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나의 진화

알렌과 베르그만의 겨울

by 이공계 문과

내가 살았던 진성면은, 추웠다. 그리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학교는 낡았다.


우리 학교는 19XX 년대에 지어졌다. 한창 신박한 구조가 유명했던 시기였는지 건물이 S자이다. 농담이 아니고 진짜 S자, 나선은하 모양이다. 덕분에 10대 후반에도 술래잡기를 즐기는 순수한 아이들의 훌륭한 놀이터가 되었지만, 그만큼 외벽 면적이 넓어서 열 발산량이 크다. 주변에 논밭 천지라서 찬 공기를 막아줄 지형지물도 없다. 그 말인즉슨, 춥다는 말이다.


한창 수족냉증이 스멀거렸던 어느 가을, 내게 서서 잠을 자는 스킬을 얻게 해 주었던 생물 시간에 알렌과 베르그만의 법칙을 배웠다. 추운 지방에 사는 생물일수록 사지말단부가 짧고 작아진다는 것이 알렌의 법칙, 덩치가 커진다는 것이 베르그만의 법칙이었다.


생물의 가장 큰 특징은, 나도 동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 어떤 과목보다 잘 알려준다는 것이다. 막상 이론을 배울 때는 사막여우와 북극여우를 보면서 '주둥이가 짧군' 수준의 생각을 한다면 급식줄을 설 때 저절로 몸이 둥글고 짧뚱해지는 것을 느낄 때, 생명과학의 진정한 의미를 느낄 수 있다.


급식소는 학교 본관과 멀리 떨어져 있는 작은 1층 건물인데 급식줄을 서려면 일부는 필히 야외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겨울에는 다리를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주변 산에서 내려오는 한기를 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키가 작은 학생들은 친구를 방패로 쓰거나, 자칭 상남자 상여자들은 가위바위보를 통해 외투를 몰빵 하는(공유하는) 게임을 하기도 했다.


불행히 나는 키가 작지도, 상여자도 아니었다. (그리고 보통 인간방패 역할을 했다.)

게다가 기숙사 적응 중 발생한 급격한 체중 감량으로 수족냉증을 얻게 되었다. 급식줄에 잠시만 있어도 손톱이 급식소 입구 급수대의 보라색으로 변했다. 야간 자습이 끝나고 본 내 발톱은 샤워실 타일과 구분할 수 없었다. 오죽하면 친구가 오징어냐고, 문어냐고 놀렸다. 겨울은 내게 생존의 계절이었다.


알렌과 베르그만은 결과적으로 옳았다. 아침 기상곡이 울릴 때 재빠르게 히트텍을 교복 바지 안에 껴입고, 교복 위에 패딩조끼를 입고, 그 위에 후드집업을 입고, 교복 야구잠바를 입었다. 12월이 되자, 얇은 요령으로는 택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섯 겹은 족히 입어야 동사하지 않을 것 같았다. 1학년때는 발 표면적을 줄이려고 수면양말을 매일 신고 잤다. 장갑과 목도리는 필수였다. 겨울과 가까워질수록 둥글둥글해지는 내가 느껴졌다. 목을 하도 움츠려서 나중에는 거북이가 될 것 같았다.


졸업할 때쯤 되니까 난방이 안 되는 건물과 추운 날씨에 적응할 수 있었다.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많이 껴입었다. 가끔씩 히트텍을 까먹거나 핫팩을 안 챙기는 불상사를 겪으며 히트텍-티셔츠-교복-패딩조끼-아우터로 이어지는 5겹 공식을 만들었다. 과해 보이긴 하지만 그만큼 따뜻했다.


추위는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았다. 감기약을 달고 살며 잠을 잘 때에도 추위를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참 잔인하다는 생각도 잠시, 잘 때도 껴입기 시작했다. 수면양말과 히트텍, 핫팩은 나와 한 몸처럼 움직였다. 새벽 구보를 뛸 때, 표면적이 넓은 손과 얼굴에 뭔가를 씌워야 한다는 생각을 한 건 한참이 지나서였다. 목에 큰 혈관이 지나고, 혈액은 열을 운반하기에 목을 꼭 감싸야 따뜻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제 배우는 것뿐만이 아니랄까, 나의 작은 '진화'가 시작된 순간이었다.


글을 쓰면서 잠깐 추억에 젖었다. 손 끝에 맴돌던 한기가 미약하게나마 흩어지던 기억이 물씬거린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 나름대로, 학교라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자연의 법칙을 따라 변화하며 흘러가고 있었다. 이것도 진화와 적응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이제 그 추위가 그리울 때가 머지않았다는 것이 실감 난다. 이 글을 읽는 모두, 따뜻한 겨울을 보내기를.