과 잘 맞는 단어가 있을지 몰랐습니다. 희망은 누구에게나 선명하고, 빛납니다. 그 미약한 빛을 따라 제 여정이 시작되었고,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여기까지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모든 성장통이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존재했다고 말하는 것은 욕심일까요?

저를 만들어준, 모든 순간을 기억하고자 이 브런치북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소소하고 행복했던 이야기, 슬펐던 이야기, 바보짓 했던 이야기…. 매주 한 개씩, 멋있진 않더라도 정갈하게 내놓겠습니다. 제 글로 저와 같은 고민을 했던 사람들이 위로와 공감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끔 올릴 이과감성 개그에 웃어 주시면 더 좋고요.


이젠 매주 볼 겁니다. 그렇다고요.

2025년 12월, 감기 바이러스가 기관지에서 왈츠를 추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